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문 할멈 드는 뎁쇼
때로는 어려운 일을 하소연하는 단골집 마나님들의 시름에 한숨도 나누고 바깥 물정을 전하기도 하여 방(房)에 귀를 티어주면서 말동무도 되고 나중에는 큰 일에 의논 상대로까지 끼어들어 집집의 경사(慶事)를 주선하는 매파가 되어 통혼(通婚)길을 트는 명수가 된다. 그리해서 대소가(大小家)의 형세와 지체를 곧잘 끼워맞추면서 혼사를 성립시켜 놓는다. 하지만 그 무렵 이러한 매파역까지 겸하는 방물장수를 극력 피하는 집안이 없지 않았다. 개화바람으로 봉건의 벽이 무너지기 이전까지만 해도 양가집의 규제로 부녀자의 개종(改宗)에 대해서는 냉엄하리만큼 비정 그대로였다. 그러한 형편에서 불행하게 초년과부(初年寡婦)의 홀몸 신세가 되면 자의건 타의건 불견이부(不見二夫) 라는 예교(禮敎)의 쇠살슬에 매여서 열녀절부(烈女節婦)의 귀감이 되는 숙명의 길을 걷게 된다.
한 때 여항(閭巷)에서는 이와 같은 폐습의 틈을 비집고 약과혼(掠寡婚)이라 해서 야반(夜半)에 수절과부집의 담을 넘어 들어가서 과수댁을 들쳐업고 멀리 도망을 쳐서 사는 이변을 별 문제 삼지 않고 모른척 내버려두던 때도 있었다. 국법에서는 오히려 의지없는 고독한 소년(少年) 과부에게 개가를 허용했었는데 ,다만 삼가(三嫁, 세번 팔자고침)만은 실행자녀(失行恣女)로 여겨서 이를 금하던 것으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것은 어디까지나 국법이요 가내(家內)의 명예와 체통만을 먼저 생각하던 선비들이 한 술을 더 떠서 개가는 부도(婦道)에 반(反)하는 짓이요, 집안을 욕되게 하는 실절(失節)이라 하여 그 문중에서까지 들썩거려서 쌍지팽이를 들고 말리는 판이었다. 이러한 그 무렵의 실상을 제대로 엿보자면 아무래도 방물장수를 끌어 들이는 것이 십상일성 싶다.
앞에서도 잠간 비쳣지만 매파를 겸한 방물장수를 극력 피하는 집안 일수록 가만히 보면 의례 그 집안에는 초년 과부가 있게 마련이다.
나의 가족들 질안에도 配를 당한 딸자식을 가진 친척집이 있었다.
나는 어릴적에 그 댁을 자주 놀러 가면서 목격하게 된 일인데, 어느 하루 그 댁에서 부리던 계집애가 뛰어 들면서 '마님 새문 함멈이 드는뎁쇼' 하자 이말에 감전된 사람처럼 펄쩍 뛰는 시늉을 하면서 과부딸이 댓돌위에 벗어논 꽃신을 낚아채기가 무섭게 소리개가 병아리 채가듯이 그 딸의 등을 밀어 붙이면서 안방 다락으로 내 몰던 광경을 목도한 일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