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빈녀(貧女)의 회소곡(會蘇曲)
추석(음력 팔월 보름날)을 한가위(한문으로 嘉俳)로도 흔히 병칭(竝稱)해서 부르게 되는데 특히 농경(農耕)을 본으로 삼던 우리나라에서는 해마다 수확되는 그해의 초수(初穗)를 조상의 영전에 바치는 풍속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해마다 추석때면 궁향하중(窮鄕下中)에 이르기까지 신곡(新穀)으로 술을 빚고 백과와 돼지, 닭을 잡아서 즐기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가위날만 같아라'하는 속담이 생겨날 정도로 가위날이 즐거운 명절임에는 두 말할 나위도 없겠다. 본래 추석이 천신제(농공 추수감사제)로서도 그 의의가 큰 것으로 안다.
하지만 이러한 천신제가 지방에 따라서는 그 사정을 약간씩 달리 하는 것을 엿보게 된다. 추석이 일반적으로 성행되기는 중남부지방이고 북부지방에서는 단오절을 보다 크게 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수도재배(水稻栽培)에서 오는 경작에 따른 기후조건과도 크게 관계가 있고 특히 경북지방의 서북부지역에서는 1년 수확기가 추석때 보다는 아무래도 늦어지게 마련이어서 조령(祖靈)에 천신(薦神)의 행제(行祭)를 중양절(음력 구월 구일)에 가서야 올리게 되므로 이날이 농공 추수감사제에 맞먹게 되어 명절답게 즐긴다고들 한다. 이러한 천신제와는 달리 일찍이 우리의 고속(古俗, 신라때)에는 여인들의 삼길삼(績麻)을 겨루던 경쟁적인 '게임'이 거행되던 것을 기록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이 날이면 나라(신라)에서는 나라안의 여인들을 크게 두패로 나누어서 왕녀로 하여금 각기 한편의 편장(便長)으로 삼아서 편을 짰다고 한다. 그래서 백종날(음 칠월 보름날)부터 가위날까지의 만 한달동안을 아침에서 저녁이 늦도록 여인들은 삼길삼을 부지런히 서둘러서 가위날에 판가름을 내어서 승패를 가리게 된다고 한다.
이때에 패자는 승리자에게 술과 음식을 장만해서 대접을 하게끔 된다. 그로부터 사흘 밤낮을 진탕 노래와 춤으로 어울려 즐기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길삼 내기에 진 어는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하나 덧붙이고 넘어가기로 하자.
하필이면'잔치날에 배탈 난다'는 격으로 가위날에 승패를 가리던 길삼 경기에서 어느 빈한한 여인이 진축에 끼어들게 되었다 한다. 말하자면 그녀의 가난한 살림 형편으로는 패자가 승자에 대해서 부담하게 되는 술과 음식을 도저히 마련할 도리가 없는 그런 딱한 사정을 가진 여인이었다. 그렇다고 진 벌로 분담하게 된 그녀의 몫을 시치미 뗄 수만도 없는 것이 그날의 실정이었나 보다. 이런자에 궁여지책으로 노래를 하나 지어서 부름으로서 벌땜을 하게 되었는데 바 그 노래가 오늘까지도 기록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신라가곡중의 하나인 회소곡(會蘇曲)이라고도 전해진다.
이날에 여인이 부른 노래의 곡조와 사설이 어찌나 애절하였던지 만좌(滿座)한 회중(會衆)들의 심금을 뒤흔들어 이로부터 '회소 회소 구슬픈 회소' 하는 회소곡(이두체)이 널리 퍼져 사람들의 입에서 애창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여러 세시기에서 보면 추석을 '연중최중지(年中最重之)한 명절로 떠 받들긴 하지만 농촌과는 달리 서울에서는 그다지 떠들법석한 명절축에 끼어들지 못하는 것으로 기억된다.
나의 어린시절만 하더라도 서울에서 명절답기는 설날이나 파일날, 단오날이 명절답게 느껴지고 추석은 한식 때처럼 집에서 다례나 지내고 성묘나 가는 그런 날쯤으로 여겨졌었다.
서울에서 추석이 명절답게 느껴지기는 귀성객이 붐비면서 서울역의 경기가 그 절정에 이르던때 부터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