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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우리네 목수들은 집터의 부름과 더불어 살았다. 연장 망태를 걸머진 채 떠도는 시간이 길어지고 행동반경이 넓어질수록,목수때는 갈앉아 척박한 직업의 조건처럼 신체의 일부가 되었을 연장들.
그 쓰임과 용도에 따라 소용되는 연모의 종류와 기능 및 이름은 얼마나 다양하고 많았던가. 백 가지가 넘는다는 목수 연장 중 우선 나무집에 날을 만들어 꽂아 일정한 두께로 나무를 깍아내던 대패를 보자. 변탕,개탕대패,옆훑이,장대패,뒤대패,둥근대패,배밀이대패,목귀대패,대팻집고치기대패,살밀이대패,표주박면대패,훑이기대패......
일정한 간격으로 날을 내서 나무를 자르는 연장인 톱의 경우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쇠톱,실톱,세톱,붕어톱,등대기톱,양날톱,중걸이,두덩톱,접톱..... 이외에도 나무를 찍어서 깍는 연장으로 날이 가로로 된 자귀,손자귀와 같은 소용이지만 도끼처럼 쇠로 만들고 나무자루를 해박는 까뀌,날을 오긋하게 내 앞쪽으로 들이깍게 된 옥까귀 등등 이제는 거의 볼 수 없게 된 이런 용구들은 골동품이 된 옛가구처럼 마냥 그립기만 하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굳이 가장 애착이 가는 목수 연장 하나를 든다면 나는 무엇보다 '먹통'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황당해서, 아니 첫눈에도 그것은 본때 없이 볼썽사나운 몰골을 하고 순무식으로 생겨 먹어서 외려 더욱 정감이 가도록 만들었던 것.
'먹통'은 보통 먹줄통이나 묵두라고도 불리던 것으로 목재 따위를 다듬거나 자를 때 목재 위에 줄 치는데 쓰는 기구이다. 먹솜그릇과 먹줄을 감은 도르래바퀴를 장치하고 흔히 먹통 밑바닥엔 홈을 파 끼워 보관하는 먹칼이 있다. 또한 먹칼은 대나무를 잘게 쪼개 깍은 댓개비의 한 끝에 빗살처럼 잔 칼질을 해 먹을 찍어 목재나 석재 등에 글씨를 쓰거나 표를 하는데 썼다.
혹 먹줄주는 방법을 지켜본 사람은 알 것이다.어찌 보면 신중한 것 같으면서도 너무 익숙한 탓인지 어슬렁어슬렁 때로 무심하게 보이기까지 한 그 무념의 동작을.
나무를 마름개질하여 먹줄을 치거나 톱질을 할 때 받쳐놓는 나무인 '말'위에 놓인 목재 한끝에 먹솜그릇 앞머리에 달린 조그만 송곳을 꽂아 고정시키고 눈으로 가늠하고는 먹줄을 잡아당겼다가 탁 놓는다. 그러면 잘 다듬어진 목재에 선명한 먹선이 찍히게 되는 것이다.
어쩌다 우연찮게 조선식 민대가리 모양을 연상시키는 먹통과의 만남 이후 장안평이나 예천의 출장길 혹은 애써 더듬어 본 시골 고방에서 맞닥뜨린 먹통들은 하나같이 나름대로의 재미를 갖고 있었다. 단순하게 먹물을 갈아 붓고 가는 끈으로 먹줄통 입구를 빠져나와 곧은 선을 얻도록 한 기구 이상의 그 무엇이 있었다.
개중에는 문양도 화려하게 거북이나 호랑이를 조각해 놓은 것이 있는가 하면, 더러는 허위단신 한 세상 힘이 겨워 마침내 질정 못할 그리움인 양 손때가 묻어,단순하고 질박한 모습으로 채 못다한 사연이나 곡절을 얘기하는 듯싶은 것도 있었다.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으면서 연모의 사용방법,재질,만든 지방에 따라 독특한 형상으로 다가오곤 하던 먹통들.
내 기꺼이 책상머리에 필기구를 꽂아두고 쓰는,무작스럽고 막돼먹은 듯한 모습으로 맨처음 만난 먹통 하나 오늘 자못 새로운 모습으로 친근감을 더해 가기만 한다.
세월의 뒷켠에 버려진 채 켜켜이 먼지를 뒤집어쓴 먹통들이 그러할진대,생긴대로 나무를 마름질하고 부재를 어떻게 쓰고 어떤 법식의 건물을 세우든 튼튼하고 조화가 어우러진 모습을 연출해냈던 우리네 전통 목수들은 다 어디 갔는가. 그들에 의해 우리 건축은 잔재주나 세심함이 아닌 무심한 듯 소박한 아름다움을 빚어왔던 것이 아니었던가?
누구든 짬을 내어 보고자 한다면 쉬 만날 수 있고, 진정 알고자 하는 만큼 느낄 것이다. 가까운 절집이나 옛 한국의 살림집에는 소박하고 검소하면서도 질박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우리네 옛 목수들은 건축을 하는데 있어 무엇보다 시작부터가 달랐다.
집은 대체로 높고 밝게 지었으며, 집터가 준비되면 기둥 세울 자리를 정했다. 그런 다음에는 서너 자 깊이로 판 기둥 세울 자리에 조선회와 잡석을 다져 넣으면서 달구질을 했다. 소리꾼의 소리매김에 맞춰 굵은 통나무나 쇠로 된 쇠달구 아니면 돌덩이로 된 돌달구를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공중 높이 들었다가 땅에 떨어뜨려 집터가 단단히 다져지도록 안간힘 했던 것이다. 달구질이 끝난 다음에는 주춧돌을 놓고 편편하게 고른 위에 고임돌을 괴고 다시 조선회를 다져 넣었다.
그런 다음에는 무엇보다 중요한 나무 다듬는 일을 시작했다. 나무 하나를 베는데 있어서도 나무가 트거나 뒤틀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쾌청한 길일을 택하고, 심지어 4월이나 7월, 질기고 벌레 먹지 아니하는 날을 받아 벌목한 정성 앞에서 달리 더 무엇을 얘기하랴?
그러나 잠시 눈주어 돌아보라. 100년도 못갈 집 한 채 짓기 위해 최첨단 공법의 건축술로 시멘트와 철근을 우겨 넣는 이 시대에, 갖은 풍상의 몇백 년 의연하게 견뎌온 우리의 건축물들은 어떠했는가를.
언제부턴가 귀솟음이나 배흘림,안쏠림 등 우리 전통 기법들은 서서히 사라지고 왜끌,왜대패,플라스틱 먹통를 든 목수들이 자가용 타고 아파트 현장으로만 달려가는 오늘.
요즘 다들 비 안 새면 잘 지은 집이라던데.....
그리워라 내 진정 그리워라. 어허 달구 어허 달구 집터의 부름은 없어도 옛 방식의 집터 하나 다지고 싶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