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대
염상섭 지음 / 지만지한국문학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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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도, 앞으로도 없을 가장 완전한 의미의 <삼대>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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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걷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백수린 외 지음, 이승희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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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지금,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라."는 인생 권고문이 마음에 와닿는다. 사소하지 않는 사소한 것들에 관심과 눈길이 가고, 일상에서 의미를 찾아 행복해하고, 모든 평화로움에 감사하려는 것도 어쩌면 나이 탓과 무관하지 않을 듯싶다.

인간은 관계에 의해 얽히고설키어 살아가지만 본직적으로 혼자일 수밖에 없는 숙명적인 존재다. 인생은 홀러 태어나 마침을 향하여 가는 여정이다. 그런 외로운 여정을 누군가와 함께 보낼 수 있다면 그것은 행복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인간은 사랑과 우정을 통해서 살아가는 의미와 존재 가치를 느낄지도 모른다. 사랑과 우정이야말로 한세상 끝나는 마지막 날까지 붙잡고 가야 할 자산이다. "새에겐 둥지가 있고, 거미에겐 거미줄이 있듯 인간에게는 우정이 있다."라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말처럼 우정은 새에게 둥지만큼, 거미에게 거미줄만큼 인간의 삶을 지탱하도록 하는 터전이다. 이 터전을 가꾸기 위한 우정 또한 벗을 위한 배려와 헌신이다.

창비에서 출간한 <함께 걷는 소설>은 백수린, 이유리, 강석희, 김지연, 천선란, 김사과, 김혜진 작가의 우정을 테마로 한 단편소설로 다양한 모습의 우정을 그려 내고 있다.

백수린 작가의 소설집 [여름의 빌라]의 수록된 <고요한 사건>은 살아가는 환경에 따라 친구들의 무리가 나뉘게 되고 부모마저 잘사는 동네의 아이들과 친구가 되라고 말한다. 주인공은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었지만 진정한 의미의 우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깝게 지내던 무호와 해지 역시 언제까지나 함께 있을 것 같던 친구였지만 그들 또한 인생의 한 부분을 장식할 스치는 인연이었다.

"부모님은 새 학교로 등교하기 전에 몇 차례나 내게 이왕이면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그런 당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이 한 번도 전학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임을 나는 이내 알게 되었다. 전학생에게는 친구를 선택할 권리가 전혀 없다는 것을 부모님은 미처 알지 못했다. 전학생으로 처음 교탁 앞에 서는 순간, 내게 쏟아지던 여든 개의 눈동자. 가늠하고 평가하여 어느 부류로 분류해야 하는지 판단하기 위해 재빨리 나를 훑던 눈길은 나는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이유리 작가의 소설집 [브로콜리 펀치]에 수록된 <치즈 달과 비스코티>는 돌멩이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학교 폭력을 벗어나기 위해 돌을 던지고, 열일곱에 처음 돌과 말을 하게 되고 지금까지 돌멩이 '스콧'을 유일한 절친으로 삼고 있는 그는 상식적으로 정상인이라 생각할 수 없다. 애니메이션 월레스와 그로밋을 무척이나 좋아해 닉네임을 치즈 달을 보호하는 쿠커에서 따왔다는 쿠커는 나에게 다가온 유일한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광적인 관심을 보이는 나는 쿠커가 무척이나 불편해하지만 함께 한 여행에서 쿠커는 물에 빠지게 되고 그를 구하다 셔츠 주머니에 넣어둔 스콧을 잃어버려, 스콧을 찾기 위해 안절부절못해 하지만 주인공의 말을 믿고 있다며 스콧을 찾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한다는 쿠커의 말로 그의 존재를 조금은 인정하게 된다. 인간과의 원만한 관계가 힘든 그들은 사물과의 관계로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가볍게 읽어 나갔지만 학교 폭력과 주위의 무관심으로 상처받고 있는 이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그린 소설이라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웠다.

"그건 날카로운 돌멩이였다. 그놈은 네 바늘을 꿰맸고, 나는 고의로 머리를 가격한 게 아니라는 걸 선생님과 어머니 앞에서 설명해야 했다. 물론 돌이 그러라고 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드디어 내가 남자다워졌다며 너무나 기뻐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앞으로도 저런 놈들이 괴롭히면 똑같이 해 주라고 했다.

그놈이 이마에 붕대를 감은 채로 학교에 돌아왔을 때 내가 죽도록 얻어맞았음을 말할 것도 없다. 그 사건 이후로 내 학교생활은 더욱 험난해졌다. 하지만 나는 그날 새로운 취미가 생겼기에 견딜 수 있었다. 나는 내 눈에 보이는 돌멩이라는 돌멩이는 모두 주워 다 말을 걸었던 것이다. 저기요? 제 말이 들리나요? 제발 대답해 주세요. 저 들을 수 있어요. 제발."

김혜진 작가의 <축복을 비는 마음>은 일로 만나 나누게 된 우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입주 청소를 하고 있는 인선은 신입 경옥이 불편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이 그냥 감내하고 지나치는 것들에 대해 불만을 얘기하는 유별나고 제멋대로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경옥의 말이 싫지는 않았다. 그것은 자신이 할 수 없었던, 참고 있었던, 힘껏 소리 내어 말하고 싶었던 말들이었던 것이다. 부당한 일에 자신이 먼저 나서서 말하며, 자신을 격려해 주는 그녀는 오래된 관계가 아니어도 충분히 좋은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것은 경옥이 건넨 말 때문이라는 것을 인선은 나중에 알았다. 지금껏 들어 본 적 없고, 듣게 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그 말은 자신이 내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누군가가 한 번쯤 그런 말을 해 주길 몹시 바라고 있었다는 것을. 그럼에도 누구도 그런 다정한 말을 건넨 적이 없음을 깨닫게 된 거였다."

우정이라는 테마로 백수린 작가를 비롯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들의 소설집에서 수록된 가장 인상 깊었던 소설들의 모음집이라고 해야 할까? 놀라울 정도로 알차게 만들어져 있어, 위에 나열된 작가들의 소설을 막 읽기 시작한 사람이나 시간 여유가 넉넉지 않은 이들에게 추천하는 좋은 단편모음집이니 기회가 되면 꼭 접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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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어안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정지아 외 지음, 문실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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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한두 번 그나마 무슨 날이라야 가는 부모님이 계신 집, 얼마 전부터 불현듯 부모님이 슬퍼 보이고 안쓰럽다. 또다시 5월이 오는 탓인가? 매번 방문할 때마다 아픈 몸뚱이를 힘들어하며 넔두리하는 모습이 싫어 외면도 한다. "아프면 병원 가시지 왜 그러고 계세요." 파르르 성깔 부리며 앉으면 '먼 길 오느라 힘들었지, 잘 지내지?" 어머니는 여전히 어머니 같은 말만 한다. 힘들다며 벌러덩 눕는 나는 여전히 철부지인 채로 말이다. 서른넷에 집을 떠난 자식은 일흔을 훌쩍 넘긴 어머니를 늘 마흔 중턱 어느 봄쯤으로 기억하고 살았다. 당신의 아들이 세상에 나온 지 43년이 지난 오늘, 가슴 뜨겁게 당신의 자리가 고맙고 미안해서 가슴이 아팠다. 당신과 조심스레 깊은 눈을 맞춘 후 돌아서는 발걸음이 자꾸 무거워진다.

"이토록 모순된 유기적 생명 공동체가 세상에 또 있을까?" - 톨스토이

창비에서 출간한 <끌어안는 소설>은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며 생기는 이야기의 모음집이다. 정지아, 손보미, 황정은, 김유담, 윤성희, 김강, 김애란 작가의 가족을 테마로 한 단편소설은 잊고 있었던 가족이라는 의미를 되새겨보기에 충분했다. 모든 작품을 감동 있게 읽었지만 그중 가슴에 와닿은 소설 몇 편을 소개할까 한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와 최근 <나의 아름다운 날들>을 감동 깊게 읽었던 정지아 작가의 <말의 온도>는 노년을 바라보는 딸이 자신의 어머니를 모시며 어머니라는 존재를 이해한다는 내용이다. 자신의 어머니이기 이전에 그녀도 한때는 철없이 투정 부리는 딸이었음을 깨닫게 되고 어머니의 삶은 가족을 위한 희생의 시간이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어머니와 말을 하다 보면 이상한 대목에서 심장이 저렸다. 어머니가 어머니가 아니고 외할머니의 딸이던 시절에는 먹고 싶지 않은 것을 먹지 않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어머니는 처음부터 어머니가 아니라 한때는 마음껏 투정을 부려도 되는 딸이기도 했던 것이다.

참여한 작가들 중 가장 최근에 소설집을 낸 손보미 작가의 <담요>는 죽은 아들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장이라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장은 콘서트 장에서 사고로 아들을 읽고 죽은 아들의 담요를 끌어안고 6년이라는 시간을 보낸다. 그는 야간 순찰 중 영하의 날씨에 놀이터에서 떨고 있던 어린 부부에게 아들이 담요를 건네며 끌어안고 있던 슬픔에서 벗어나게 된다.

"아들이 죽은 후, 장은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공연장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딱 한 번, 회식 자리에서 만취했을 때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아들을 잃은 후, 장의 생활에는 두 가지 변화가 생겼다. 첫 번째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담요를 항상 몸에 지니고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가 야간 순찰에 집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가장 독특한 이야기였던 황정은 작가의 <모자>는 가끔 모자가 되어버리는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유년 시절 당신의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은 아버지는 그때부터 모자가 되어버렸다. 중요한 순간이면 당황하며 얼어버리는 아버지의 모습에 안쓰러워하는 자식들의 시선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사랑으로 보살핌 받았어야 할아버지의 유년 시절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남편, 그러니까 세 남매의 할아버지는 고집이 센 사람이었다. 폐암에 걸려 죽는 날까지도 꼿꼿하게 등을 펴고 누워서 이런저런 잔소리를 했다. 그 남편이 아직 젊었을 때, 하루는 밥상에 밥알을 너무 많이 흘렸다고 아들의 바지를 벗겨 놓고 엉덩이를 팡팡 때린 일이 있었다. 고작 다섯 알 정도를 흘렸고 주워 먹으면 그만이라고 그녀는 생각했지만, 쓸데없이 꼬장꼬장한 남편을 상대로 말해 봤자 입만 아플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버려 두었다. 새벽에 목이 말라 일어났더니 자리끼로 놓아두었던 주전자가 비이 있었다. 할 수 없이 주전자를 들고 마당으로 나간 그녀는 낮에 엉덩이를 두들겨 맞은 둘째 아들이 우물가에서 조그마한 모자가 되어 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모자였지만, 그녀는 모자가 그 아들인 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김애란 작가의 <플라이데이터리코더> 역시 독특한 발상으로 감탄을 자아냈다. 인적이 드문 섬 플라이데이리코더에 부모를 잃고 할아버지와 삼촌과 살고 있는 아이는 어느 날 노란색 경비행기가 추락하는 걸 보게 된다. 잔해에서 찾아낸 블랙박스를 보며 엄마라고 한 삼촌의 말에 그것을 엄마라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원자로부터 형성된 우주의 만물을 같은 맥락으로 바라보는 삼촌의 말을 이해하진 못하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믿고 싶었던 엄마를 향한 그리움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그게 서로 다른 종으로 태어날 경우 대화를 할 수 없게 돼 있어. 그래도 몸을 기울이면 알아차릴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거야. 방법은 우리가 발견해 내면 돼. 지금 엄마랑도."

소중한 것들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시간뿐만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다. 당연하다고 여기던 내일과 언제까지나 옆에 있어줄 것 같던 내 사람들도 세월의 흐름 앞에 그 무엇으로도 거스르지 못하고 늙어간다. 언젠가부터 아내와 딸이랑 길을 걸을 때면 언제나 손을 잡는 버릇이 있다. 손을 잡고 만지작거리기도 하고 손바닥을 긁어보기도 하고 손가락 하나하나를 문질러 보기도 한다. 가장 소중한 지금 이 순간을 후회 없이 닮고 싶었을까. 아내와 딸도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가만히 맡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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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행성의 기록
라오서 지음, 홍명교 옮김 / 돛과닻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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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중국은 수천 년의 유구한 역사와 거대한 인구,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대제국의 위용을 떨치고 있었다. 그러나 서구의 여러 나라들과는 달리 맹목적인 자만과 폐쇄적인 교역으로 대외적 개방을 거부하고 찬란했던 과거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러다 19세기 중엽, 산업혁명으로 발달된 무기 기술을 앞세운 영국은 식민지 확장을 위해 아편과 대포를 앞세워 중국의 본토에 일격을 가했다. 이것이 아편전쟁이다.

"5백 년 전 그들은 곡식을 재배해 수확했기에 미혹 나무 잎이 무엇인지 몰랐다. 한데 갑자기 어떤 외국인이 묘인들의 나라로 가져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지위가 높은 이들만 그것을 먹을 수 있었지만, 나중에 미혹 나무를 옮겨 오게 되면서 모두가 중독돼 버렸다. 채 50년도 되지 않아 그걸 먹지 않는 이들이 더 소수인 상황이 됐다. 미혹 나무 잎을 먹는 것은 얼마나 편안하고 편리할까? 딱 하나 문제가 있다면, 그걸 먹고 나면 정신이 번쩍 들지만 손발은 잘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농사일도 할 수 없게 되고, 일하는 것도 불가능해 모두가 한가롭다. 그래서 정부는 더는 미혹 나무 잎을 먹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다. (...) 명령 첫날 정오, 황후는 금단 증상으로 괴로워하며 황제의 뺨을 세 대나 때렸고, 황제는 그저 울 뿐이었다. 이날 오후 다시 명령이 내려졌다. 미혹 나무 잎을 '국식'으로 정하겠노라고." p52

한 중국인이 친구들과 떠난 우주여행에서 어떤 행성에 불시착하게 되는데 이 행성에는 고양이 얼굴을 한 묘인들이 살고 있었다. 친구들은 죽고 주인공은 묘인들에게 잡혀 갇히게 되지만 탈출하게 되고 묘인들의 추적을 소지하고 있던 권총을 이용해 묘인들을 쫓아내지만 기절하고 만다. 눈을 떴을 때는 그를 옮겨온 '따시에'라는 묘인이 나무 위에 올라가 있었고 그는 미혹 나무라는 중독성 강한 나무를 관리하고 있었다.

눈치채겠지만 미혹 나무는 영국의 아편을 암시하고 있다. 중국은 밀수를 막기 위해 금지령을 반포했지만 관료들마저 매수되어 밀수를 자행해 금지령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미 대륙 전역에 유통되며 은의 대량 유출로 중국의 경제까지 흔들게 되었던 것이다.

"묘인들은 외국인과 싸우더라도 이길 수가 없다. 그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외국인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는 것이다. 자립을 하고 힘을 키우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묘인들은 너무 교활해서 힘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 그저 외국인들이 서로 살육하길 신에게 간청하고, 약한 묘국이 강해지길 바라는 것이다. 아니면 다른 나라가 묘국만큼 약해질 기회를 노리거나 말이다. 외국인들은 묘국 안에서 언제든 이해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서로를 공격함으로써 묘국이 편익을 취하게 하지 않는다. 그들은 강 대 강으로 붙으면 결국 분쟁이 일어나고, 싸워서 이겨도 큰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을 너무나 분명히 알고 있다. 반대로, 그들이 연합해 묘인들을 능멸한다면 아무 손실 없이 큰 이점을 취할 수 있는 것이다.

국제관계에서의 정책만 이러한 게 아니라, 묘국 내에서 일하는 개개인도 이러한 조건을 지킨다. 미혹 나무숲을 보호하는 것은 외국인에게는 좋은 일자리다. 하지만 지주만을 위하면서 묘국에 저항하는 자만 책임지기로 다 같이 약속하고 있다. 쌍방 모두 외국인이 보호하는 상태라면 누구든 서로를 침범하지 않기도 한 것이다. 이 조건을 지키지 않는 자를 보면 양측의 보호자들이 합의하여 지주나 우두머리를 징벌한다. 이렇게 하면 묘국의 일로 외국인끼리 다투는 걸 피할 수 있고, 보호자의 지위를 우월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묘인들에게 이용당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p102

아편을 앞세운 영국의 침략은 중국 사회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자본주의의 생성으로 봉건사회의 해체를 촉진했지만, 봉건적 착취 제도는 계속되었을 뿐 아니라, 매판자본은 고리대 자본과 결탁하여 사회경제적 지배적 위치에 있었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충격은 봉건 중국을 결코 자본주의적 중국으로 변화시키지 못하고, 하나의 반 봉건적 사회로 바꾸어 놓았다. 미국과 프랑스, 영국, 일본 등 외세 침략은 소설 속의 외국인을 연상시키는데 이들에게 의존했던 관료들은 수동적이고 비굴한 묘인들의 태도와 닮아있다.

중국은 영국, 일본, 미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의 8개국 연합군에게 제국의 심장부인 수도 베이징을 짓밟히는 민족적 수모를 당하며 서서히 반식민지 국가로 전락하게 되었다. 비록 중국은 대외관계에 있어서 형식적으로는 여전히 독립 국가로서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긴 했지만, 실제적으로는 이미 불평등조약에 의해 국가의 주권과 영토가 완전히 침탈되는 상황에 놓임으로써 중국 정부는 '양인 조정'으로 바뀌었다.

<고양이 행성의 기록>에서 외국인을 앞세워 이익을 취하려는 묘인들의 모습은 1930년 경의 무지하고 비열했던 중국인들의 모습을 지식인의 입장에서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소설 속의 화자는 곳곳에서 자신의 고향을 위대한 중국, 태평하고 즐거운 중국이라고 칭하는 이것은 자기 잇속을 챙기는 것에만 급급한 관료와 엘리트들이 이끌어가는 암울했던 중국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며, 파멸을 향해 나아가는 묘성의 묘인들의 모습은 당시 과거의 영광 뒤로 저물어 가던 중국의 모습에 대한 저자의 안타까움과 답답히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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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해석전문가 - 교유서가 소설
부희령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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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은 산을 타고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요. 산을 완전히 보려면 구름 아래에 있어서도 안 되고, 구름 속에 있어서도 안되고, 구름 위에 있어야 해요. - 구름해석전문가 중에서 "


우리는 인간관계라는 거미줄같이 복잡한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수많은 관계 속에서 생겨난 감정들을 결코 놓지 않을 듯 붙잡고 있다가도 언젠가는 놓아 주어야 하는 것을. 이제는 멀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미련을 버려야 하는 것도 알고, 기억을 정리해야 하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그 감정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부희령 작가의 소설은 접한 것은 단순 호기심 때문이다. 표지의 화려한 디자인 때문에 이끌렸고, 제목에 또 한 번 이끌려 읽게 되었지만 내용 그 자체에 매료되어 읽게 되었다. 그녀의 초기작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구름해석전문가>에 실려 있는 여섯 편의 단편들만 읽어보더라도 분명 나의 취향과 결이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설의 처음을 장식하는 <콘도르는 날아가고>는 70년 대를 배경으로 한 한 소녀의 사랑 이야기다. 자신은 절대 사랑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소녀의 맹세는 깨어지게 되면서 자신을 붙잡고 있는 사랑에게서 달아나려는 이야기로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한 짝사랑을 떠오르게 하는 소설이었다. 표제인 <구름해설전문가>는 작가로서 동경하고 좋아하던 선우를 떠나 포카라로 떠난 이경은 선우를 잊기 위한 한 걸음을 내딛는다. <완전한 집> 역시 포카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 금희 역시 잊기 위한 여행을 떠났지만 정작 그녀는 헤어진 사람의 흔적을 좇고 있었다. 일본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을 둔 <만주>에서는 주인공 임돈은 경성에서 작은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이지만 병원 운영을 위해 빌리 사채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다. 친구 태련의 부탁을 받아 독립자금을 전달해 주는 일을 맡게 되고 긴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귀가>에서는 과거에 폭력으로 시달리던 어두운 기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해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내 가슴은 돌처럼 차갑고 단단하다>에서는 나름 상류층에서 살아가고 있는 네 명의 중년들은 도덕적으로 바른 삶을 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관념에서조차 자유로운 삶을 원한다는 내용이다.



​하루를 고스란히 써서 읽은 이 소설을 완독하고 느낀 점은 '자유를 원하는 갈망'이었다. 자신을 감싸고 억누르고 있던 어두운 기억, 거미줄같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인간관계, 옳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도덕적 관념에 이르기까지 표제의 구름 해석 전문가 이미지처럼 모든 관계로부터 자유로운 구름 같은 삶을 원하는 인물들이 느껴졌다.


"아무튼 어느 순간 우리는 깨달았어요. 우리가 정말로 원했던 것은 선한 삶이 아니라 그저 삶을 불필요하게 짓누르는 무거움을 털어버리고 싶었을 뿐이라는 것을."


​누구나 한 번쯤은 헤매고 망설이며 좌절한다. 길을 잃지 않는 것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현명한 방법이지만 길을 잃는 것 또한 길을 찾는 방법이라는 걸 우리는 잊고 살고 있다는 어떤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누구의 도움 없이도 그 막막함과 같이 길을 찾는 시간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시간을 순수히 받아들이는 그 마음이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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