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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설계사
단요 지음 / 아작 / 2023년 6월
평점 :
챗 GPT의 출현으로 세계는 또 다른 시대를 맞이했다. 새 시대의 경이로움도 잠시, 지금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다가올 것인지 본격적으로 탐구하고 이해해야 할 시점도 같이 찾아온 것이다. AI가 만든 뛰어난 결과물에 감탄하며 실용적인 사용법에 주목하고 있는 오늘날, 이 신기술이 인류에게 끼칠 철학, 전략적 영향에 관한 논의는 부족한 실정이다. 우리를 대신해 생각과 판단을 해주는 인공지능을 당연하게 여기는 다음 세대의 등장이 예고된 가운데, 걷잡을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지금 당장 모든 인류가 위와 같은 질문과 마주하여 AI의 효용과 한계를 합의해야 한다. 아직 인간이 미래의 주도권을 쥐고 있지만 과연 인간 이상의 스펙을 가진 AI 로봇이 등장한다면 인간들의 우위는 유지될 수 있는 걸까?
물에 잠긴 서울의 디스토피아적인 배경의 소설<다이브>로 독자들에게 다가온 단요 작가는 제3회 문윤성 SF 문학상 장편 대상을 받은 <개의 설계사>로 돌아왔다. 지금의 기술력으로 보아 멀지 않은 미래에 인공지능 설계사 도하에게 톱스타 릴리와 그녀의 AI 로봇 개의 방문, 그 후 릴리의 전 애인 백해나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들.
"말하고 위로하고 웃는 기계들은 산업 발전의 부산물이에요. 패턴 처리와 시행착오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안을 위해, 진짜 인간과 비슷한 방식으로 사고하는 전자뇌가 만들어진 거죠.
그런데 이런 산업용 인공지능에게는 자의식이랄 게 없어요.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지도 않고요. 주어진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할 뿐이죠. 일관적인 감정처리에는, 의지와 편향을 갖추고 사안을 해석하는 능력에는 별도의 연산이 필요하거든요. 산업 현장에 덤으로 끼워 넣기엔 부담이 큰 기능이죠.
요컨대 여러분의 곁에 있는 기계 친구들은, 신형 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는 성능으로 여러분을 사랑하고 있다는 겁니다." p117
가법게 생각했던 단요 작가의 이번 작품은 전혀 가볍 않았다.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 로봇이 가지는 고뇌와 AI가 가지고 있는 윤리적 딜레마는 소설에 깊이를 더해 갔지만 한편으로는 무겁게 다가왔다. 사람이 아닌 기계라는 점에서 AI의 판단에는 인간 행동의 기초인 '도덕적 감정'이 반영될 수 없다. 설사 인간과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있더라도 기계라는 점에서 도덕적인 판단이 필요한 상황에서조차 결국 자신의 연산상에서 가장 유리한 결론을 도출하게 될 것이고, 이는 인간 기준에서 윤리적 문제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기계들이 감정의 고저를 아는 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정말로 느끼도록 만들어지는 것부터가 사용자의 편의를 위한 강압이라고 봐요. 이용하는 거죠. 쾌락과 고통에 무감각하고 무엇도 욕망하지 않는 기계, 끔찍한 사건에도 평정을 유지하는 기계, 완벽히 객관적이고 정의로운 기계는 산업현장이나 경영전략실에 놓일 뿐이지 인간의 친구는 되지 못하니까요. 우리네 설계사의 업무란 결국 인간이 아닐 수 있는 존재에게 인간의 염증을 주입하는 것이고요." p214
다양한 형태의 인공지능은 현재 우리 생활 곳곳에 스며들고 있다. 게다가 지금보다 더 고도로 발전된 인공지능 로봇들의 상용화 또한 머지않아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그만큼 인공지능을 설계하는 오늘날의 설계사에게 도덕 윤리가 중요해지고 있다. 그동안 공상과학 소설과 영화를 통해 꾸준히 제기되어온 기계의 도덕성은, 지능이 있는 기계의 출현으로 이제 현실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단요 작가의 <개의 설계사>는 기계의 윤리적 고찰뿐만 아니라 개발자의 윤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계기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