뒤꽂이, 귀이개, 빗치개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치장을 한다고 일러오기는 하나, 반드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남의 눈길과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서도 치장을 한다고 해야할 듯하다. 그런 여자의 치장 가운데서도 가장 정성을 많이 괴이고 또 제가끔의 형세에 따라 호사를 하려했고 오늘날까지도 이렇다 할 변함이 없는 것이 머리치장인 듯싶다.......

신라시대부터 여러 왕조에서 왕들은 가끔 여자의 화려한 머리치장을 말리는 금령을 내리곤 했다. 그런데도 여자가 머리치장을 하려는 집념은 꺾지 못했던지 같은 내용의 금령을 뒤미처 또 내리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심지어 조선시대에는 어린 신부가 혼례 때에 머리치장의 무게가 지나쳐 목이 부러져 죽었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오를 정도였으니 과연 그 집념이 어떠한 것인지를 짐작케 된다.

위와 같은 머리치장이 오랜 우여곡절 끝에 근세에 이르러 겨우 제자리를 잡게 되었으니 기혼 여자의 평상시 머리는 쪽찐머리였으며 거기에 쓰였던 장식이 비녀와 뒤꽂이였다. 긴 머리채에 곱게 빗질을 하여 동백기름을 바르고 빗치개로 곱게 바른 가리마를 탄 다음에, 속댕기를 드려 머리를 틀고 비녀를 찌르고 뒤꽂이를 꽂으면 머리 단장이 끝난다. 집안 어른이나 아이들이 잠에서 깨어나기 전인 새벽 어둑한 방 속에서 미닫이 앞에 말굽경대를 옮겨놓고 빗접을 펴서 머리를 쪽찐 다음에야 여자의 하루 해는 비로소 시작이 된다.

대체로 영,정조 때부터 쓰이기 시작했던 것으로 짐작되는 뒤꽂이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가 있는데, 그 첫째는 장식을 위한 뒤꽂이이고, 둘째는 가리마를 타고 빗을 소제하는 데 쓰이는 빗치개이고, 셋째는 귀를 후비는 데에 쓰이는 귀이개이다. 물론 장식을 위한 뒤꽂이에도 쪽찐머리가 비녀에서 흘러내리지 않게 하는 오늘날의 머리핀과 같은 구실을 겸하는 것이 있으며, 그밖의 빗치개뒤꽂이나 귀이개뒤꽂이도 그런 구실을 함께 하는 데는 모두 마찬가지이다.

장식과 실용의 구실을 함께했던 뒤꽂이 가운데서 가장 많이 쓰였던 것이 화첩뒤꽂이였다. 가장흔한 화첩뒤꽂이도 생김새가 다르지만, 그 아니라도 국호와 매화로만 된 것, 나비 대신에 새를 곁들인 것, 꽃이나 나비나 새대신에 연봉을 돋아나게 한 것 따위가 있다.

뒤꽂이 장식을 위한 뒤꽂이에도 쪽진머리가 비녀에서 흘러내리지 않게 하는 오늘날의 머리핀과 같은 구실을 겸하는 것이 있므며, 빗치개뒤꽂이나 귀이개뒤꽂이도 그런 구실을 함께 지니기는 마찬가지이다.

뒤꽂이는 대부분이 은으로 된 것이고 여름에 쓰인 것으로는 비취나 백옥으로 깍은 것도 있고 산홋가지에 조각을 한 것도 있음은 여느 여자 장신구의 경우와 같다.

빗치개 빗치개뒤꽂이는 위가 합죽선을 편 모양으로 둥그스름하고 그것을 받쳐 긴네모꼴의 몸이 따르고 그 끝에 뾰족한 뿌리가 내렸다.

그런데 뒤꽂이 가운데서 은 조이질의 솜씨가 가장 복잡하고 정교하게 되어 있는 것은 말뚝뒤꽂이이다. 말뚝뒤꽂이는 이름 그대로 머리나 몸이 말뚝처럼 생겼는데 다만 끝이 여느 뒤꽂이보다 가늘고 날카로운 것이 특색이다. 이는 말뚝뒤꽂이의 쓰임새가 남녀가 잠자리를 같이했을 때에 어쩌다가 있을 수도 있는 변고에 대비한 탓이겠다........

대체로 옥, 비취, 산호 같은 뒤꽂이는 옥공이나 패물장들이 만들었으나 은뒤꽂이는 은도가에서 만들었다. 그 만들어지는 공정은 비녀나 노리개 또는 괴불 따위의 여느 은으로 된 장신구를 만드는 공정과 조금도 다름이 없고 오히려 몸이 작아서 세심한 주의와 숙련이 필요했다.

귀이개 귀이개뒤꽂이는 앞의 화첩뒤꽂이나 빗치개뒤꽂이와는 달리 조각이나 꾸밈새가 복잡하지 않고 몸에 무늬를 음각하거나 파란을 올린 것이 대부분이다.

이제 쪽찐머리가 귀해져서 쓰임새가 없어지자 뒤꽂이를 만들었던 세공방도 조이장이도 일손을 놓았거나 세상을 떠난 지가 오래되었다.

윤이 흐르는 보드랍고 긴 머리채를 곱게 빗질하여 거기에 당홍이나 깜자주 속댕기를 드려서 칠보 은비녀를 반태스레 지르고, 이에 곁들여 화첩뒤꽂이에 빗치개 뒤꽂이와 귀이개뒤꽂이를 맵시있게 꽂은 쪽찐머리로 단장한 여인이 긴 치마꼬리 아래로 외씨버선을 내보이며 사뿐히 대청을 거니는 자태를 한번 보고 싶은 충동이 일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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