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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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멤버십 고객님들을 위한 전용 쿠폰 등 매월 다양한 행사를 마련할 예정입니다.
앞으로도 고객님의 많은 이용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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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성 멘트가 아니라 팩트다 팩트 ㅋㅋㅋ

다른 인터넷 서점과 차별화 되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알라딘의 무기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게

한동안 뜸했다.그런데 야시장이라니.ㅋㅋㅋ

어릴적에 동네마다 돌아가면서 야시장을 열었던 정겨운 풍경들은 이제

지난 추억의 저편으로 남았다.지금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은 그게 뭔지도 모르겠지.강북문화의 꽃.야.시.장을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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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6-05-12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요건 몰랐네요..밤시장은 알고 있었지만....맨날 들어와서 휘젓고 다녀서도 모르는게 너무 많아요. 알라딘 마을은 왜 이리도 끝없이 넓은지...내가 관심 깊게 안 둘러 본다는 말은 그래도 안 하고 빠짐..ㅎㅎ

Xoxov 2006-05-12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꽃/저도 오늘 알았는데요.뭘 ^ ^
 
 전출처 : balmas > 이번 주말 평택 평화를 위한 범국민행동을!

평택 군부대 철수! 평화농사 실현! 을 위한 범국민 행동에 함께 합시다.

 


지난 5월 4,5일 이후 정부와 보수언론은 평택 미군기지 확장반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총체적인 공세를 가하고 있습니다. 공권력에 대한 정면도전 운운 하면서 강력한 처벌을 부르짖고 심지어 군형법까지 적용하겠다고 합니다. 주민들이 끝까지 저항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시위대와 주민들을 이간질시키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지금 대추리에서는 군대와 경찰이 상주하면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있고 출입 자체를 통제하고 있습니다. 철조망을 이중삼중으로 치고 농토를 파헤치고 있습니다. 부당한 국가권력을 규탄하고 군대를 철수시켜 평화농사를 짓기 위해 범국민적인 행동이 절실합니다.

서울과 전국 각지에서는 촛불집회가 개최되고 있고 이번 주말에 범국민 촛불문화제와 범국민대회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평택 전쟁기지 건설을 막고 주민들의 평화적 생존권을 쟁취하기 위한 행동에 함께해 주시기를 호소드립니다.


<5월 13일(토)>

16:30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전국노동자대회 (광화문)

19:00 군부대 철수! 평화농사 실현! 범국민 촛불문화제 (광화문)


-> 16시 30분까지 광화문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5월 14일(일)>

11:00 군부대 철수! 평화농사 실현! 범국민대회 (평택 대추초등학교)


-> 오전 8시 30분까지 사회진보연대 사무실로 오시면 차량을 타고 가실 수 있습니다.

-> 대중교통으로 오시려면 10시까지 평택역으로 오시기 바랍니다.

(연락 : 임필수 집행위원장 011-9068-2755, 권태훈 집행위원 016-363-5825)




동북아 전쟁기지 평택 미군기지확장 반대한다!

한반도 전쟁위협 평택 미군기지확장 중단하라!

한미 전쟁동맹 해체하라!

평택 군부대는 즉각 철수하라!

평택을 짓밟는 노무현정권 규탄한다!

철조망을 걷어내고 평화농사 실현하자!

 

 

사회진보를 위한 민주연대

http://www.pssp.org/main/index.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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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후안무치는 시대정신이다

후안무치는 시대정신이다

한때 정치인의 전유물이었던 ‘뻔뻔함’은 이제 대중들의 일상 속으로 … 과연 당신의 진보성은 정치·경제·문화의 삼위일체성을 지키고 있는가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후안무치(厚顔無恥)라는 말이 있다. “뻔뻔스럽고 부끄러워함이 없음”이란 뜻이다. 후안무치에 친화적인 정치판에선 상대편을 비난할 때 자주 쓰는 상용어지만, 보통 사람들 사이에선 큰 욕이다. 넓고 묽게 보자. 후안무치를 도덕의 경계선상에 걸쳐 있는 하나의 인간적 특성으로 보자.

김구가 이승만의 적수가 되지 못한 이유

정치인의 제1 자질이 무엇일까? 단연 후안무치다.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보통 사람의 도덕감정을 고수하면서 정치를 한다는 건 사실 거의 불가능하다. 정치인에겐 비상한 수단을 사용하고 상황에 따라 언행을 바꿔야 할 필요성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 정치인의 제1 자질은 ‘후안무치’다. 대통령이 된 사람은 경쟁자들과 비교할 때 이 자질이 더 뛰어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3당 합당을 만들어내며 그 능력을 잘 보여주었다. 1990년 1월 3당 합당 발표 장면. (사진/ 연합)

다른 나라를 볼 것도 없이 한국 현대사만 살펴봐도 이는 분명해진다. 대통령이 된 사람들은 경쟁자들과 비교해볼 때 후안무치 자질이 더 뛰어났다. 예컨대 이승만과 김구를 비교해보라. 김구도 다른 독립투사에 비하면 꽤 후안무치한 편이었지만 감히 이승만의 적수는 되지 못했다. 이는 대통령들에게 다른 탁월한 능력과 자질이 있었다는 걸 부정하는 게 아니다. 다른 탁월한 능력과 자질은 기본이고 거기에 후안무치 자질이 더해져야만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김영삼부터 살펴보자. 3당 합당과 내각제 각서 파동은 김영삼의 탁월한 후안무치 능력을 보여주었다. 정계은퇴 식언과 ‘20억+알파’ 사건은 김대중의 후안무치 능력을, 대선후보 전 동교동계에 대한 우호적 태도와 지역주의 양비론의 일시적 위장 등은 노무현의 후안무치 능력을 입증해준다.

대체적으로 보아 높이 오른 사람일수록 후안무치를 저지른 건수가 더 많고 농도가 더 강하다. 피부가 얇고 부끄러움을 잘 타는 사람이 정치인이 되거나 조직의 리더가 된 걸 본 적이 있는가? 설사 있다 하더라도 유능하진 않았을 게다.

정치는 인간의 야수적 속성을 다루는 영역이다. 어느 영역치고 그 속성과 무관하랴만, 본격적인 권력투쟁이라는 점에서 정치를 따라갈 수 있는 영역은 없다. 경제 영역의 투쟁도 무섭긴 하지만, 그쪽은 이익 중심이기 때문에 이익과 더불어 이념·명분 등이 칼춤을 추는 정치판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이는 경제계의 거물이었던 정주영과 김우중이 정치판에 뛰어들거나 기웃거리다가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졌는가를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경제 영역에서도 후안무치가 경쟁력이라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최근의 삼성과 현대차 사태를 보라. 왜 잘나가는 재벌그룹 총수일수록 후안무치의 농도가 강한가? 그건 평소 후안무치했기 때문에 그 위치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는 답으로 대신하면 되겠다.


△ 올 초부터 대학 내 선거 관리권은 선거관리위원회로 2004년 총장임명 후보자 선출선거를 하고 있는 한 대학의 교직원들. (사진/ 연합 조용학 기자)

주변을 둘러보기 바란다. 후안무치 자질이 비교적 뛰어난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게다. 그들에겐 좋은 점이 많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교섭하고 해결하는 능력이 비교적 탁월하다. 선수는 선수를 알아보는 법이다. 이미 권력을 가진 쪽은 후안무치 자질이 뛰어난 즉, 같은 선수를 알아보고 요청·요구에 응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뻔뻔함’은 새로운 철학적 사유 양식

후안무치 자질이 뛰어난 사람이 자신의 후안무치를 자각할 수 있는가? 없다! 바로 여기서 비극이 싹튼다. 자신이 후안무치하다는 자의식을 갖게 되면 후안무치를 구사하기 어려워진다. 후안무치를 “안녕하세요”라고 가볍게 인사하는 기분으로 체화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보통 사람의 상식적 판단을 넘어서는 일을 해도 그게 얼마나 큰 문제인지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같은 후안무치 자질을 가진 측근 인사들에게 의존해봐야 별 도움이 안 된다.

대중은 묘한 동물이다. 그들은 정치인의 후안무치가 필요악임을 흔쾌히 인정하면서도 어느 순간 돌아서서 후안무치하다고 욕을 한다. 언제 어느 경우에 그러는지 그건 확실치 않다. 그들은 “해도 너무하네”라고 하는데, 과연 어디까지가 괜찮고 어디서부터 너무한 건지 그들 자신도 답을 갖고 있진 않다. 그래서 정치는 늘 대중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게임이 된다.

1920년대 후반 미국 마피아 조직을 주름잡았던 알 카포네는 “상류사회란 사회적 지위를 잃지 않고 이익을 만끽하려는 뻔뻔스러운 놈들로 이 ‘훌륭한 사람들’은 합법적인 공갈을 일삼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폭이 감히 그런 말을 해? 아니다. 상류층의 후안무치가 임계점을 넘어서면 조폭도 당당해진다. 일반 대중인들 무얼 망설이랴. 민주화 이후 한국인에게 나타난 두드러진 특성 중 하나는 후안무치의 일상화다. 후안무치는 시대정신의 반열에 올랐다. 보수파들은 그게 민주화 탓이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그게 아니다. 후안무치의 엘리트 독식 체제에서 대중화 체제로 넘어간 것이다. 그러니 일단 긍정적 변화로 보는 게 옳다.

그건 마치 아줌마들의 후안무치를 비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남존여비 가부장 체제하에서 처녀 때까지 억눌려왔던 후안무치 욕구가 애 낳고 폭발하면 원인부터 따져보는 게 옳다. 나는 후안무치해도 좋지만 너는 안 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후안무치의 평준화는 사회 정의다.

독일에 페터 슬로터다이크라는 괴짜 철학자가 있다. 이 사람은 ‘위선적 계몽주의’를 질타하면서 ‘뻔뻔함’을 새로운 철학적 사유 양식이자 실천 항목으로 제시했다. 이론과 명분대로 살려면 위선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 그대로의 표현 양식이라 할 뻔뻔함을 발휘하면서 문제를 짚어보자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 깨닫기 어려운 심오한 뜻이 있겠지만, 후안무치를 다시 보자는 메시지만큼은 그대로 접수해도 좋겠다. 사실 한국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실천돼온 것이다. 한동안 열풍이 불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아이 기(氣) 살려주기 운동’도 기실 따지고 보면 이 후안무치한 세상에서 내 새끼 경쟁력 키워주겠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후안무치 경쟁

지금 이 후안무치 이야기를 행여 냉소로 이해하면 크게 실수하는 거다. 지금 우리는 세상의 문법에 대해 탐구하는 것임을 잊지 말자.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후안무치 경쟁’이 이대로 좋은가 하는 걸 정색을 하고 살펴보자는 뜻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혁명의 순수성은 2주일을 넘길 수 없다”고 했다. 민주화운동이나 개혁의 순수성은 얼마나 갈까? 2개월? 2년? 얼마이건 그 주체는 모른다. 왜 그런가?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그 주체에겐 후안무치 자각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멀리서 보기엔 이미 순수하지 않은데도 자신은 순수하다고 생각하는 걸 무슨 수로 막으랴.


△ <조선일보>는 문화적으로 ‘좌파 담론’의 상품화에 열을 올리는데, 그건 단지 극우성을 위장하려는 술책일까. 상점 앞의 신문 가판대.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농민운동가 천규석이 <쌀과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지나고 보니, 60~80년대까지의 그 풍성했던 민주화운동이란 것들도 잘난 놈들에게는 입신출세와 물질적 보상이라는 두 가지의 전리품을 동시에 거두어갈 기회로 활용되었다”고 독설을 퍼부었을 때,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런 말을 듣지 않으려면 민주화운동을 한 인사들은 어떤 공직도 맡지 않고 계속 밖에서만 떠돌아야 하고, 공직은 운동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 독식해야 한다는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리 생각한다. 천규석이 말하고자 한 건 운동가들의 공직 진출 자체가 아니라 공직 진출 이후 보여주는 모습일 거라고 이해하게 되었다. 이는 글과 말로만 운동을 했던 지식인들에게도 해당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혹 나는 나의 글을 입신출세와 물질적 보상이라는 두 가지의 전리품을 챙기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고 있는 건 아닌가? 모든 지식인들이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질문이다. 후안무치는 정치인들만의 무기는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고종석은 언젠가 ‘글쓰기의 무서움’이란 글에서 “자신의 발언을 자신의 발 밑에 조회해보는 일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일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자신이 실천할 수 있는 것 너머를 이야기하지 않는 절제는 공적 발언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 모두에게 긴요한 덕목이 되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반론이 있을 수 있겠다. 자신이 실천할 수 없다 하더라도 옳은 메시지라면 널리 전파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이런 반론에도 일리는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로 인한 문제가 사회적으로 너무 심각하다는 걸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한국 사회엔 ‘담론의 거품’이 너무 심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좀 유치한 이야기를 해야 되겠다. 구체적 각론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이야기는 유치해질 수밖에 없다는 변명도 덧붙이면서 말이다.

적어도 <한겨레21> 수준의 잡지에선 ‘부국강병론’이니 ‘소득 2만달러론’이니 하는 것은 경멸받기 딱 좋은 보수파 담론으로 통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경멸이 과연 정직한 것인가에 강한 의문을 품고 있다. 바꿔 말하자면, 국가주의·민족주의는 무조건 때려야 진보고 품위 있는 지식인으로 통하는 이 풍토가 언행일치를 전제로 한 정직성에 근거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잠시 <조선일보>를 보자. 이 신문은 자주 문화적으론 ‘좌파 담론’의 상품화에 열을 올린다. <조선일보>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극우성을 위장하려는 술책이라는 모범답안을 내놓을지 모르겠다. 일리 있는 주장이지만, 과연 그게 전부일까? 그게 그 신문 독자들이 원하는 상품이기도 하다는 걸 인정할 수 없는가?

“잘 살아보세”는 “잘 써보세”로 바뀌고…

‘보보스의 법칙’이란 게 있다. 미국에서 학생운동권 출신이지만 일류대를 나와 좋은 직장을 갖게 된 이른바 ‘보보스족’이 정치경제적 풍요를 누리면서 과거 운동권 시절과 비교해 갖게 되는 불편한 마음을 해소하고자 문화적으로만 진보 냄새를 피우는 걸 말한다.

과연 <한겨레21>의 독자들은 <조선일보> 독자들과 얼마나 다른가? 당신의 진보성은 정치·경제·문화의 삼위일체성을 지키고 있는가? 물론 삼위일체를 고수하는 게 옳다거나 바람직하다는 법은 없다. 얼마든지 각기 따로 놀 수 있다. 다만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그 어떤 일관된 경향성에 주목해보자는 것이다.

많은 지식인들이 김대중 정권은 물론이고 노무현 정권이 경제적으로 ‘성장주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동의한다. 그런데 ‘성장주의 패러다임’이 과연 한국인 다수가 벗어나기를 원하는 것인가? 돌이키기엔 이미 너무 멀리 나간 것 아닌가?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는 사라진 유물이 아니다. “잘 써보세”로 바뀌었을 뿐이다. 민주시민의 윤리는 소비자 윤리로 대체되었다. 소비자가 악덕 상인에 분노하듯, 민주시민은 악덕 정치권에 분노하는 정도의 윤리는 갖고 있지만, 단지 거기까지뿐이다. 민주주의는 소비주의와 결탁했다. 민주시민은 그 이상의 선은 넘으려 하지 않는다.

일부에 지나지 않을망정, 그 패러다임을 비판하는 지식인들도 매년 해외여행을 하고 중형차를 굴리고 골프를 치기도 한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대학은 재벌 총수들에게 구걸하다시피 해서 얻은 돈으로 이른바 ‘대학 개혁’을 하고 있지만, 그것에 저항하진 않으며 그로 인한 수혜만 누린다.

이런 지적은 부당한 것일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질문을 받았던 미국의 노엄 촘스키가 짜증을 냈듯이, 유치하다고 짜증을 낼 만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논점은 지식인 개개인이 아니라 집단적 차원의 담론 생산이 현실 세계와 맺는 관계다. 그 괴리가 클수록 지식인의 ‘상징 자본’은 튼실해질 수 있겠지만, 그것이 과연 세계를 바꾸는 데 어떤 실천력을 갖는가는 별개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제도와 법의 차원에선 한국 사회는 개혁을 할 만큼 했다. 물론 할 게 더 남아 있고 앞으로 더욱 해야겠지만, 제도와 법만으론 해결할 수 없는 한 가지가 남아 있으니 그게 바로 의식과 행태의 영역이다. 예컨대 정치판에선 ‘보스 정치’가 거의 사라졌지만, 대학엔 건재하다. 학연주의와 파벌주의는 정치권 뺨을 치고도 남는다. 대학 내 선거 수준도 직업 정치판 선거보다 높지 않다는 이유로 관리권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빼앗겼다. 그런데 나를 포함해 그 바닥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늘 사회를 향해서만 설교를 늘어놓는다.

정치권 동지들을 새삼 경외하다

자신의 후안무치에 대해 가끔이나마 자각을 한다는 건 괴로운 일이다. 그럴 때마다 글쓰기가 몹시 싫어지니까 말이다. 공적 발언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자신이 실천할 수 있는 것 너머를 이야기하지 않게 되면 여러 가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 무엇보다도 언행일치를 하는 사람 위주로 글쓰기 시장이 물갈이돼 담론과 세상의 거리가 좁혀지고 그에 따라 실천력도 강해질 게 아닌가. 정치권의 후안무치 동지들에게 새삼 경외감을 갖게 된다. 그들에겐 이런 고민도 없을 터이니 말이다. 아닌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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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oxov 2006-05-10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알기론 준만이의 '후안무치'도 대단하지 싶다.'기회주의'는 어떻고........ㅋㅋ <한국인의 코드>도 날림이더만.
 
 전출처 : balmas > 촛불 문화제에 대한 단상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 문화제에 며칠 다니다 보니 한두 가지 의문과 불만이 생긴다.


우선 촛불 문화제의 전반적인 기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집회 공간을 확보하려는 의도

 

때문이겠지만, 전반적인 진행과 분위기가 다소 감성적인 방향에 치우친 게 아닌지 모르겠다.

 

대추리에서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 사실을 알리고 그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할 테고, 여러 가지 문화적 행사로 집회의 경직성을 완화하는 것도 바람직하겠지만,

 

지금까지 촛불 문화제는 다소 감성적인 데다 약간 타성적인 측면까지 있는 것 같다.

 

 

미군 기지 이전 문제는 상당히 추상적이고 지적인 문제다. 다시 말하면 왜 기지 이전이 그처럼 

 

문제가 되는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시민과 학생들이 왜 이 문제로 그처럼 완강하게

 

저항을 하는지 이해하려면 상당한 정보와 이해력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에 분노하고

 

처음으로 군인들이 민간인들과 대치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나타내는 사람들도

 

문제의 성격과 의미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아마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 중 상당수도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또는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이런 문제에 관해 어떤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온 사람들일 것이다.

 

감성적인 방향으로 집회를 마련하는 것은, 당장에는 얼마간 효과를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미군 기지 이전과 같은 문제, 또는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의 평화의 문제 같은

 

상당히 추상적이고 지적인 문제에 대해 공감대를 넓히고 이를 통해 운동의 지속력과

 

확산력을 얻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당장 인터넷 사이트나 게시판만 보더라도, 시위대들의 불법성이나 폭력성을 나무라는

 

글들 못지 않게, "그래서 어쩌자는 것이냐?", "도대체 수도에서 빠져나가겠다는 데

 

그걸 왜 문제 삼느냐?"는 식의 반론들을 자주 접할 수 있다. 이는 물론 악의적인 의도로

 

단 댓글들일 수 있지만, 내 생각에는 이런 의문들에 대해 제대로 답변하지 않는다면,

 

평택 기지 이전 문제를 둘러싼 싸움은 그다지 전망이 밝지 못할 것 같다.

 

 

일단 지난 주말의 싸움으로 이 문제를 사회적인 의제로 확산시키는 데는 성공한 것 같다.

 

그건 모두 헌신적으로 싸움을 벌여준 여러 시민, 학생들 덕분이다. 이제는 운동의 지속과

 

확산을 생각해봐야 할 것 같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집회나 싸움을 좀더 "지적으로" 또는

"이성적으로" 꾸며야 하지 않을까 한다. (물론 평택 대추리, 도두리라는 상징적인 공간을

 

둘러싼 물리적 투쟁은 계속 되어야 할 것이다. 5. 14, 5. 18 집회도 차질없이 준비하고

 

추진해야 하고 ...)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문화제, 집회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집회를

 

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내가 집회를 직접 준비해보거나 운영해본 경험이 없어서 구체적인

 

조언을 주기는 어렵지만, 가령 이런 방법들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문화제에서 나누어주는 유인물을 보면, 경찰의 진압이 얼마나 잔혹했으며, 군대의 투입은

 

평택을 제 2의 광주로 만들고 있다는 식의 내용에 그치는 것 같다. 그런 것도 좋지만

 

유인물의 내용을, 좀더 포괄적인 주제에 대해 지적인 토론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것으로

 

바꾸어보면 어떨까? 그렇다고 추상적이고 어려운 어휘들을 동원해서 복잡한 논의를

 

하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시민들이 궁금해하는 쟁점들에 대해 구체적이고 분명한 답변을

 

줄 수는 있어야 하고 또 그것들을 최소한 다루기는 해야 한다는 뜻이다. 솜씨 있는 사람들이

 

만화나 삽화를 넣어서 알기 쉽게 내용을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선전의 공간을 좀더 넓혔으면 한다. 학교 안이나 집회 장소만이 아니라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의 쟁점을 정확히 알리고 이를 토론의 주제로, 토론 가능한

 

주제로 만드는 게 필요할 것 같다.

 

 

평택 문제를 둘러싼 싸움에서 노무현 정권의 기본 전술은 평택을 사실상 점거한 가운데

 

평택 주민들과 일반 시민들을 분리시키는 데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은 조중동도 적극

 

추천하고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이러한 사실상의 점거가

 

부당한 것이고, 또 평택은 평택 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설득하는 데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감성에 호소하는 방법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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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S2D&office_id=001&article_id=0001293673§ion_id=100§ion_id2=265&menu_id=100

그는 공천비리와 동영상 파문 등 잇단 악재에도 불구하고 당 지지도가 떨어지지 않은 데 대해 "정치권이 깨끗해지기 위해 한번은 거쳐야 할 과정인 데다, 당이 비리를 용납하지 않고 엄정한 자정의지를 보였기 때문"이라고 자평했다.

그(녀)는 박근혜다.자뻑 증세가 심각하다.게다가 "대선"(?)출마라고라고라고라(?) 

음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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