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족집게



몸단장과 매무새를 더 아름답게 하기 위한 옛 여인들의 머리치레는 지극정성이었다. 칠흙 같은, 아니 삼단 같은 머리채 올올이 얼레빗으로 빗어내리고 다시 참빗으로 빗어 동백기름 발라 쪽 찐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또한 단오를 앞두고 긴머리 창포물에 감아 가리마 타고 빗어 넘기는 윤기도는 그 단정한 모습은 매섭기 까지 하다.
그런가하면 목덜미 하얗게 드러내고 머리 손질하는 자태는 그 얼마나 고혹적이며 관능적이기 까지 한가.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때는 빗은 장신구로 활용되어 뒷머리에 꽂고 다니기도 했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와서 빗은 정조의 상징이었으며, 빗을 주면 결혼을 허락하는 것이 되기도 하여 장신구로 쓰는 관습이 사라졌다.
빗은 보통 박달나무, 대추나무, 소나무, 대나무, 화각... 등을 재질로 썼는데 사진 중간의 붉은칠과 자개로 꾸미거나 하단 왼쪽 뿔이나 오른쪽 대모로 만든 얼레빗은 귀한 것에 속한다.
특히 세워진 모양의 뿔과 신주로 된 빗들은 남성용으로서, 목침겸용 거울을 펼쳐두고 상투머리를 빗어올릴 때나 수염을 빗기 위한 용도였다.
하단의 족집게는 눈썹이나 몸의 털을 뽑는 미용도구로 사용되었는데 족집게가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고 미를 가꾼다는 점에서 미용사를 상징하기도 했다. 일면 족집게는 한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함과 잡티를 제거하는 청결함을 상징하기도 하여, 어떤 일을 정확히 예견하거나 처리하는 '족집게 같다'는 관용적 표현을 낳기도 했다.

♣ 자료문의 053)745-5373 이무열





▲ 여러 가지 머리빗. 조선시대



▲ 족집게, 조선시대
백통, 신주, 은으로 된 몸체에 각종 풀꽃 문양을 새겨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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