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빗
까만 칠이 은은히 비치는 바탕에 무지갯빛 자개를 놓은 말굽경대의 거울을 세우고 경대 서랍의 박쥐들쇠를 잡아당기면 동백기름 내음이 물씬 풍겨온다. 서랍 속에는 크고 작은 얼레빗과 참빗이 차곡차곡 놓여 있고 한쪽 옆에는 가리마를 타거나 빗살 틈에 낀 때를 뺄 때에 쓰는 빗치개가 놓여 있다.
나무를 반달처럼 깎아 만든 얼레빗으로 풀어헤친 머리를 가다듬고 빗치개로 머리 한가운데에 가리마를 탄다. 거울에 비친 앞가리마가 반듯한 것을 보고서야 기름병에서 동백기름을 손바닥에 받아내어 이마나 귀밑에 묻어나지 않게 조심조심 바른다. 뒷머리 다박지를 맨 끈을 입에 물고 빗살과 빗살 사이가 성긴 참빗으로 한동안 빗어내리다가 빗살이 촘촘한 참빗으로 바꿔 빗어서 기름이 고르게 오른 다음에야 머리를 땋고 속댕기를 들이고 비녀를 꽂는다. 빠진 머리칼은 머리를 빗는 데에 쓰이는 도구를 넣어두는 빗접에 곱게 모두어 담고 참빗살 사이에 끼인 때는 빗치개로 뺀 다음에 빗접을 접어 빗접고비에 꽂고 경대를 닫고 나면 비로서 안주인의 하루 일이 시작된다.
또 사랑채에서는 손바닥만한 크기의 손거울을 목침 모서리에 기대어 세워두고 거기에 상투머리를 비춰보면서 소꿉같이 작은 빗으로 머리를 빗어올린다. 망건 당줄 자국이 뚜렷이 남은 이마에서부터 귀밑머리에서 뒷머리로 빗어올려서 상투를 틀고 망건을 쓰고 동전처럼 생긴 동곳을 꽂는다.
아녀자들의 머리는 빗어내리고 남정네들의 상투머리는 빗어올리는 것이 다를 뿐이지 하루의 일이 머리를 빗는 일로 시작되는 것에는 안팎의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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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머리빗 |
머리를 빗기도 하고 머리에 끼인 때나 비듬을 훑어내기도 하며 때로는 머리 틈의 이나 서캐를 빗어내어 죽이는 데에 없어서는 안되었던 얼레빗이나 참빗은 오늘날에 와서 그 요긴한 구실의 대부분을 잃게 되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빗들을 손에 잡고 보면 여전히 아름답다...........
우리가 오늘날에 볼 수가 있는 가장 오래된 빗은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짐작되는 대모빗이다. 생김새는 오늘날의 얼레빗과 비슷한 것인데 다른 점이 있다면 손잡이 부분이 좀더 넓다는 점이다. 거기에 금선을 두르고 금선을 두른 속에 푸른색의 보석을 끼워서 이름 모를 꽃모늬를 아로새기고, 그것도 모자라 금줄을 칡덩굴처럼 드리운 장식을 하고 있다. 아마도 통일신라시대의 어느 귀부인이 쓰임새보다도 치레로 머리에 꽂았던 빗일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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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빗 지금은 얼레빗보다 더 성긴 플라스틱빗으로 건성건성 빗거나 그렇지 않으면 헤어브러쉬로 슬쯕슬쩍 빗는 세상이므로 얼레빗이나 참빗의 쓰임새는 없어지다시피 됐다. |
특히 우리나라의 빗 가운데서도 얼레빗보다는 참빗이 더 정교하고 보기에도 아름다워 세계의 어디에서 만들어진 빗도 그 쓰임새와 꾸밈새를 당할 수가 없다. 대로 살을 만든 참빗은 전라도의 영암과 담양의 것을 꼽아온다. 참빗에는 빗살이 성기고 조밀한 것과 크기에 따라서 대소, 중소, 어중소, 밀소의 네 가지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중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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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장식용으로 꽂게 만든 대모제 빗 선을 두르고 금선을 두른 속에 푸른색의 보석을 끼워서 이름 모를 꽃무늬를 아로새기고 그것도 모자라 금줄을 칡덩굴처럼 드리운 장식을 하고있다. |
그런데 특이하게도 참빗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은 '되맥이빗'이라고 하여 길이 잘 든 헌 참빗에서 살을 골라 다시 맨 것, 곧 중고품을 재생한 것을 꼽았다. 그리고 영암의 참빗이 양반들의 손으로 만들어졌다는 것도 흥미 있는 일이다. 또 참빗이 거래되는 시장을 '도깨비시장'이라고 부르며 동이 트기 전인 첫새벽에 잠깐 서고 마는 일도 특이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