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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 이야기
베르나르 키리니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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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 증정'이라고 도장이 찍힌 책을 받아들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앞뒤 표지를 살펴보는 것. 앞표지에는 하늘과 땅을 배경으로 붉은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있는 파리지옥이 보였다. 뭐지, 이 현실감 없는 풍경은? 마치 마그리트의 그림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뒤표지의 추천사와 함께 실린 '능청맞고 독특한 상상력으로 프랑스 문단을 놀라게 한 베르나르 키리니'라는 작가 설명. 프랑스에 베르나르, 게다가 상상력이라는 키워드가 더해지자 문득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스쳐 지나갔다. 그럼 대강 전채는 맛본 것 같으니 메인을 즐겨 볼까.

 책을 펼쳤다. '고인들의 목록'이라고 적힌 서문이 보인다. 읽어나가다 보니 뭔가가 이상하다. 흔히 자서(自序)가 들어가기 마련인 이 자리에 다른 사람의 글이 들어가 있구나. 그리고 편집자가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서문 마지막 페이지에 쓰여진 한 줄, '나는 이 책의 친부권을 주장한다.' 도대체 내용이 어떻길래? 라는 군침을 흘리게 만든다.
 메인은 14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코스였다. 오렌지 주스에 피를 섞어 마시는 남자, 성스러운 예하의 방에 두 개의 침대가 놓여 있는 까닭, 나에 대한 다른 사람의 대화를 들을 수 있게 된 남자 이야기, '지금은 모두 죽어버린 몇 작가에 대하여', 논리적 모순으로 가득한 야푸족의 언어, 기름 유출 사고에 미학적으로 대응하는 전문가 집단, 바람기를 비추어주는 거울, '유럽과 기타 지역의 음악 비평 몇 편', 살인청부업자가 말하는 살인의 추억 다섯 가지, 한 작가의 아이디어 수첩을 얻기 위한 작가 지망생의 노력, 독특한 개성을 지닌 피에르 굴드라는 인물 스케치, 알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괴물'이라는 그림, 영원히 취해있게 하는 즈벡이라는 술, 맹수와도 같은 라투렐의 파리지옥. (작은따옴표로 옮긴 것은 단편의 제목이다. 도무지 저 이상으로 잘 잡아낼 수는 없던, 작은 이야기들의 모음. 그리고 그 내용들이 잘 버무려진 현실의 이야기인지 날것 그대로의 상상력인지 구별할 수 없었기에 더욱 할 얘기가 없다. 그러고보니 네타 없이 요약하기란 힘들구나-)
 각각의 이야기들은 스무 페이지 내외밖에 되지 않았지만 음미하기에는 충분한 양이었다. 달달한 맛은 아니었으되, 오히려 쌉쌀하게 남는 뒷맛이 더욱 매력적이었달까. 혹시 twins가 아니었을까 추측한 내 생각을 뛰어 넘어 '환상이라면 이 정도는 보여 줘야지!'라는 듯한 성스러운 예하의 이야기나, 마지막 한 문장이 오랫동안 삐딱하게 웃음짓게 했던 바람기를 비추어주는 거울 이야기, 서문을 쓴 사람이 진짜로 되고 싶어 한 피에르 굴드의 이야기가 특히 더. 

 베르베르가 유토피아-디스토피아의 SF적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면, 키리니는 현실과 환상을 교묘하게 직조하고 있었다. 비현실이라기보다 초현실에 가까운 마그리트적 상상력이랄까. 하나하나 맛을 보다보면 매끄럽게 넘어가지만은 않지만, 그 서걱거림과 씁쓸함이 오랫동안 남는다. 

덧. 그리고 새삼 생각나는, 차례 앞에 자리하고 있던 비어스의 말. '이 놀라운 일들이 현실이라면 나는 미쳐버릴 것이다. 그것들이 상상의 것이라면 난 이미 미쳐 있는 것이다.' 글쎄, 어느 쪽인지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확인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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