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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 이야기
베르나르 키리니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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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 증정'이라고 도장이 찍힌 책을 받아들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앞뒤 표지를 살펴보는 것. 앞표지에는 하늘과 땅을 배경으로 붉은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있는 파리지옥이 보였다. 뭐지, 이 현실감 없는 풍경은? 마치 마그리트의 그림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뒤표지의 추천사와 함께 실린 '능청맞고 독특한 상상력으로 프랑스 문단을 놀라게 한 베르나르 키리니'라는 작가 설명. 프랑스에 베르나르, 게다가 상상력이라는 키워드가 더해지자 문득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스쳐 지나갔다. 그럼 대강 전채는 맛본 것 같으니 메인을 즐겨 볼까.

 책을 펼쳤다. '고인들의 목록'이라고 적힌 서문이 보인다. 읽어나가다 보니 뭔가가 이상하다. 흔히 자서(自序)가 들어가기 마련인 이 자리에 다른 사람의 글이 들어가 있구나. 그리고 편집자가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서문 마지막 페이지에 쓰여진 한 줄, '나는 이 책의 친부권을 주장한다.' 도대체 내용이 어떻길래? 라는 군침을 흘리게 만든다.
 메인은 14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코스였다. 오렌지 주스에 피를 섞어 마시는 남자, 성스러운 예하의 방에 두 개의 침대가 놓여 있는 까닭, 나에 대한 다른 사람의 대화를 들을 수 있게 된 남자 이야기, '지금은 모두 죽어버린 몇 작가에 대하여', 논리적 모순으로 가득한 야푸족의 언어, 기름 유출 사고에 미학적으로 대응하는 전문가 집단, 바람기를 비추어주는 거울, '유럽과 기타 지역의 음악 비평 몇 편', 살인청부업자가 말하는 살인의 추억 다섯 가지, 한 작가의 아이디어 수첩을 얻기 위한 작가 지망생의 노력, 독특한 개성을 지닌 피에르 굴드라는 인물 스케치, 알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괴물'이라는 그림, 영원히 취해있게 하는 즈벡이라는 술, 맹수와도 같은 라투렐의 파리지옥. (작은따옴표로 옮긴 것은 단편의 제목이다. 도무지 저 이상으로 잘 잡아낼 수는 없던, 작은 이야기들의 모음. 그리고 그 내용들이 잘 버무려진 현실의 이야기인지 날것 그대로의 상상력인지 구별할 수 없었기에 더욱 할 얘기가 없다. 그러고보니 네타 없이 요약하기란 힘들구나-)
 각각의 이야기들은 스무 페이지 내외밖에 되지 않았지만 음미하기에는 충분한 양이었다. 달달한 맛은 아니었으되, 오히려 쌉쌀하게 남는 뒷맛이 더욱 매력적이었달까. 혹시 twins가 아니었을까 추측한 내 생각을 뛰어 넘어 '환상이라면 이 정도는 보여 줘야지!'라는 듯한 성스러운 예하의 이야기나, 마지막 한 문장이 오랫동안 삐딱하게 웃음짓게 했던 바람기를 비추어주는 거울 이야기, 서문을 쓴 사람이 진짜로 되고 싶어 한 피에르 굴드의 이야기가 특히 더. 

 베르베르가 유토피아-디스토피아의 SF적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면, 키리니는 현실과 환상을 교묘하게 직조하고 있었다. 비현실이라기보다 초현실에 가까운 마그리트적 상상력이랄까. 하나하나 맛을 보다보면 매끄럽게 넘어가지만은 않지만, 그 서걱거림과 씁쓸함이 오랫동안 남는다. 

덧. 그리고 새삼 생각나는, 차례 앞에 자리하고 있던 비어스의 말. '이 놀라운 일들이 현실이라면 나는 미쳐버릴 것이다. 그것들이 상상의 것이라면 난 이미 미쳐 있는 것이다.' 글쎄, 어느 쪽인지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확인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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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 - 이광수 장편소설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19
이광수 지음, 김철 책임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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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의 <무정>. 다들 제목은 많이 들었을테지만, 대부분의 명작이 그렇듯 정작 읽은 사람은 몇이나 될까. 나 역시도 그랬다. 이광수라는 이름에 주어진 무게와, 그가 남긴 공으로 다 가려지지 않는 그의 행적 때문에. 그러다가 문지의 한국현대문학 전집을 한 권씩 읽어나가며 - 정확하게는 시대순/작가별로 찾아 읽으며. 다른 전집들이 보통 연도순으로 나오는 것에 비해 문지는 비교적 자유로운 순서를 취하고 있다. 지난 북페에서 출판사 분께 물어보니 저작권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 이 작품에도 손을 뻗게 되었다. 읽고 난 한 줄 감상은 '재밌더라.'
 읽는 도중 다른 생각을 않고 읽을 수 있었다. 기대하고 있지 않아서 더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특히 형식이 선형과 영채를 두고 혼자서 고민하는 건 정말 코미디였달까. 무슨 인간이 그렇게 우유부단해! 라면서도 갈등하는 모습 자체가 재밌어서 결말을 알면서도 끝까지 잡고 갈 수 있게 만드는. 하긴, 사실 전대의 소설과 다른, <무정>의 근대성도 - 다시 말하자면 당대의 컬처 쇼크이자 지금까지도 전해지게 하는 매력이랄까 - 거기서 드러난다. 고소설이나 신소설은 갈등이 외부로부터 오는 반면, <무정>에서는 내부에서 갈등하는 인물이 나타나니 말이다. 물론 '고뇌하는 인물'은 아직 완벽하게 자리잡지는 못한지라, 후반부에 가면 계몽을 해야겠다는 의지로 똘똘 뭉친 형식이 나타나서 재미를 반감시키기도 하지만.

 형식은 잠깐 추연하다가(슬퍼하다가) 다시 그 불을 본다. 천지가 온통 캄캄한 중에 오직 불 하나가 반짝반짝하는 것과, 세상이 다 잠을 깊이 들었을 때에 그 불 밑에 혼자 깨어 있는 사람을 생각하며 형식은 그것이 마치 자기의 신세인 듯하였다.

 그가 만원된 차를 타고 눈앞에 들썩들썩하는 사람을 볼 때에 나는 저들이 모르는 말을 많이 알고, 모르는 사상을 많이 가졌다 하고 생각하고는 일종 자랑의 기쁨을 깨닫는 동시에 '언제나 저들은 나만큼이나마 가르치는가' 하는 선각자의 책임을 깨닫고 또 이천 만이나 되는 사람 중에 내 말을 알아듣고 내 뜻을 이해하는 자가 몇 사람이 없구나 하는 선각자의 적막과 비애를 깨닫는다.


 천지가 온통 캄캄한 중에 반짝거리는 불 하나, 선각자의 책임과 적막과 비애 같은 표현들을 보면 형식은 근대성으로 무장한 독불장군이라 할 수 있다. 지금 보면 혼자서 세상의 온갖 고뇌를 다 지고 가는 양하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오지만 그 개인한테는 꽤나 심각한 문제였겠지. 그렇지만 교육으로 저들에게 문명을 주겠다는 사람이 사실은 자기가 뭘 하고 싶은 건지도 불분명한데 어떻게 웃음이 안 나올 수 있을까.

 저들에게 힘을 주어야 하겠다. 지식을 주어야 하겠다. 그리하여서 생활의 근거를 완전하게 하여 주어야 하겠다.
…(중략)…
 "그러면 어떻게 해야 저들을…… 저들이 아니라 우리들이외다. 저들을 구제할까요?"
하고 형식은 병욱을 본다. 영채와 선형은 형식과 병욱의 얼굴을 번갈아 본다. 병욱은 자신이 있는 듯이,
 "힘을 주어야지요! 문명을 주어야지요!"
 "그리하려면?"
 "가르쳐야지요! 인도해야지요!"
 "어떻게요?"
 "교육으로, 실행으로."


 아마 <무정>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이지 않을까. - 병욱의 이름이 나왔기에 잠깐 덧붙인다. 개인적으로 기차에서 형식과 선형, 영채와 병욱이 만나는 부분에서 '짝은 맞겠네.'라고 생각했는데 병욱이 여자였다는 점에서 좀 충격이었다 - 형식은 '저들이 아니라 우리들이외다.'라고 말하면서도 다시 '저들'이라는 말을 입에 담는다. 그만큼 확실하게 다른 사람과 자기를 구분짓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우선 앞에서도 지적했던 선각자 의식, 그리고 교육과 실행으로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는 문명개화론을 읽을 수 있겠다. 또 주워들은 풍월을 갖다 붙여 보자면, 형식은 저 '타자 만들기'를 통해 자기 자신을 좀 더 명확하게 규명하는 게 아닐까. 우리가 '나'를 설명할 때도 무수한 관계의 중첩으로 표현할 뿐이요, 사실 자아 정체성을 찾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타자를 설정하는 것이니 말이다.

 "나는 교육가가 되렵니다. 그리고 전문으로는 생물학을 연구할랍니다."
 그러나 듣는 사람 중에는 생물학의 뜻을 아는 자가 없었다 .이렇게 말하는 형식도 물론 생물학이란 참뜻은 알지 못하였다. 다만 자연과학을 중히 여기는 사상과 생물학이 갖아 자기의 성미에 맞을 듯하여 그렇게 작정한 것이다. 생물학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새문명을 건설하겠다고 자담하는 그네의 신세도 불쌍하고 그네를 믿는 시대도 불쌍하다.


 그렇다. 익히 알고 있듯 그네도, 그네를 믿는 시대의 신세도 불쌍하게 진행될 뿐. 이광수가 덧붙인 저 한 마디를 보면서 문득 김옥균을 떠올렸다. 갑신정변 때 김옥균은 34살이었고, 그를 따랐던 개화당은 20대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에 심지어 10대 후반의 소년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그들 자신의 믿는 바에 따라 행했던 '그들의 혁명'이 어떻게 끝났는지는 이후의 역사가 냉엄하게 밝히고 있다. 아마 이들은 더 오래 기다리는 법과 혼자 서는 법을 배웠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무정>은 다들 성공한 후일담을 덧붙인 뒤에 "기쁜 웃음과 만세의 부르짖음으로 지나간 세상을 조상하는 '무정'을 마치자."며 끝을 맺는다. 아마 이는 이광수의 세계 인식과도 연결되겠지만, 과연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걸까. 많은 논자들이 동의하는 바, 그의 삶과 관련하여 그의 작품에는 아버지를 부정하는 고아의식이 드러난다. 그래서 지나간 세상을 묻어둔 채 '웃음과 만세'를 말하는 것이겠지만- 작품은 엄혹했다고 얘기되는 1917년에 발표되었지. 그리고 이후로 그는 변해갔고. 아니, 사실 변했다기보다 '문명개화'를 얘기하는 입장에서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다만 쉽사리 근대화되지 않는 조선에 절망했겠지만, 식민지 수탈체제가 아닌 민족 개조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는 게 아쉬울 뿐.
 다음에 기회가 닿는다면 <바로잡은 무정>을 보고 좀 더 얘기해 봐야겠다. (윽, 하지만 전공 서적은 왜 이리도 비싼 것이냐-_-)

덧. 근대소설의 효시로 <무정>을 꼽고 있지만, 생각 외로 '~더라' 투의 문체와 전지적인 작가 시점으로 인해 고소설의 그림자가 짙게 배어있는 것 또한 <무정>이다. 특히 19세기 말~20세기 초 인기를 얻었던 구활자본 소설 <채봉감별곡>(소설 속에 나오는 가사의 제목을 따서 <추풍감별곡>이라고도 한다)과의 연관성이 논의되기도 한다.

다시 덧. 정출헌의 논문 '고전 서사문학에 나타난 아버지의 형상과 그 변주', 김윤식의 <그들의 문학과 생애, 임화>를 읽는다면 우리 문학사에 나타난 '아버지'라는 주제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듯. 특히 근대 초기의 작가들에게 강하게 나타나는 앞 세대와의 단절의식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시 확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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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소설에 빠지다 - 금오신화에서 호질까지 맛있게 읽기
조혜란 지음 / 마음산책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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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인 조혜란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종종 접했던 논문의 저자입니다. 여성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고전소설들이 꽤 재미있어서 논문임에도 어렵지 않게 읽어나갔던 기억이 나네요. 

 이 책, <옛 소설에 빠지다>를 쓰면서 저자는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팅커벨이 나타나 어두운 공간에 반짝이는 정채精彩를 더하듯, 박제된 시간의 전시품으로 기억될지도 모를 고전소설을 오늘날의 삶의 공간으로 불러내고 싶다.' 아마 이 말은 고전문학을 전공하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말이 아닐까 합니다. 특히 고전문학'교육'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더욱 그렇겠고요. 저자 역시 '그때 거기'와 '지금 여기'를 연결하고픈 욕구를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책 자체가 <고교 독서평설>에 연재했던 원고들을 수정·보완해서 엮은 것이기도 하고요. 부제가 '금오신화에서 호질까지 맛있게 읽기'인 것에서도 충분히 짐작 가능하지요.

 책에는 모두 열 세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생규장전'이나 '박씨전', '호질'처럼 익숙한 작품과 '소설'(작년에 출간된 돌베개의 도서, <千년의 우리 소설 1-사랑의 죽음>에서는 '옥소선전'이라고 번역되어 있지요), '윤지경전', '강도몽유록'처럼 일반 독자들에게 낯설 수 있는 작품이 고루 섞여있고요. 짧지만 흥미있는 미리 읽기, 간략한 줄거리에 꼼꼼한 작품 해제, 깊이 보기(원문 일부와 번역문, 약간의 설명)와 넓게 읽기(함께 읽으면 좋은 작품들 소개)까지 있으니 구성 역시 탄탄합니다. 그야말로 두려움 없이 고전소설이라는 커다란 바닷물에 발을 담글 수 있게 하고 있어요. 읽다보면 어느새 푹 잠겨 있는 스스로를 볼 수 있겠고요. 

 그렇지만 깊이 보기 부분에서는 약간 평이 갈릴 수 있겠습니다. 전공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너무 짧아서 감질날 수 있겠고, 고전에 대한 관심으로 책을 찾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굳이 한문 혹은 옛한글 원문까지 수록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기 때문이죠. 아마 전공자의 욕심이라고 생각됩니다만. 별점주기라는 전통을 좋아하지 않지만, 굳이 별 하나를 뺀 건 이 때문입니다. 대신 작품 수록부터 다른 건 다 마음에 들어요. 디자인도 깔끔하고, 특히 소설 주제별로 장을 구분하면서 책거리도(로 추정되는^^;)의 서로 미묘하게 다른 부분들을 싣고 있는 것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고요. 추천할만한 한 권의 입문서입니다. 

 덧. 자꾸 돌베개의 <千년의 우리 소설>과 겹쳐지는 건 어쩔 수 없네요. 다루고 있는 작품들이 일부 중복된다는 것 외에도 고전과 현재의 소통을 꿈꾸며 이름 있는 전공자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 비슷해서 그런 생각이 드나봅니다. 차이가 있다면, 이 책은 흥미를 끄는 발문부터 넓게 읽기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소설에 대해 교과서처럼 체계적인 안내를 하고 있고, <千년의 우리 소설>은 원작 자체를 읽는데 중점을 두고 작품들의 해제는 권말에 한꺼번에-간략히 싣고 있습니다. 후자는 시리즈로 계속 출간되는 만큼 다루는 작품 수가 좀 많고요. 각자 특색이 뚜렷하니 필요에 따라 선택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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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이 강요한 천국보다는 자신이 선택한 지옥이 낫다.
광장 / 구운몽 최인훈 전집 1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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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 살아 움직이는 바다. 그 바다 위에서 나는 그를 만났다.
 사실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이란 얼마나 많은가. 거리에서 스쳐지나가는 사람들부터 눈을 감는 그 순간에도 잊지 못할 사람까지 수천 명이라는 말로는 모자랄 터. 그런데 왜 나는 40여 년 전 잠깐의 인연이었던 그를 잊지 못하는가. 아마도 인훈의 말처럼 그가 풍문에 만족하지 않고 늘 현장에 있으려고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물론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른다.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 동안 그를 보았기 때문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얘기하고 싶다. 결국 살아 움직이는 바다 속으로 내려간 그, 이명준을.
 그와 나는 타고르 호를 같이 탔었다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없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타고르 호를 택했다는 것이 최대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무렵의 나는 전쟁과 가난이라는 한국의 현실에 정을 붙일 수 없어서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다. 그리고 ‘사바사바’가 통하는 세상답게 송환 절차에 끼어들어 인도행을 택했던 것이고. 하지만 그는 좀 달라보였다. 20대의 젊은이라고 보기엔 너무도 지친 표정. 마치 세상을 다 산 사람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때문에 새로운 땅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이 반씩 섞인, 비슷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로 넘치는 배에서 그는 유달리 눈에 띄었고. 그렇게 호기심으로 시작된 인연은 지금까지도 그를 추억하게 한다.
 홍콩에, 마카오에 상륙하게 해달라는 다른 사람들의 청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그는 일종의 별종 취급을 받았다. 애초의 약속은 인도에 닿을 때까지 배에서 내리지 않겠다는 것이었지만 어째 사람의 마음은 그리도 간사한지. 하지만 이것도 지금이니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지, 그 때 당시엔 나 역시도 육지를 밟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했다. 뭐, 아주 절실한 것은 아니었기에 우리의 청을 거절한 그를 일정 정도 이해하며 바라볼 수 있었고, 덕분에 그와 친해질 수 있었긴 하다.
 그러면서 나누었던 신변잡기를 여기에 일일이 기록할 필요는 없겠지. 아참, 특이한 것 몇 가지. 보통 부모님에 대해 말하면 어머니가 먼저 나오기 마련인데 그에게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없는 듯했다. 북에 계신다는 아버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은 반응이었고. 그래서인가, 보통 ‘사랑’이라 말하면 연인과의 관계를 넘어서 가족애, 조국애가 나오기도 하지만 그의 사랑은 철저히 개인적인 것에 머물러 있었다.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아마 조국애 같은 것을 입에 담았다면 나는 그를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았으리라. 다만 그 당시에는 - 그리고 아마 지금도 - 보기 힘든 인간상이었다는 것만 얘기하고자 한다.
 별다른 사건이 없는 배 위에서의 생활, 그 무료한 시간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그와 나는 꽤나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남과 북에서 모두 살아봤던 그의 경험으로 인해 그가 ‘광장’과 ‘밀실’이라는 것에 대해 깊이 천착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날에는 이야기 끝에 그가 덧붙이기도 했었다. ‘추악한 밤의 광장. 탐욕과 배신과 살인의 광장. 이게 한국 정치의 광장이 아닙니까?’라고. 나 역시도 공감하며 말했다. 남한은 자유가 넘쳐서 문제가 되는 개방적 광장이며 북한은 자유가 없어서 문제가 되는 폐쇄적 밀실이라고 말이다. 그러자 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조금 내저었다.
 오히려 그는 남한을 밀실이라고 표현했다. ‘밀실만 푸짐하고 광장은 죽었습니다.’라고 한 그는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불란서로 유학 보내준 좋은 아버지. 깨끗한 교사를 목자르는 나쁜 장학관. 그게 같은 인물이라는 이런 역설. 아무도 광장에서 머물지 않아요. 필요한 약탈과 사기만 끝나면 광장은 텅 빕니다. 광장이 죽은 곳. 이게 남한이 아닙니까? 광장은 비어 있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니 그럴 듯했다. 게다가 북한을 보며 ‘광장에는 플래카드와 구호가 있을 뿐, 피묻은 셔츠와 울부짖는 외침은 없다. 그건 혁명의 광장이 아니었다.’라고 얘기하지 않았던가. 결국 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겉으로 보이는 그 어떤 모습과는 다르게 읽어야 하는 남과 북의 사회였을 거라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밀실과 광장이 갈라지던 날부터, 괴로움이 비롯했다.’고도 말했던 그는 내게도 물었다. ‘그 속에 목숨을 묻고 싶은 광장을 끝내 찾지 못할 때,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사뭇 절실해 보이는 눈이었지만 나는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찾을 때까지 오래 고민하고 방황하는 건 우리 모두가 하고 있던 일이었으니까. 이외에 나는 무엇이라고 더 말할 수 있었겠는가. 그도 굳이 대답을 기대했던 질문은 아니었던 듯 깍지를 끼고 내 옆에 드러누웠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흘러가는 동안 나는 그가 던진 화두를 붙잡고 씨름을 했더랬다. 다른 흥밋거리가 없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가 말하는 ‘목숨을 묻고 싶은 광장’이란 어떤 것인지, 그것을 찾지 못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나 역시도 관심이 갔기 때문이다. 이제와 생각해보자면 사실 그것은 그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이런저런 생각을 했던 이유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것을 내 문제로 여겼기 때문이 아닐지.
 떠나온 곳보다 닿을 곳이 더 가까워진 어느 날, 그는 자신의 과거와 함께 다시 그 얘기를 꺼냈다. 해방 이후의 남한 사회에 실망하고 월북했지만 북한 역시도 자기가 꿈꾸던 곳은 아니었다고. ‘무디게 울리는 소리. 광장에서 동상이 넘어지는 소리 같았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자리에 엎드려서 울고 싶었으나, 울기 위해서는 그는 네 개의 벽이 아직도 성한 그의 방으로 가야 했다. 아니 그의 마음의 방이 아니다. 마음의 방은 벌써 무너진 지 오랬으므로. 그의 둥글게 안으로 굽힌 두 팔 넓이의 광장으로 달려가야 했다.’라며 자신의 경험을 술회하는 그는 담담했다. ‘두 팔 넓이의 광장’이 무어냐고 묻자 어느 날 맞잡은 손을 보다 생각난, 사람 하나가 들어가면 메워질 둥근 공간이라고 했었지. 자신에게 남은 우상은 ‘부드러운 가슴과 젖은 입술을 가진 인간의 마지막 우상’이라며 그는 떠나온 곳도, 닿을 곳도 아닌 먼 데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한 가지 고백을 했었다. 갈매기 두 마리. 출항할 무렵부터 보이던 그 새들은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와 채 태어나지도 못한 딸이라고. 뱃사람한테 얘기를 들었지만 여태 알아보지 못하고 피하려 하고 총으로 쏘려고 했다며 꼭 무엇에 홀려 있었던 기분이라고. 지금의 자신이 부채의 사북자리에 서 있는 것 같았지만, 그걸 알고 뒤돌아보니 푸른 광장이 앞에 펼쳐져 있었다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해성사를 하듯이.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는 자신이 취하게 될 행동을 예비했음이 틀림없다. 왜 그땐 그걸 몰랐을까. 하긴, 사실은 알았다고 해도 말릴 자신이 없었다. 남과 북 모두에서 환멸을 느낀 그에게 나는 무얼 바라고 살아보라 얘기할 수 있을지. 나는 싫기 때문에 떠난 것이지만 그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떠난 것 아닌가. 이제 보면 포로 송환 때 중립국을 선택하고 바깥에서 큰 소리로 웃었던 것은 그였으리라. 어디에도 속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곳. 하지만 그 곳에 이르기 전에 그는 바다와 하나가 되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내가 본 그는 천상 ‘궁리질 공부꾼’이었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던 이상을 찾아 떠났고, 현실과 부딪친 이상들은 산산이 깨어졌다. 그는 사랑에서 이를 위로받으려 했지만 그 역시도 쉽지 않았다. 20년 쯤 전엔 한 시인이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라고 얘기했었지. 그리고 시인은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라며 시를 끝맺었더랬다. 더 이상 부드러운 가슴도 젖은 입술도 남지 않은 그는 빈집에서 얼마나 울었을까. 결국 그는 기대 쉴 수 있는 곳이 없어졌기 때문에 영원히 쉴 수 있는 곳으로 간 것일 게다.
 ‘미친 믿음이 무섭다면, 숫제 믿음조차 없는 것은 허망하다.’고 말하던 그를 거의 5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의 말을 곱씹어 본다. 미친 맹신과 허망한 무신이라. 마치 지금 이 곳을 본 것처럼 얘기하지 않았나. 하긴 밝은 눈을 가지고 늘 고민하고 움직이려 노력했던 그에게는 훤히 들여다보였을 테지. 한 치 앞도 파악하기 힘든 지금, 그래서 그가 더 그리운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광장>을 다시 꺼내 읽었다. 회색인이니 패배주의니 얘기할 수도 있지만, 그 이명준이 왜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것일까. 한동안 - 어쩌면 지금까지도 - 그에게 빠져 있던 나는 여기에 객관적인 대답을 하지 못한다. 아마 ‘그럴싸한 맺음말’ 같은 건 찾지 못한 채 ‘맺음? 맺음말이란 건 무얼 말하는 것일까? 누리와 삶에 대한 맺음말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것만 잡히면 삶 같은 건 아주 시시해지는 그런 무엇일까. 아니 반드시 그럴 것까지는 없고, 또 그러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무엇 때문에 살며, 어떻게 살아야 보람을 가지고 살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라며 고민하는 모습에, 그리고 그 고민의 답을 구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 - 결론이 어떻게 내려졌든 - 에 자신을 비춰보고 공감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할 뿐. 아마 두 명의 독고준을 만나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다면 조금 더 그를 알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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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책
Anonymous 지음, 조영학 옮김, 이관용 그림 / 서울문화사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이름 없는 책.’ 사실 책 제목치고는 낯설다. 저마다 자신의 이름 알리기를 마다하지 않는데 이름이 없다니. 작가 역시도 마찬가지다. Anonymous? 작자 미상이라고? 당신 대체 누구야! 라고 말하고픈 심정. 하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알게 되었다. 우리가 읽는 텍스트와 책 속의 책이 묘하게 겹쳐진다는 것을. 그렇다면, 그 끝엔 무엇이 있을 것인가. 


 Chapter 1은 5년 전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금연과 금주가 중죄가 되는 술집 타피오카. 담배 연기에 찌든 누런 벽과 술집 특유의 냄새가 감싸는 듯한 느낌을 받자마자 그 곳에 이방인이 나타난다. 버번을 주문한 이방인에게 바텐더는 장난을 치고, 술집의 단골들은 텃세를 부린다. 그 모든 걸 다 무시하고 이방인은 버번을 비우는데……. 그리고? 모든 것은 상상에 맡겨둔 채 서술은 5년 뒤를 향한다. 
 Chapter 2에서는 세상의 종말을 막기 위해 수사 두 사람이 후발을 떠난다. 그들이 찾는 것은 어둠이 다가올 때 악의 손에 들어가서는 안 되는 ‘달의 돌.’ 그들이 향하는 곳은 5년에 한 번 개기일식이 일어나는 도시 산타몬데가. 그리고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사흘. 과연 이들은 무사히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까? 
 산타몬데가에 있는 달의 돌. 사실 모든 문제는 이로부터 비롯된다. 마치 할렘을 연상케하는 술집들이 묘사되고- 그 사이에서 전경화되는, 절대로 마음씨 좋다고 말할 수 없을 바텐더와 힘 좀 쓴다는 현상금 사냥꾼, 우연히 굴러들어온 행운(?)을 잡은 남녀, 이들과 교차되는 많은 사람, 사람들. 여기에 이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투입된 형사와 전설로 남은 버번 키드의 이야기가 섞여들며 Chapter 65까지 숨가쁘게 이야기가 진행된다. 아니, 달려간다. 도저히 손에서 떼어놓을 수 없을 만큼.
 

 그리고 끝을 향해 마지막 한 걸음을 남겨두었을 때야 비로소 알게 된다. ‘그가 버번을 들이키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시작된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기대하게 된다. 과연 다음 작품이라는 <달의 돌>에서는 이름 모를 이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또 얼마나 치밀하게 풀어놓을지. 


덧. 평소 영화를 좋아하는 당신이라면 더욱 즐겁게 책을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옮긴이의 짧은 덧말을 통해 수많은 영화 속 인물과 대사를 겨우 따라다닌 나와는 다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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