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물장수의 규방 출입

전에는 나라 혼인(왕이나 東宮)이 있게 되면 우선 전국에 걸쳐서 금혼령(禁婚令)이 내려지는 것이 통례였다. 그래서 한때마다 적령기에 든 처자들의 혼인길을 막는다. 나라에서는 도별로 자격구전(資格具全)한 처자의 단자(單子)를 예조(禮曹)에 올리게 된다. 예조에서는 다시 이를 추려서 입계(入啓)하게 되는데 이로부터 입계된 처자의 단자(單子)는 간택(揀擇, 初.再.三 )의 어려운 절차를 거치면서 최종으로 남는 처자가 곧 왕비로 책봉(冊封)되어 무상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

오늘날 국색(國色)을 뽑는 '미스코리아' 의 선발은 경염이 그 주가 되고 다음으로 그 인품을 치게 되지만 왕비간택은 국모(國母)로서 손색이 없어야 할 자질과 덕에 치우치게 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왕가의 일이요, 좀 더 일반적인 사가에서 행해지던 구식으로 불리던 재래 혼인의 식절차(式節次)와 그 거행은 어떠 하였을까.

지금은 신부화장을 하면 미장원(美粧院)으로 곧장 달려가서 내 맏기면 그만이다.

전에도 이러한 새색씨의 얼굴단장(化粧)과 몸치장(衣裳)은 물론 혼례날에 행할 신부의 범절일체를 도맡아서 하나하나 살피고 거드는 수모(手母)라고 불리던 아낙네가 있어서 시종 그날 잔치의 연출자의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큰 잔치때면 이러한 수모를 거들어서 시중드는 곁시라고 불리는 계집이 따라 붙어서 수모의 조수(助手) 역할로 일을 거들게 된다. 식은 처음에 존안청(尊雁廳)에다 교배상(交拜床)을 가운데 놓아서 초례(醮禮)로 부터 시작된다.

이 때에 신랑 자리는 동편이요 신부는 그 맞은편인 서편에 벌여서서 마주 바라보고 서게 되는데 먼저 신부가 두 번(再拜) 절을 하면 신랑은 이를 받어서 한번 절(初拜)로 응수한다, 이것을 한번 더 되풀이 하게 되는데 신부의 입장에서는 줄잡아서 전후 두 번 절을 밑지는 폭이 된다. 여기에서도 볼수 있는 바와 같이 여필종부(女必從夫)해야 하는 남존여비의 사상이 뚜렷하게 반영되고 있음을 엿볼 수가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 수모는 신부편에 서서 신랑을 보고 먼저 절을 하라는등, 아무리 색시 인물이 잘 났기로서니 저처럼 신랑입이 함지박처럼 벌어져 쓰겠느냐 등 존안청에서 웃으면 첫딸을 낳게 된다는 등 신랑을 얼리고 놀려대면서 딱딱하기 쉬운 분위기를 제법 부드럽게 풀어서 흩으러 놓는다. 이렇게 해서 교배(交拜)가 끝나면 두 사람(신랑.신부)사이에는 교배잔이 돌아가는데 이때에도 구변 좋은 수모는 이 교배잔을 벌여잡고 있다가 신랑 신부에게 마시라고 권하게 된다.

그러면 신랑은 별 어려움 없이 넙죽 받아 마시지만 신부의 형편은 그렇지가 못하다, 이런 낌새를 앞짚어서 수모는 얼른 신부의 교배잔을 신부 입술에다 대는척 하다가 대신 호르륵 마셔 버린다. 이런 광경을 지켜보고 서있던 잔치 구경군들은 이 대목에서 영낙없이 웃음보를 떠뜨리면서 떠들게 마련이다.

전에는 토방에 드나드는 생쥐처럼 집집의 문전을 빗질하듯 모조리 돌아다니던 방물장수라는 것이 있었다.

방물장수란 지금의 보따리 행상과 엇비슷한 것이긴 하지만, 본업인 장사 속셈보다는 때로 매파(媒婆)역할과 뚜쟁이까지 겸해서 한몫 재미를 보는 조금은 색다른 존재다. 본래 방물장수란 규방세계(閨房世界)까지 무상출입하면서 여인들의 소용품인 참빗,얼레빗, 색경(色鏡),댕기,바늘, 실,골무,화장품,패물에 이르기까지 얼추 갖추어 들고서 집집으로 다니며 단골을 트고 이집 저집의 집안 형세라든가 사정을 손바닥 들여다 보듯 하는 그런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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