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무어니 무어니 해도 박물관 뒷마당에 모아 놓은 석등 받침에서 느끼는 소감은 말로 다 이르고 표현해낼 재간이 나에게는 없는 듯 했습니다. 이리저리 얽키고 설킨 사연과 그리움과 추억과 아쉬움으로 다가오는 왼갖 궁리와 속짐작으로 마음은 허둥거리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또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생각 갈래 만 갈래 내 살아온 날들이 밀물처럼 출렁거리며 다가오는 듯도 했습니다.
무엇인가, 이제 와 저게 다 무엇인가! 저 폐사지나 이름 모를 절터에서 옮겨져 와 이제는 다소곳 숨죽인 채 아무렇게나 봄햇살 아래 빛바래기 하고 선 돌들이 주는 느낌이 따뜻해 잠시 누구에겐지 모르게 고개 숙여 감사하고픈 마음 조차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그래, 그래...... 이 사월 초순의 봄날은 얼마나 크나큰 축복이고 그리움인가.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그립고 안타깝고 아쉽고 무모하던 젊은 날의 뒤안길 돌아 이제는 다만 넉넉하고 화해하는 몸짓으로 살아 가리라. 정녕 우리네 세상 살아가는 일도 저와 같아서 이제는 다만 감사하고 기뻐하고 다소 함께 나눌 수 있는 이 몇 곁에 있다면 얼마나 다행스럽고 소망스런 삶이냐! 하는 마음도 슬그머니 끼어드는 것이었습니다.
뒷쪽에 보이는 삼층 석탑에서 느끼는 감동도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이 석탑은 덕동 댐 공사로 수몰될 경주시 암곡동 고선사지(高仙寺址)에서 옮겨온 것입니다.
옥개석(屋蓋石)과 탑신석(塔身石)은 여러 개의 부재(部材)를 써서 짜맞추어 놓은 것으로서, 감포가는 길에 우뚝 선 감은사지(感恩寺址) 탑과 거의 같은 시대와 크기와 양식의 탑으로서 통일신라초기의 대표적인 석탑으로 알려진 것입니다. 이 고선사지 탑에는 탑신에 문비형(門扉形)이 새겨진 것이 특이 했습니다.
내 어제 주말도 아닌데 모처럼 일상에서 벗어나 거닐었던 경주박물관 뒤뜰의 석물들에는 차마 말 다 하지 뫃하고 꽁꽁 쟁여두고 숨겨둔 많은 사연들이 군데 군데 있는 듯해 어디다 눈길을 먼저 주어야 할 지 몰라 두리번두리번 조금 허둥거렸던 것 또한 사실이었습니다.
돌로 쪼으고 새기고 파내고 주물러 놓은 옛 석물이 주는 빛바래고 익숙하고 어수룩하고 친근하고 편한 느낌속에서 맞는 눈부처의 호사를 나혼자 즐기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한나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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