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 구운몽 최인훈 전집 1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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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는 버릇을 가지라, 신에 가까워지리라.'

쿠바로 떠날 때부터 읽고자 했던 최인훈의 광장.
행복이라는 것을 곧바로 돈으로 연결시킬 수 없다고 할 때,
나는 장기수들의 삶이 떠올랐다.

장기수들은 과연 행복할까?
자기의 신념을 끝까지 지켜낸 그들의 삶은 행복할까.
몇십년이란 세월을 자신의 신념과 맞바꾼 그들.

이에 예전부터 부채처럼 남아있던 소설.
광장이 떠올랐다.
그 책장을 연지 십년이 지난 이제야 그 책장을 덮는다.

이명준이란 인물은 아주 매력적이다.
그 시대 인텔리겐챠의 전형적인 모습이리라.
대학신문을 옆구리에 꽂고 다니던 철학도 이명준은
뜨뜻미지근한 삶에 지친 나머지,
뭔가 보람차고 열정적인 삶을 꿈꾼다.


하지만 밤손님처럼 불시에 찾아온 월북한 아버지의 소식에
정보기관에 불려다니며 온갖 고초를 다 당하고는
결국 어느날 밤 남한에서의 그의 유일한 광장이었던
애인 윤애를 남겨두고 북한행 배를 탄다.

하지만 북에는 그가 생각한 혁명의 들뜸은 찾아볼 수가 없다.
개인보단 당이 우선인, 성경처럼 떠받들어지는 공산당사가 우선인,
그 모든 말들은 위대한 그 누군가가 이미 다 말해버린 세상이다.
그 속에서 이명준은 할 말이 없다.

화석처럼 답답한 그의 유일한 광장은 발레리나 은혜다.
그렇게 믿었던 그녀도 약속을 어기고 모스크바로 떠난다.
이제 이명준은 악마가 되기로 결심한다.

전쟁이 터지고 윤애를 다시 만나지만
그녀는 예전 친구였던 태식의 아내다.
결국 악마도 되지 못한다.

전세는 북에 점점 불리하게 돌아가지만
다행히도 간호병으로 지원한 은혜를 다시 만나고
그들만의 광장인 동굴에서 원초적 삶을 보낸다.
하지만 그 시간은 오래가지 않는다.

이제 남북, 어느 쪽에도 그의 광장은 없다.
포로를 회유하는 남북한 장교의 얼굴에 침을 뱉듯
호탕하게 그가 선택한 곳은 중립국.

중립국으로 떠나는 타고르호에 탄 그는 골치가 아프다.
중립국에 내가 원하는 광장이 있을지도 확실치 않고,
배 안에서도 그는 밀실이다.

프로펠러 돌아가듯 일렁이는 물보라를 바라보던 그는
신내림이라도 받은 듯 그의 광장을 찾아간다.

책을 읽으면서 자주 감탄했다.
감탄은 감동으로 이어진다.
몇십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날것처럼 생생한 감동을 전해주는 소설.
그게 명작이다.

허영만의 만화 '오! 한강',
박상연의 소설이자 공동경비구역 JSA의 원작인 'D.M.Z'도 떠올랐다.

쿠바에서 느꼈던 불만도 이제야 이해가 된다.
화석처럼 표정없는 시민들.
들뜸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혁명은 완성된 순간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장기수들은 행복할까?
그들도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기가 싫었을 것이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는.
이게 중요한 점이다.


자기가 선택한 일에 자기가 책임을 지는 것.
행복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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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가 만난 이명준
    from 玄月의 낮은 수평선 2010-09-17 15:06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 살아 움직이는 바다. 그 바다 위에서 나는 그를 만났다.  사실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이란 얼마나 많은가. 거리에서 스쳐지나가는 사람들부터 눈을 감는 그 순간에도 잊지 못할 사람까지 수천 명이라는 말로는 모자랄 터. 그런데 왜 나는 40여 년 전 잠깐의 인연이었던 그를 잊지 못하는가. 아마도 인훈의 말처럼 그가 풍문에 만족하지 않고 늘 현장에 있으려고 한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