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은사를 아십니까?

                     

                                    

 거짓말처럼 또 한 해가 가고 있습니다.

 이룬 것 없이 허전하여 마음 어수선한 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무작정 길을 나서본다면 어떨까요. 함께라도 괜찮고 혼자라도 좋답니다. 찬바람 불고 어디라 정 붙일 곳 없어 헤메임만 가득한 날이라면 더욱 제격이겠지요.

 옛 절은 사라지고 건물을 받치던 기단과 석축과 두 개의 석탑만 덩그러니 남아 가을걷이 끝난 들판처럼 저 홀로 깊어가는 곳.

 경주에서  보문단지 지나 추령고개를 치오르고 구불텅구불텅 삐뚤빼뚤 산길과 호수와 너른 들 계곡을 끼고 달리다 보면 마침내 닿게 될 것입니다.

 들리세요.

 댕~ 대에엥 꿈결처럼 오래 잊고 있었던 감포 앞바다 바닷속 종소리가.

 잠시 또 주위를 둘러보세요.

 3층 석탑에 슬그머니 스몄다가 비껴가는 햇빛과 바람과 노을이나 구름이 있어 영 심심치는 않다고요? 그렇다면 제대로 찾아온 것입니다.


 천 년도 전의 일입니다.

 오랜 전쟁을 끝으로 대왕은 돌아가시기 직전 신하들에게 유언을 했습니다.

 ‘이보게. 내 죽거든 화장하여 저 감포 앞바다에 뼛가루로 뿌려 주시게.’

 ‘대왕마마. 어이 그런 분부시옵니까.’

 위로는 고구려 후예 발해가 중원 대륙에 터를 닦고, 대동강 이남에 최초의 통일국가를 이룬 대왕의 뜻은 흔들림 없이 꿋꿋했습니다.

 ‘아닐세. 내 죽어서라도 이  땅에 왜구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할 것이네.’

 ‘하필 바다에 처소를 마련하라 하시옵니까?’

 ‘명심하시게. 불법을 숭상하고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려는 나의 뜻을…….’

 고구려와 백제에 비해 뒤늦게 불교를 받아들인 신라였습니다.  하지만 김유신과 김춘추에 이어 대왕 대에 이르러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는 하늘을 찌를 듯 했습니다.

 아아, 대왕이시여!

 죽어서도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시는 그 큰 뜻을 어이 거역하리오.

 권력의 힘으로 호화롭고 큰 무덤을 만들어도 영원한 안식처가 되지 못함을 진작부터 알고 계시었단 말씀이옵니까?

 문무대왕의 아들 신문왕은 유언을 좇아 불교식 화장을 하고, 대왕의 뼛가루는 동해 입구 바위에 뿌려졌습니다.

 뒷사람들은 이를 일러 대왕바위, 뎅바위, 해중릉, 대왕암이라 불렀습니다.

 대왕의 유업을 기리고 감사하는 마음은 대왕암 가는 길목 야산 구릉에 ‘감은사’라는 절을 짓도록 했습니다.


 “우와. 석탑이 군시렁 군시렁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아요, 아빠. 무어라 설명은 할 수 없어도 가슴이 두근 반 세근 반 뛰어요…….”

 “그래. 당당하고 뿌듯한 기운이 느껴지는 모양이지. 후련하구나. 여기까지 찾아 온 보람이 있어.”

 감은사에는 동, 서 마주 보고 선 3층 석탑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절은 진작 허물어지고 석탑과  돌로 된 건축 자재들만 나뒹굴었습니다.

 “감은사는 해방된 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발굴한 절터란다. 법당있던 자리 섬돌 밑에 특수한 공간과 통로 흔적이 있었다고 하더구나.”

 “아빠 그럼 정말 용이 된 왕이 그 구멍으로 동해바다를 드나들며 왜구를 지켰다는 이야기에요?”

 “그럴 수도 있겠지. 그리고 밀폐된 지하 공간의 환기를 통해 법당 건물을 유지했을 거야. 삼국유사에는 용이 드나들었다는 ‘용혈’을 의미하는 기록이 있다만……하지만 누가 그 옛날의 일을 감히 장담할 수 있겠냐.”


 감은사로 오르는 길은 밤하늘 별빛 총총 석탑에 가득 내려앉는 겨울이 절정이라고 합니다. 노을 끼는 황혼녘이나, 왠지 서운하고 쓸쓸함이 가슴에 가득한 날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말입니다.

 혹 아름드리 느티나무 뒤쪽 탑을 배경으로 사진이라도 몇 컷 찍어 본 경험이 있으세요? 그리운 추억들이 불쑥불쑥 종주먹을 대며 가슴에 두방망이질 칠 지도 모르겠습니다.

 “왜구들이 감은사 종을 훔쳐가다가  대왕암 앞 바다에 빠트렸다면서요?”

 “어떤 사람은 황룡사 대종이라고도 하더구나. 몽고군 침입때 원나라로 가져가려다 대왕암 앞 바다에 빠트렸는데 그 큰 종이 이 곳 개천을 지나갔다고  대종천이라고 한다더구나.”

 “그래요, 아빠. 책에는 토함산과 함월산에서 흘러나온 물줄기가 양북면 일대의 넓은 들을 지나 대왕암이 있는 동해 바다로 흘렀다고 했어요. 지금은 시냇물이지만 절 바로 앞으로도 큰 물길이 흘렀데요.”

 “상상해 보려무나 얘야. 이 대종천을 따라 용이 된 왕이 이 곳 대웅전 아래 ‘용혈’까지 오르내렸다고.........”


 종에 대한 기억은 오래 이어졌습니다.

 ‘저 봐, 저 소리가 안 들리시는가. 데엥 데에에엥~. 희미하지만 분명 종소리 같은데…….저, 저 저 소리가 정말 안들려?’

 이 곳에 사는 노인들은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또 그 아버지가 들었다는 종소리를 자신이 들은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랬습니다.

 불경이 부처님 말씀을 글로 옮긴 것이고, 불상은 부처님 모습을 새긴 것처럼, 종소리에는 부처님 목소리를 지극정성으로 담았습니다. 종소리는 진리의 둥근 소리를 천지사방에 퍼지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아빠 ‘만파식적’이라는 피리도 있었다면서요.”

 “그래, 동해 바다의 떠다니는 작은 산에서 구한 피리가 있었단다.”

 절을 짓고 어느 날.

 신문왕은 친히 바다에 가 거북이 머리 같은 산위에서 낮에는 둘이 되었다가 밤에는 하나가 되는 대나무를 얻었습니다. 이 대나무로 만든 피리는 문무왕과 김유신장군의 원혼이 나라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내어준 보물이었습니다. 피리를 불면 적군이 물러가고 질병이 없어지고 가뭄에도 비가 오고 홍수가 지면 비가 그쳐 바람과 물결을 잦게 하는 신기한 것이었습니다.

 “얘야, 옛 이야기 속에는 쉬 지나칠 수 없는 큰 뜻이 있는 걸 알고 있니.”

 “예, 과학으로는 이해가 안가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럴 수도 있겠지. 이곳을 지나 대왕바위가 바라다보이는 ‘이견대’라는 곳도 문무왕이 용으로 변한 모습을 보았다는 곳이란다. 그리고 그 ‘이견대’에서 만파식적이라는 천하의 보물을 얻었다고 알려져 있단다.”


 시간이라는 것은 무심한 것이어서 존재하는 것은 죄다 물이나 바람이나 흙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옛 절터에서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쓸쓸하면 쓸쓸한 대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가만가만 귀와 가슴을 열어 보신 적이 있으세요?

 시간을 거슬러 오르다 보면, 무언가 손짓해 불러 미주알고주알 들려주려는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고고학자들은 발굴조사를 통해 많은 것을 알아내었습니다.

 감은사는 중문과 탑, 법당과 강당이 남북으로 배치되었습니다. 다시 회랑이 둘러져 중문으로 연결되어 회랑 내부가 사찰 중심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또한 높은 계단 앞으로 못의 형태가 있어 나무배를 이용해 연못을 건너도록 되어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아빠 탑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나도 궁금하구나. 그 옛날 누군가 바라고 빌면서 꼭 이루어지리라는 소망이나 믿음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때로 먼 산 메아리 소리거나 별빛 같은 것도 얼마쯤은 스며있을테고…….”

 “아니 그런 것 말고 말이에요.”

 따져 보니까 40년도 전의 일이었습니다.

 동,서탑 가장 아랫부분 기단부 석재가 아귀가 안맞고 무너질 위험이 있어 서탑의 해체 수리를 한 것이 말입니다.

 문화재 수리는 나라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드잡이기술자에게 맡겨졌습니다.

 ‘드잡이’라는 것은 원시적인 방법으로 전봇대 같은 나무 지주에 도르래와 밧줄을 걸어 설치하고 석재를 차근차근 들어내는 방법입니다.

 3층 지붕돌인 옥개석을 들어내자 몸돌인 탑신 위쪽 면에서 숨겨둔 구멍처럼 ‘사리공’이 나타났습니다.

 문화재 수리 팀은 아연 긴장하며 부드러운 진흙으로 가득찬 사리공 속의 흙을 긁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작업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설렘과 흥분 속에 진행되었습니다. 종일 진눈깨비가 계속되었지만 옷이 흠뻑 젖어도 추운 줄 몰랐습니다.

 아, 나무아비타불 관세음보살!

 천 년 이상 고이 간직되어온 사리장엄구가 현세의 인간에 의해 그 모습을 드러내시다니…….

 청동의 사리함에는 사천왕상과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모습과 공양상이 조각되어 있었습니다. 내부에는 수정으로 만든 사리병이 있고 사리병 안에는 부처님의 몸인 진신사리가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깜작 놀랐습니다.


 발굴작업과 연구는 계속되었습니다.

 대왕암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도 가지가지였습니다.

 ‘문무왕의 뼈항아리가 묻힌 수증릉이 틀림없어!’

 ‘무슨 소리! 시신을 화장하고 뼛가루를 뿌린 곳이니까 ‘산골처’라고 해야 맞는 말이지.’

 궁금증이 날로 더해가고 여러 주장이 오고 가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신문과 방송에 -문무대왕 ‘해중릉’ 발견하다-고 크게 보도되었습니다. 죽은 뒤 오랫동안 장지가 의문시 되었으나 ‘신라오악조사단’ 학자들이 그 전모를 밝혔다며 사람들의 눈길과 귀를 끌어당겼습니다.

 이 일은 누군가 일부러 꾸며 기사거리를 만들고 발굴 성과를 드러내고자 한 잘못된 생각이 숨어있는 듯 했습니다. 이미 알만한 학자는 대왕암의 존재를 다 알고 있고, 해녀들도 가까이에서는 쉽게 물일을 하지 않을 정도로 대왕암에 대한 두려움과 존경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한 번은 대종을 찾자며 문화재관리국에서 조사단을 구성하였습니다.

‘왜구가 종을 약탈해 가다가 바다가 노해서 배가 뒤집혔다니까 그러네. 지금도 비바람이 심한 날은 그 소리가 더 잘 들리곤 하지. 데 뎅데뎅뎅뎅 뎅뎅하고 말이야........’

 감포 앞바다에 오래 살아 온 할아버지의 제보는 조사단을 흥분시키고 여러 타당성 조사를 거쳐 종 찾는 일에 열중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제 ‘나의 잊히지않는 바다’ 라는 비 앞에서 무슨 생각이 드느냐.”

 “비석에 새겨진 고유섭이라는 사람이 누군데요?”

 “그 분은 ‘경주에 가거든 구경거리로 쏘다니지 말고 문무대왕의 위대한 정신을 기려 대왕암을 찾으라’는 기행문과 ‘대왕암’ 시를 쓰신 분이란다.”

 “진작에 돌아가신 사람 같네요?”

 “그래, 개성박물관장을 지내며 우리 것을 지키기 위해 독립운동 하듯 평생을 바친 분이란다.”

 “일제 식민지에 참 용기 있는 분이셨네요.”

 “어허, 연말에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네. 제법이구나. 갖은 탄압 속에서 민족정신이 담긴 문화재를 지키며 그 분도 문무왕 같은 이를 무척 그리워했을 게다.”

 “그러게요. 그 분한테 배운 제자들이 그 뜻을 길이 간직하려고 대왕암이 보이는 이 자리에 비석을 세웠네요.”


 감은사 대종을 찾는다는 소식은 연일 신문과 방송을 오르락내리락 했습니다.

 여러 신문사와 방송국에서는 조사단과 함께 먹고 자며 스킨스쿠버를 동원하여 조사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기상 조건의 악화와 경험 미숙과 무모한 열정과 언론의 기대를 등에 업은 대종 찾기 작업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저기 대왕암이 보이냐. 이곳 감포 앞바다 봉길리 해수욕장에서 한 200메타 정도 거리라고 하더구나.”

 “보기에는 그냥 평범하고 아담해 보이는 바위섬인데요.”

 “가까이 다가가 보면 바위 한가운데가 못처럼 패어 있고 자연암석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기둥모양으로 세워진 모습이란다. 한 변 길이가 3.5메타 정도 되는 못 안에는 거북이 등 모양의 돌이 덮여 있다고 하는구나.”

 “맞아요. 그 돌 밑에 유골 장치가 있을 거라고 말하던데요. ”

 “얘야. 나는 여기 오기 전 평생 발굴 작업을 하고 민속박물관장을 지내신 분이 쓴 ‘발굴이야기’라는 책 한 권을 읽었단다.”

 “미리 준비 하고 신경 좀 쓰셨네요.”

 “허허 그래. 그 책을 읽으며 그 분께 존경을 보내고 감사했단다. 그리고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구나.”


 당시 고고학자의 마음은 대왕암에 잔뜩 쏠려있었습니다.

 신문과 방송 보도에 솔깃한 사람들은 서로 자기 생각이 맞다고 다투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고고학자의 한 마디 지시로 대왕암 가운데 뚜껑돌을 들어 올리면 맞고 틀리고를 가릴 수 있었습니다. 신비의 베일을 벗기고 어서 발굴작업을 마무리 짓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습니다. 천 년도 넘게 이어져 온 신화와 전설의 한 부분을 속 시원하게 세상에 밝혀 진실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아니 아니야. 세상에는 과학의 힘으로 밝히고 알아낼 수 있는 것보다 더 가치있고 아름다운 궁금증과 소망 같은 것도 있는 게야. 그리움 같은......’

업치락 뒤치락 고민하며 스킨스쿠버를 투입할까 말까 하던 생각은 마지막 순간에 접어버렸습니다.

 차마 호기심과 꿈과 기대와 상상으로 채워진 신화와 전설을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여러 사람의 가슴에 어떤 식으로든 파문지고 고동쳤을 신비스런 ‘비밀’을 까뒤집어 밝힌다는 것이 잘하는 일은 결코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대왕암 돌 아랫 부분을 조사했다면 재미없었겠어요.”

 “그렇겠지. 감은사의 의미도 줄어들고 이번 여행도 절반은 잃어버린 그리움 같은 것이 되었겠지.”

 “이제 곧 새 해가 되겠네요. 이맘때면 이룬 것 없어 허전하시다면서요. 나이 들면 늘 살아온 날이 돌아 보인다시더니....... 어떠세요?”

 “오늘 보니까 네가 훌쩍 컸구나. 너와 함께 한 이번 여행이 오래 가슴에 남을 것 같다. 아빠는 이제 나이 한 살 더 드는 쓸쓸함과 세상살이의 고단함에서 벗어나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구나.”

 “아싸, 아빠 힘내세요 힘! 저기 저 우뚝하고 늠름한 탑 좀 보세요.”

 “아, 감은사 감은사 감은사 감은사 감은사. 아아, 감은사 감은사 탑이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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