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家粉 時節의 香氣"와 "婚俗百景"은 일찌기 서양화가이면서 신문삽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행인(杏仁) 이승만 화백이 1970년대 중반 월간중앙에 연재한 <生活歲時記>의 일부를 옮겨온 것임.
假拂世上(가불세상)의 七夕
날로 각박해져가는 세상인심을 반영이나 하는 듯이 지금 사람들의 생리는 살아가는 날마저앞을 당겨서 사는 것을 능사로 삼는다. 그래서 저마다의 인생도 미리미리 가불해서 살아가는 격이 되고 말았다.
그 중에서는 특히 다달이 책을 펴내는 잡지사의 경우, 으레 새달의 잡지가 그 일자보다 보름이나 한달을 앞질러서 서점에 그 얼굴을 내밀어야 하는 것이 오늘 실정임에랴. 그래서 이제 계절은 삼복의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판에 이 글은 음7월 칠석날 이야기를 견주게 되나보다.
음7월 7석이면 성하의 무더위도 한풀 꺾여들어 아무래도 계절의 갈림길에 놓여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전날의 고로(古老)들은 칠석날이면 동구밖에 있는 오동나무를 눈여겨 보는 버릇이 있다. 그리고 그 나무 가지에서 한 잎의 잎새가 뚝 떨어져 나풀나풀 땅위로 잦아들면 "아 이제사 천하의 가을이 돌아 오는구나"하여 절계(節季)를 일깨웠다고 한다. 이처럼 철바뀜을 눈앞에 둔 칠석날의 이야기인지라 이 글이 한여름 끈끈하고 무더운 여름날의 더위가심으로 그런대로 색다른 청취쯤 자아냈으면 싶다. 이날 밤(7夕夜) 만리창공은 말끔히 부셔낸 듯 맑기만 한데 늙은이의 보따리처럼 축 늘어진 형상을 한 북두칠성이 한켠에 슬쩍 앵돌아져 빗겨있고 천만폭의 흰비단을 줄줄이 드리운듯한 은하수에는 깨알같은 뭇별이 보석처럼 빛을 뿜고 사람들의 눈길을 매혹케 하리라. 이러한 은하수를 사이로 동편에는 직녀성이 흡사 수태한 여인이 지아비를 기다리듯 이 밤을 맞이하고 그 서편에는 1년내 그리운 아내(직녀성)를 목타게 부르던 견우성이 해후의 부푼 가슴으로 이 밤을 맞게 된다는 애끓는 사연을 지닌 두별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날 밤하늘에는 축하의 연화(煙花)인양 긴 꼬리를 느리우며 이따금 밤하늘을 스치고 흐르는 별똥(流星)이 한결 이 밤의 정경을 돋보이게 한다. 한편 지상의 풀숲에서는 벌레들의 일대 교향악이 울려퍼지고 이러한 풀숲의 사이사이를 반딧불(螢)떼가 간단없이 날아 다니면서 미로에서 헤매는 나그네의 길잡이처럼 보이는 것이 반갑기만 하다. 본래 직녀는 베를 잘 짜는 하늘 상제님 손녀요 견우는 하고(河鼓)라는 일잘하고 부지런한 목동인 바 평소 이들을 좋게 보아온 상제는 이 한 쌍이야말로 천상 배필이라 여겨서 부부의 연을 맺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 젊은 부부는 그날부터 신정(新情)에 홈빡 빠져 단꿈만을 즐기기에 전 일의 부지런함을 다 잊어버린 채 해가 중천에 높다랗게 뜨도록 자빠져서 게으름만 피우는지라 이에 대노한 상제는 이들 한쌍의 부부에게 죄를 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 부부에게 그 벌로 은하수를 사이로 해서 동,서편으로 떼어놓고 일년에 단 하루밤(陰 7월7일밤)만을 만나보도록 했다는 퍽 훈화(訓話)적인 냄새를 풍기는 전설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날 밤이면 인간세상의 모든 까마귀와 까치들이 이들 부부(견우, 직녀)의 해후를 도와서 은하수에 이르러 그몸으로 다리를 놓으니 그 다리의 이름을 오작교라고 지어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사람들은 이르기를 칠석 전날에 비가 내리면 이들 부부가 서로 만나는 길에 타고 나서게 될 수레에 쌓인 먼지를 털고 씻어내느라고 흘리는 물이 인간세계에 비로 뿌려졌다는 뜻으로 세차우(洗車雨)라 하고 또한 칠석날의 그 밤이 새어서 새벽녘에 비가 뿌리면 이들 부부가 서러운 이별길에 오르면서 흘리는 눈물이 비로 화했다고들 하여 여루우(여 漏雨)라고 이름지어 부르기도 한다. 한편 칠석날의 절속(節俗)으로 내려오는 풍습으로는 집집의 주부들이 여름 장마에 눅눅해진 장롱속의 옷가지와 광속에 비치해둔 곡물따위, 습기찬 이부자리, 책 등속을 집안에서 모두 끌어내어 햇볕에 내다들 말린다. 이처럼 칠석날에는 절계(節季)를 적절하게 이용할 줄 아는 좋은 풍습을 정해 갖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