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고려시대


고려시대는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발달된 사회였으므로 장신구의 사용이 많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고려시대는 신라, 가야와 달리 후장(厚葬)을 하는 관습이 없었으므로 출토된 유물이 적어 그 내용을 상세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출토된 유물과 문헌의 기록을 토대로 살펴보면, 고려시대 장신구는 전시대에 비하여 기법은 쇠퇴하였으나, 장신구에 시문(施紋)하는 기술이 두드러지게 발달하였다. 그리고 송, 원, 명나라의 영향을 받으면서 우리의 고유성을 가지고 있었다.
신라에서도 신분에 따라 장신구가 각기 달랐는데 고려시대에는 더욱 금제(禁制)가 많았고 따라서 조복, 상복, 공복, 편복, 제복에 따라 장신구 착용이 각각 달랐다 왕과 왕비, 왕세자들의 장신구도 역시 규제가 있어 매우 복잡하였다.

1)비녀 : 비녀 머리부분에 봉황을 조각한 것과 닭머리 모양을 조각한 것이 있다. 봉황은 왕비가 사용했던 것 같고, 은비녀는 비녀머리에 옥으로 만든 꽃모양을 붙여 장식하였다.
2)동곳 : 고려시대 말기의 것으로 알려진 금동곳은 크기와 형상이 각각 달라 조선시대 때보다 휠씬 다양함을 알 수 있다. 동곳 부분에 당초문을 음각한 것과 수정을 맨 것은 현재 보존된 고려의 금제 동곳 가운데 가장 우수한 것이다. 이 밖에 운작문음각(雲雀紋陰刻), 족부엽상문음각(足部葉狀文陰刻), 동곳머리에만 조각한 것, 동곳머리에 운문을 음각한 것이 전해지고 있다.
3)귀걸이 : 현재 남아 있는 것은 금으로 만든 것인데, 구형소주(球刑小珠) 3개를 연속시킨 것과 구형소주가 장식된 것이 있다.
4)반지 : 금반지에 마노상 보석이 감장되어 있는 것과 녹색보석이 박힌 것이 있다. 이외에 당초문을 양각한 금 반지, 톱니문을 새긴 은 반지와 일부를 세조(細彫)한 은반지, 무늬없는 동반지 등이 있다.
5)과대( 帶) : 고려의 과대는 금, 은, 동 등을 합금하여 여러 가지 형태를 상감하였으며, 특히 그 중에서 대모, 마노, 상아, 오서(烏犀), 백옥, 미석(美石) 등을 사용하여 과판에 감입시킨 것은 신라보다 우수하다. 그 형태는 금동으로 된 방형(方形)의 과판이 여러개 붙어 있는 모양인데, 과판 하나하나에는 서조인 봉황과 꿩, 서수인 용 등이 음각 또는 양각되어 있다. 또 교구가 붙어있는 과판에는 당초문 등의 수목문이 양각 되어 있으며, 과판 이면은 민자판인데 이는 포대(布帶) 표면에 붙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6)갓끈 : 이밖에 중앙박물관 소장의 유리옥으로 만든 갓끈 1줄, 대모로 만든 빗 1개, 도금한 순은에 연화문을 음각하여 만든 머리장식 등이 전하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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