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조금씩 자란다 -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사랑의 말들
김달님 지음 / 미디어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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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견딤이라고 하지만, 그 이상의 슬픔과 고통을 참기 위해 안감힘을 쓰며 살아간다. 살아가면서 힘든 아픔을 주는 것은 인연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많지만 반대로 그 인연에서 위로받으며 살아나가는 게 인생이다.


인생을 살면서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우연한 만남을 경험한다. 지금 일상을 함께 보내는 가족, 친구, 연인, 동료들도 한때는 너무나 뜻밖의 우연으로 시작되었고 그들 중 누군가는 삶을 함께하는 인연으로, 누군가는 중간에 헤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수많은 사람들과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되는 인생에서 우리는 어떻게 그들과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에서 저자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느끼는 삶의 희로애락을 통해 그저 가까이 혹은 멀리에서도 함게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 때, 마음의 유대는 더 특별하게 유지되고 완성되어 간다.

"나는 그러한 순간을 누군가가 들려준 말과 이야기 속에서 만난다. 모두가 아는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 살면서 어렵지 않게 만나는 주변 사람들의 말. 내게는 한 명 한 명 다르게 특별하지만 그 사람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이들이 더 많은, 결국엔 내가 아는 평범하고 특별한 사람들의 말." - 프롤로그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나는 그 가운데에서 바로 서는 법에 혼란을 느꼈다. 어디서 내가 나일 수 있으며 내가 나라고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생각했다. 목소리를 높이고 내 색깔을 드러낼 때 나는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으며, 묵묵하고 순할 땐 쏟아지는 탁한 이야기들을 받아들여야 했다. 마치 그들의 세상 안의 오게 된 이방인처럼.

가끔 20년이 넘게 함께 한 친구 녀석의 짜증이 이해가 되지 않고 화가 날 때가 있다. 예전 같았으면 벌써 화를 내었을 법도 하지만 언젠가부터 상대방을 이해해 보려는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나의 서툰 감정으로 인해 틀어진 안타까운 인연들이 아쉬웠을까 아니면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일상의 이런 익숙한 상처와 통증은 시간이 지나면 낫게 될 것임을 알기에 무심해진 탓일까. 아무것도 아니다. 이렇게 저렇게 하면 나아질 거라는 자신만의 처방으로 상처는 더 이상 일상을 괴롭히지 않는다. 아프면, 안 아파지는 날이 올 거라 믿는 어른이 된 것이다.

"나는 그런 게 좋았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가 어떤 삶들과 함께 살아가는지 구체적으로 감각하게 되는 순간이, 내가 모르는 인생이 이토록 많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찾아오던 놀라움과 부끄러움. 그와 동시에 또렷하게 생겨난 삶에 대한 애정과 의지가." p91

지나간 시간에만 존재하는 기억과 추억. 추억은 기억보다 따뜻하다. 외워 저장된 기억이 아닌, 지나간 많은 시간 중 잊히지 않는 그 한 번, 한순간을 그리워하는 마음의 시간인 추억은 따뜻하다. 소중했던, 애틋했던 추억들은 아주 작은 것이라 해도 결국 견디는 힘이 되어 줄 것이라 믿고 싶다. 특별함이 아닌 내 안의 사소함으로 행복했으면 좋겠다. 각자의 생의 시간으로부터 사소함을 꺼내어 배를 만들고, 사소함이 가진 의미로 돛을 만들어, 조금은 나은 미래로 고요히 흘러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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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무를 만질 수 있을까
김숨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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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을 묵묵히 산을 지켜온 나무들의 존재는 참으로 위대한다. 인간의 수명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영원과 같은 시간들 속에 존재해 왔던 나무의 삶은 놀랄 만큼 이상적인 인간의 삶과 닮아 있고, 인간이 삶의 영역을 확장하면서 밀려난 나무를 보고 있으면 인간에게서 느끼는 연민이 느껴졌다.

자연에 큰 영향이라도 주는 존재처럼 떠들어 대는 우리들의 오만함 위로 가을은 또 어김없이 곁에 와 있다. 어느덧 내 키보다 훨씬 커버린 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의 흐름, 그건 지날 때는 무척이나 느리고 지나가면 또 얼마나 빨리 가버리는 것인지, 게다가 오는 시간은 한 살 더 먹을수록 왜 그렇게 더 빨라지는지. 나에게 허락된 시간이 이제 얼마 남았든, 괜한 짓에 나를 더 이상 낭비하는 것이 이제서야 아까워지기 시작한다.

뿌리를 사용해 미술작품을 만드는 주인공의 연인과 매우 더딘 연애를 이어가고 있는 '나'는 그의 뿌리에게서 어린 시절 고모할머니와의 기억을 떠올린다. 노년에 홀로된 고모할머니는 '나'의 집에 들어와 같은 방을 쓰게 되고 자신에게 내밀었던 손을 거부했던 기억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그의 뿌리 오브제를 통해 다시 떠올리게 된다.

"갤러리를 나와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데 고모할머니의 손이 불현듯 그리웠다. 내게 남은 나날 동안 그렇게 간절히 내 손을 잡아줄 손이 또 있을까 싶은 게." p107

언젠가 아버지의 직업을 부끄럽게 생각하던 철없는 시절과 오버랩 되는 '나'의 모습에서 깨닫게 되는 건 시간은 감정을 엷게 할 뿐이고, 잊고 싶은 부끄러웠던 순간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뿐 그 흉터는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당신과 나 그 사이 눈물 나지 않을 만큼 그리운 거리, 헤어지지 않을 만큼 손잡을 수 있는 거리, 떠난 뒤에도 후회하고 돌아올 수 있는 거리, 꼭 그만큼의 사이 그 사이로 노을이 진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고모할머니가 손에 꼭 그러잡고 있던 게 뭐였는지 알아? 내 손이었어. 그녀가 양로원에서 돌아가시던 날 밤, 그녀의 손이 내 방에 날아들어 이불을 들추고 더듬어오는 걸 나는 다 느끼고 있었어. 내 손을 찾아 더듬더듬 더듬어오는걸...." p108

지금 내 곁에 함께 가는 이것들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면서 세상과 아름다움을 소통할 수 있을까. 뒤돌아 보면 눈물이 날 만큼 아련한 아픔을 간직한 것들. 눈에 보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보이지 않기도 하며, 손에 잡히지만 잡히지 않기도 한다. 말로써 전해지기도 하고 눈빛으로, 사소한 손짓 하나만으로도 감정과 이어지는 그것을 깨달았을 때 밀려오는 안타까움이 가슴을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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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하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안보윤 외 지음, 이혜연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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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기중심적인 동물이다. 코로나19가 끝나가는 지금 우리의 일상은 빠르게 회복되어 가지만 끝을 알 수 없는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이기적인 민낯이 여실히 드러났다. 보이지 않는 곳에는 저소득층과 저기술 노동자, 돌봄 노동을 떠안은 여성과 자활하지 못하는 노인,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까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은 소외되고 방치되어 왔다. 적응하지 못한다고, 우리와 다르다고 차별하고 거리를 둔 것은 왜일까?

타인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도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온전히 이해할 수 없어도 배려할 수는 있다. <공존하는 소설>에 실린 여러 이야기들로 타인에 대한 공감과 배려의 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열악한 환경에 놓인 이들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희망하며 만들어졌다.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에 실려 있는 최은영 작가의 <고백>에서는 주인공 미주가 수사가 된 옛 애인 종은에게 평생 간직하고 있었던 아픔을 이야기하면서 시작된다. 누구보다 친했던 미주, 진희 주나 세 사람은 진희의 조심스러운 고백 후 틀어지게 된다.

"넌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하지.

그리고 그럴 수도 없을 거야. 넌 내게 무해한 사람이구나."

완벽한 신뢰를 느끼며 말했던 '무해한 사람'이란 미주의 오만에서 오는 착각이었다. 그 사람을 완벽히 알고 있다는 착각에서 오는 안도감. 성소수자였던 진희의 고백 후, 무너진 그들의 관계에서 느꼈던 안타까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자신의 비밀을 고백해야 했던 진희, 이해할 수 없었던 주나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미주의 감정이 가슴을 울렸다.

김숨 작가의 소설집 '국수'에 실려있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에서는 한파가 들이닥친 밤에 한 노인은 죽은 아내가 데리고 온 개 한 마리와 차디찬 방안에 누워있다. 가스비가 두 달이나 밀려있고 보일러도 고장이 난 상태다. 방 안에서 온기를 내뿜는 것이라고는 아내가 데리고 온 그 개뿐이지만 절대로 가까이하지 않을리라고 다짐한다. 추위에 생명이 다해 가는 노인을 구하려 온기를 나누어주려는 개의 노력에도 결국 목숨을 잃고 만다.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성격을 가진 이 노인이 아내가 데리고 온 개의 온기라도 받아들였다면 살 수 있었을까? 결국 그의 마지막을 지켜본 것은 인간이 아닌 하찮게만 생각했던 그 개였다.

"햇빛은 그의 방 창으로도 들이쳤다. 어둠과 냉기가 밤새 매몰차게 지배하던 방 안이 서서히 밝아 왔다. 개의 누렇고 가느다란 털이 그의 얼굴 위에서 떠다녔다. 천장을 향해 한껏 벌어진 그의 입은 좀처럼 다물릴 줄 몰랐다. 보온 밥솥에는 여전히 빨간 불이 들어와 있었다."

소설집 '마음에 없는 소리'에서 깊은 인상을 주었던 <공원에서>를 다시 읽게 되었다. 주인공 수진은 큰 키에 짧은 머리로 종종 남자로 오해받는다. 하지만 그녀가 느끼는 감정은 불쾌함보다는 남자로 인식되었다는 안도감이다. 최근 공원에서 한 남자에게 폭행을 당하고, 어린 시절에는 버스에서 추행을 당하며 여자로서의 삶이 만만찮음을 느끼게 되었다. 보호받아야 마땅한 자신의 상황이 유부남과 불륜 관계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과연 주위 사람들은 그녀의 편이 되어줄까? 반대로 비난하지는 않을까?

"남자로 오해당하는 건 괜찮았다. 때로는 안전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성가신 건 내가 여자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였다. 어떤 사람은 죽을 지었다는 듯 사과를 했는데 그것도 좀 웃긴 일이지만 그건 그런대로 점잖은 편이랄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조언을 했다. 머리를 기르라거나 화장을 하라거나 좀 더 여성스러운 옷을 입어 보라거나 말할 때 솔 톤을 내는 것이 좋다는 식이었다."

내게는 당연한 행동이 타인에 대한 혐오일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타인에게 약자에게 피해자에게 혐오를 드러내고 상처를 입히는 가해자 또는 공범자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사는 일상 곳곳에 공기처럼 차별과 혐오가 스며들어 있다.

모두가 평등을 바라지만, 마음만으로 평등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우리들은 서로에게 차별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고 경청함으로써 은폐되거나 익숙해져서 보이지 않는 불평등을 감지하고 개선할 수 있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평등도 저절로 오지 않는다. 불평등한 세상에서 모두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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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문학동네 청소년 66
이꽃님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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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눈부시게 찬란할, 우리의 열일곱 번째 여름"

강렬한 태양의 퇴약빛.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 그 위를 지나는 나뭇잎 스치는 소리는 계곡의 휘파람 소리로 돌아와 흐르는 땀을 씻어주고, 파고드는 산바람은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날마다 조금씩 방향을 달리하며 붉은빛 고운 자태로 빛나던 저녁노을과 멀리 경부선 열차가 지나가며 남기던 아련한 기적소리는 아직도 귓가에 잔잔하다. 가슴 설레는 추억이 녹아있는 여름을 좋아한다. 이꽃님 작가의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에도 가슴 설레며 기다리던 여름의 푸르름이 담겨 있었다.

시골의 푸르름과 활기가 담겨 있는 정주군이라는 가상의 마을을 배경으로 듣고 싶지 않아도 타인의 마음이 들리는 유찬과 평생 엄마와 둘이서 살아오며 유도를 하고 있는 지오. 이 두 사람의 시선으로 번갈아 전개된다. 화재로 부모님을 잃은 유찬과 어머니와 자신은 아버지에게 버려진 거라며 스스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는 지오는 운명처럼 서로를 만나면서 각자가 가지고 있던 고유의 아픔을 꺼내놓는다.

같은 반이 된 지오와의 만남에 유찬은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주의 마음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고요가 찾아오게 된다. 자신을 괴롭히던 마음의 소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지오에게 호기심을 느낀 유찬은 지오 역시 자신과 같은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호기심이 아닌 다른 감정으로 바뀌게 됨을 느끼게 된다.

"고요가 찾아온다. 갑작스러운 고요에 멈칫, 곧이어 귀에서 삐- 이명이 울려온다. 온갖 소음들로 섞여 있던 공간은 침묵 속에 "미안."이라는 그 아이의 선명한 목소리만 남는다. 그 짧은 순간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영원같이 느껴져 그 아이가 내 옆을 스쳐 가고, 다시 소음이 들려오기까지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p24

서울에서 정주의 번영읍으로 전학 온 지오는 평생 얼굴 한번 보지 못했던 아버지와 만나게 되지만 무려 경찰의 모습으로 마중 나온 아버지의 모습에 더욱 증오하게 된다. 같은 반 유찬과의 첫 만남에 유찬이 떨어뜨린 에어팟을 밟아 부러뜨리게 되면서 유찬과의 인연이 시작된다.

"그깟 마음 좀 들린다고 다 아는 것처럼 굴지 마. 마음? 네가 들린다는 마음이 얼마나 가벼운 줄 알아? 사람 마음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어. 하루는 조금 괜찮았다가, 그래 내가 모르는 어떤 이유가 있었겠지 이해해 보려고 했다가, 또 하루는 미칠 것처럼 화가 나 죽겠다고."p57

유찬의 화재 사건을 둘러싼 여러 인물들의 숨겨진 진실과 자신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이야기로 각자의 아픔과 마주하며 극복하게 되는 그들. 길을 잃지 않는 것, 방황하지 않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현명한 방법이긴 하지만 길을 잃는 것 또한 길을 찾는 방법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었다.

서로를 닮아 가고, 서로를 투영하고, 그런 서로를 대신할 수 있는 존재가 있어 불행의 어느 순간 앞에서도 괜찮아지기 위해 용기를 내고 오늘의 불행을 견딘다. 평범한 일상을 이어나가 '니가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최선의 말을 하게 하는 그 존재로부터 위로받고 보호받는 것이다. 서로의 아픔을 보듬으며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아픔을 마주하고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되어주는 작은 위로들. 작가는 그런 따뜻함을 써 내려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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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상실 - 해결되지 않는 슬픔이 우리를 덮칠 때
폴린 보스 지음, 임재희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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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되지 않는 상실과 대면할 때 우리는 비로소 나아갈 수 있다.

2년 전 갑자기 전 직장의 선배가 세상을 떠났다. 불과 며칠 전에도 함께 잔을 기울이던 선배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와의 술자리에서도 극단적 선택을 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를 아는 많은 지인들, 친구들, 그리고 그의 아내까지 그의 죽음으로 얻은 크나큰 상실감으로 장례식장은 우울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은 잔인한 배움이다. 상실감이 짙으면 짙을수록 다음 상실감이 찾아왔을 때는 덤덤해하는 자신을 보게 될 테니까.

선배를 떠나보내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은 젊은 시절부터 불행에 가까웠던 그의 환경과 함께 보낸 우울한 시간들, 평탄치 못했던 우여곡절의 가족사, 그리고 그들과 함께 엮어냈던 삶의 여러 애환들이 작은 물방울처럼 내 가슴에 모여들고 있었다. 그런 작은 슬픔들이 모여서 어느 순간 가슴 복받쳐 올라 참지 못해 눈물을 보였던 그날은 상실감을 난 아직도 기억한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이의 죽은 몸을 눈으로 직접 봐야 상실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인다. 대부분의 실종자 가족들은 죽음에 대한 그러한 검증을 통과한 적이 없으므로 부재나 존재에 대한 그들의 인식 변화 과정에서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한다." p62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상실이라는 개념은 누군가, 어떤 무언가가 사라진 상태를 뜻한다. 저자가 말하는 모호한 상실이란 죽음과 실종 등의 이유로 곁에 없지만 여전히 함께 있는 것 같은 상실감을 느끼거나 분명히 실체가 보이는데 곁에 없는 것 같은, 말 그대로 모호한 상실감을 뜻한다.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입양아가 느끼는 단절과 고립, 알츠하이머, 정신질환, 디아스포라가 느끼는 문화의 차이 등 모두 모호한 상실에 속한다. 우리의 삶 바로 옆에 존재하는 이 슬픔들은 어쩌면 너무 당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침묵해왔다.

보통의 사람들은 비정상적인 상태가 분명한데도 정상이라 고집하고 자신의 논리를 믿는 것이 상실감을 동반한 고유한 특징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정상의 형태는 사람마다 다르며 어쩌면 그것은 괴상함보다 더 개인적인 관념인지 모른다. 자신의 조금이라도 초기 증상을 눈치채고 있다면 전문가의 상담을 받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상실은 슬픔을 내포한다. 결국 우리는 죽음과 마주하게 될 것이고, 각자 육체의 고독 속에 갇혀 있으며, 시간은 흘러가고, 지나간 날들은 다시 똑같이 되풀이되지 않는다. 상실은 무력한 세상의 첫 경험이며 평생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 오랜 연구와 여러 임상 경험을 통해 저자는 우리의 일상과 공존하는 상실을 자신의 경험과 환자와의 상담, 문학작품 등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상실과 마주하며 대처하는 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모호한 상실은 다양한 이름들과 모습들로 생물학적이고 사회적인 이유들로 어디에나 존재해 왔다. 이 책 <모호한 상실>은 상실감의 대표적인 범위를 모두 담으려 애썼다. 인간이 겪는 상실감을 모두 담을 수 있는 책은 없지만 대표적인 예와 대처법을 보여 줌으로써 모호한 상실감에 시달리는 이들의 해방을 도울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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