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balmas > 촛불 문화제에 대한 단상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 문화제에 며칠 다니다 보니 한두 가지 의문과 불만이 생긴다.


우선 촛불 문화제의 전반적인 기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집회 공간을 확보하려는 의도

 

때문이겠지만, 전반적인 진행과 분위기가 다소 감성적인 방향에 치우친 게 아닌지 모르겠다.

 

대추리에서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 사실을 알리고 그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할 테고, 여러 가지 문화적 행사로 집회의 경직성을 완화하는 것도 바람직하겠지만,

 

지금까지 촛불 문화제는 다소 감성적인 데다 약간 타성적인 측면까지 있는 것 같다.

 

 

미군 기지 이전 문제는 상당히 추상적이고 지적인 문제다. 다시 말하면 왜 기지 이전이 그처럼 

 

문제가 되는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시민과 학생들이 왜 이 문제로 그처럼 완강하게

 

저항을 하는지 이해하려면 상당한 정보와 이해력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에 분노하고

 

처음으로 군인들이 민간인들과 대치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나타내는 사람들도

 

문제의 성격과 의미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아마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 중 상당수도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또는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이런 문제에 관해 어떤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온 사람들일 것이다.

 

감성적인 방향으로 집회를 마련하는 것은, 당장에는 얼마간 효과를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미군 기지 이전과 같은 문제, 또는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의 평화의 문제 같은

 

상당히 추상적이고 지적인 문제에 대해 공감대를 넓히고 이를 통해 운동의 지속력과

 

확산력을 얻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당장 인터넷 사이트나 게시판만 보더라도, 시위대들의 불법성이나 폭력성을 나무라는

 

글들 못지 않게, "그래서 어쩌자는 것이냐?", "도대체 수도에서 빠져나가겠다는 데

 

그걸 왜 문제 삼느냐?"는 식의 반론들을 자주 접할 수 있다. 이는 물론 악의적인 의도로

 

단 댓글들일 수 있지만, 내 생각에는 이런 의문들에 대해 제대로 답변하지 않는다면,

 

평택 기지 이전 문제를 둘러싼 싸움은 그다지 전망이 밝지 못할 것 같다.

 

 

일단 지난 주말의 싸움으로 이 문제를 사회적인 의제로 확산시키는 데는 성공한 것 같다.

 

그건 모두 헌신적으로 싸움을 벌여준 여러 시민, 학생들 덕분이다. 이제는 운동의 지속과

 

확산을 생각해봐야 할 것 같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집회나 싸움을 좀더 "지적으로" 또는

"이성적으로" 꾸며야 하지 않을까 한다. (물론 평택 대추리, 도두리라는 상징적인 공간을

 

둘러싼 물리적 투쟁은 계속 되어야 할 것이다. 5. 14, 5. 18 집회도 차질없이 준비하고

 

추진해야 하고 ...)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문화제, 집회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집회를

 

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내가 집회를 직접 준비해보거나 운영해본 경험이 없어서 구체적인

 

조언을 주기는 어렵지만, 가령 이런 방법들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문화제에서 나누어주는 유인물을 보면, 경찰의 진압이 얼마나 잔혹했으며, 군대의 투입은

 

평택을 제 2의 광주로 만들고 있다는 식의 내용에 그치는 것 같다. 그런 것도 좋지만

 

유인물의 내용을, 좀더 포괄적인 주제에 대해 지적인 토론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것으로

 

바꾸어보면 어떨까? 그렇다고 추상적이고 어려운 어휘들을 동원해서 복잡한 논의를

 

하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시민들이 궁금해하는 쟁점들에 대해 구체적이고 분명한 답변을

 

줄 수는 있어야 하고 또 그것들을 최소한 다루기는 해야 한다는 뜻이다. 솜씨 있는 사람들이

 

만화나 삽화를 넣어서 알기 쉽게 내용을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선전의 공간을 좀더 넓혔으면 한다. 학교 안이나 집회 장소만이 아니라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의 쟁점을 정확히 알리고 이를 토론의 주제로, 토론 가능한

 

주제로 만드는 게 필요할 것 같다.

 

 

평택 문제를 둘러싼 싸움에서 노무현 정권의 기본 전술은 평택을 사실상 점거한 가운데

 

평택 주민들과 일반 시민들을 분리시키는 데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은 조중동도 적극

 

추천하고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이러한 사실상의 점거가

 

부당한 것이고, 또 평택은 평택 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설득하는 데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감성에 호소하는 방법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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