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그레이션 - 북극제비갈매기의 마지막 여정을 따라서
샬롯 맥커너히 지음, 윤도일 옮김 / 잔(도서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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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이란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환경에 생명이 적응하면서 진화해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무수한 멸종과 대멸종 덕분에 우리 인류가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다섯 번의 대멸종이 있었으며 지금은 여섯 번째 대멸종이 진행 중이다. 대멸종은 멸종과는 차원이 다르다. 멸종이 빈자리를 몇 개 만들어서 새로운 생명을 등장시키는 기회라면 대멸종은 생태계를 완전히 빈 공간으로 만들어서 완전히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그려 넣을 일대 사건이다.

여섯 번째 대멸종이라고 뭐가 문제일까? 대멸종 또한 자연에 이치라면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닐까? 쉽게 말할 수 있겠지만 지구의 많은 사람들이 여섯 번째 대멸종을 걱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지난 다섯 번의 대멸종을 볼 때 최상위 포식자는 반드시 멸종하였고, 현재의 최상위 포식자는 바로 인류이기 때문이다.

"동물들이 죽어 가고 있다. 머지않아 우리는 이곳에 홀로 남겨질 것이다."

이기적인 인류가 저질러 놓은 환경 오염으로 대부분의 동물들이 멸종한 세상. 새를 연구하는 프래니는 지구상에서 가장 멀리 이동하는 생명체인 북극제비갈매기의 여정을 따라가기로 마음먹는다. 그녀는 북극제비갈매기 세 마리의 다리에 위치추적기를 다는 데 성공하고 자신을 남극으로 데려다줄 배를 찾는다. 하지만 어떤 배도 훈련도 안된 프래니의 여정을 거절했고 마지막 남은 배인 청어잡이 어선 사가니호를 찾아간다. 어린 시절 까마귀에게 특별한 애정이 있던 그녀는 '사가니호'가 까마귀를 뜻해 운명이라 생각하고 선장인 에니스를 만나 추적기를 단 새들이 물고기가 많은 곳으로 안내해 줄 거라며 말해보지만 그 역시 경험도 훈련도 안된 사람을 태울 수는 없다며 거절한다. 그럼에도 끈질긴 노력으로 에니스를 설득하게 되고 북극제비갈매기와의 여정이 시작된다.

소설은 프래니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그녀의 암울했던 삶을 그려나간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북극제비갈매기의 이동을 따라 남극을 가려는 프래니와 만선의 꿈을 꾸며 자신의 아이들을 데려올 희망을 품고 있는 선장 에니스와 일곱 명의 선원들은 위험천만한 항해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그녀의 어두운 과거와 북극제비갈매기를 따라가기로 결심한 진짜 이유가 밝혀지게 된다.

불행한 유년을 보내야 했던 프래니는 자신의 어머니처럼 한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방황하는 방랑벽이 있는 야생성을 지닌 사람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런 그녀와 북극제비갈매기의 운명은 그들의 여정 뒤로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과 겹쳐지며 소설의 재미와 긴장감을 더한다.

"그들은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하다거나 생존 확률이 월등히 높은 생물 등 어떠한 기준에 따라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동물을 우선으로 선택해야만 했다. 그렇게 인간에게 직접적인 필요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다고 여겨지는 동물들은 아무런 희망도 없이 서서히 사라져 결국 멸종의 길을 걸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곤충이 높은 순위로 이들의 보호 목록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벌, 말벌, 나비, 나방, 개미, 몇 종의 딱정벌레, 심지어 파리도 있었다. 곤충 외에도 벌새, 원숭이, 주머니쥐, 박쥐도 있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꽃가루 매개체라는 것이었다. 식물이 없다면 인간 또한 멸종의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동, 식물들의 멸종이 심각한 대재앙으로 이어질지를 두고 과학자들의 의견이 나뉜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가 초점을 맞춰야 할 부분이 조금 더 명확해진다. 대재앙이 '누구'에게 타격을 주는 것일까? <마이그레이션>은 가까운 미래의 모습이 될지도 모르는 대부분의 동물들이 멸종한 디스토피아적인 세계를 그려나가며 지구상의 모든 생물의 소중한 삶의 터전인 지구의 소중함을 그려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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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스러운 게 아니라 어색한 거야 - 여전히 삶이 어색한 마흔 살의 여물지 않은 이야기
소재웅 지음 / 훈훈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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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을 살아가면서 어느 정도의 시간을 채우지 않으면 절대 깨닫지 못하는 것이 있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그렇다. 평범한 일상은 순간, 미움과 오해로 인해 다툼의 순간마저도 어머니의 사랑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너무 가까이 있었기에 소중함을 몰랐던 순간들은 가슴 깊이 후회를 남기며 지나왔던 시간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쑥스러운 게 아니라 어색한 거야>를 펼쳤을 때 40대 또래의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관심과 감성은 누구든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더욱이 딸을 둔 아버지로서의 입장이며, 스포츠를 좋아하는 것도(개인적으로 나도 커리의 팬이다.), 80~90년대 태어난 사람이라면 좋아할 하루키와 김연수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 것 등 많은 부분을 공감했다.

전혀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중년의 글에서 불쑥 고개를 내미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어쩌면 그의 밝고 선명한 일상에 대한 글들은 어머니에 대한 슬픔을 감추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하게 될 정도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후회가 가슴에 와닿았다.

"그래, 매일 삶을 살아내야 하는 나보다 엄마 처지가 낫겠지."

특히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어머니가 가장 많이 떠올랐는데 가장 가까이 있는 친구이자 삶은 스승인 어머니의 희생이 지금의 나로 인도해 주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부쩍 약해지시고 여려지신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늘 든든히 버팀목이라고 생각했던 어머니가 자신의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변해가는 모습에서 시간은 어머니에게도 똑같이 흘렀음을 인정해야만 할 것 같다.

"상실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난 분명, 상실로 전보다 넓어졌다."

누군가에게 삶은 기적이고, 누군가에게 삶은 지옥이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을 만드는 것은 적지 않은 부분이 본인에게 달려있다. 소재웅 작가의 삶처럼 어머니의 죽음으로 슬픔의 순간이 찾아올지라도 그 아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일상은 언제든 행복으로 뒤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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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전쟁
김진명 지음 / 이타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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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은 우리나라의 민족정기를 말살하려는 정책으로 백두대간의 혈맥을 끊는다고 해서 '혈침'이라 불리는 쇠말뚝을 전국토에 걸쳐 곳곳에 박아 놓았다. 나 역시 등산 중 쇠말뚝이라 판단되는 바위에 박혀 있는 금속을 본 적이 있으니 전국토에 엄청난 수의 말뚝을 박은 것이 틀림없다. 그것뿐만 아니라 신물이라고 해서 신비한 함이 깃들어 있는 물건을 신성시하며 지켜왔는데 이것 또한 일제강점기에 상당수가 일본으로 건너가거나 파괴되었다고 한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아직까지 풍수 조건에 따른 집터와 묘 터 등을 따지며 집을 짓는 우리 민족을 보면 풍수는 민족의 삶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틀림없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사람 몸의 혈관이 영양을 공급하는 것처럼, 땅에도 생기가 흐르는 길이 있으며, 산 사람은 이 생기에 접함으로써 복을 얻고 화를 피하며, 죽은 자는 땅속에서 직접 생기를 받아들이기 때문에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받아들이는 생기가 더 커 이것이 후손들에게 그대로 전해진다고 보았다. 그래서 산사람의 집터와 함께 죽은 사람을 위한 묏자리를 매우 중요하게 여겨 신중하게 선택하였던 것이다.

일제는 이러한 전통 관념을 가진 한국인들이 우리나라의 빼어난 금수강산에서 뛰어난 지기를 받아 훌륭한 후손과 위인이 태어나 가문을 일으키고 나라를 구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았다. 일제 쇠말뚝은 이에 대한 두려움의 표시이기도 하다. 한국인들이 그런 희망과 믿음을 가지고 있는 한 일제의 지배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한국인의 풍수사상을 역이용하여 패배의식을 심어주어 자신들의 지배를 영구화하고자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김진명 작가의 <풍수전쟁>은 일본이 한국에서 걸어 놓은 풍수 저주에 관한 내용으로 이번 역시 엄청난 몰입감으로 단번에 읽어 내려갔다.

'나이파 이한필베. 저주의 예언이 이루어지도다.'

어느 날 대통령에게 전달된 의문의 메시지. 괴기스러운 의문의 메시지를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해석하려 시도해 보지만 쉽게 해석되지 않자, 이 문제를 대통령실 행정관 김은하수에게 맡겨진다. 하지만 맡은 일을 반드시 해결할 거라 자부하던 그녀도 해결에 어려움을 겪자 자신의 괴짜 친구 이형연을 떠올렸다. 그는 인문학, 과학, 예술, 종교 할 것 없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미친 듯이 섭렵했고 그런 그가 더욱 관심을 가지며 빠져있었던 것은 풍수와 같은 신비학이었다. 은하수는 형연이라면 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 믿으며 그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다.

"마주하든 않든 역사는 이미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를 형성하고 있어. 그러니 올바른 역사를 밝히는 건 바로 내가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거야."

그들이 마주친 것에는 일본이 한국에 건 저주만이 아니었다. 한국의 존망이 달린 인구 절벽 문제와 한국 역사를 파괴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선총독부 조선사 편수회에서 만들어진 철령위의 위치를 그대로 믿고 따르고 있던 한국의 역사학자들,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함께 나아가야만 한국과 일본의 사이를 갈라놓으려 하는 인물들.

김진명 작가 특유의 민족주의적 주제의식의 표현은 주인공의 입을 빌려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동안 알지 못했고 오해하고 있었던 우리 역사의 진실을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전도하고 있는 김진명 작가는 이번 <풍수전쟁>에서도 박진감 넘치는 전개와 역사를 관통하는 통찰력으로 왜곡되었던 역사의 한곳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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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안부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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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국내 정세와 가난으로 낯선 타국의 독일행을 택했던 한국 여성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져 오빠들과 동생들을 대학에 보내려고, 혹은 더 넓은 세상, 더 넓은 가치관을 보고자 고국을 떠나야 했던 그녀들은 어느덧 고희를 넘긴 모습으로 독일 교민 1세대를 이루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패망을 극복하고 경제부흥에 성공한 독일은 의료, 요양 등의 국민복지시스템 분야의 노동력이 절실히 필요했다. 같은 시기 한국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정책을 추진 중이었고 외화 확보가 절실했다. 서로 원하는 바가 잘 맞아 1961년 두 나라는 경제 기술에 관한 협정을 맺고, 광산, 간호 인력의 파견이 진행되었다. 그들이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상당한 기여를 했었고, 당시 해외 파견된 우리나 근로자들의 전체 송금의 11%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파독 간호사의 이야기를 꺼낸 건 백수린 작가의 첫 장편소설 <눈부신 안부>가 파독 간호사의 일생을 소재로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장편소설도 백수린 작가 특유의 깔끔하고 감성적인 문체는 다른 작가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보적인 것으로 그런 그녀의 글을 다시 접할 수 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반가운 일이다.

"타인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이어나가야 했던 소녀"

이야기는 성인이 된 해미가 좋아했었던 동창 우재를 만나면서 유년 시절 독일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시작된다. 해미는 뜻밖의 사고로 한순간에 친언니를 읽게 되고 너무나 일찍 친언니의 죽음으로 인해 삶의 슬픔을 알아버린다. 언니의 죽음으로 부모님의 다툼이 이어지고 그로 인해 부모님의 별거로 이어져 해미와 동생 해나는 엄마를 따라 이모가 살고 있는 독일 G시로 이주하게 된다. 동생 해나와는 달리 적응이 힘들었던 그녀는 선의의 거짓말로 엄마, 아빠를 안심시키지만 그런 해미의 거짓말을 눈치채고 해미의 불안을 감싸 안아준 사람은 해미의 친이모였다. 그녀는 어려웠던 가정 형편으로 파독 간호조무사가 되어 조국을 떠나 정착한 살고 있었다. 지금은 독일 국가 의사 시험에 합격해 의사로서 지내고 있다. 이모 주의에는 함께 파독 간호사로 일했었던 선자 이모와 마리아 이모 그 밖의 많은 파독 간호사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이모의 도움으로 교포 2세인 레나와 한수를 만나 친구가 되고 힘들었던 낯선 타국에서의 생활을 조금씩 적응하기 시작한다.

"좋아요. 나는 한국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만큼 낯선 나라로 가는 것이 싫었지만, 엄마 아빠를 위해 그렇게만 말했다.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는 때로 체념이 필요했다." p30

독일에서 생활이 적응되었을 때쯤 선자 이모의 아들 한수가 비밀스러운 부탁을 해오게 되는데 그 부탁이란 선자 이모의 첫사랑을 찾아 달라는 것이었다. 첫사랑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 선자 이모 몰래 이모의 일기를 읽어나가며 그녀가 독일로 떠나온 후 이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감추어져 있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를 마주하게 된다.

"선자 이모의 일기를 읽어나갈수록 나는 이모가 말을 거는 상대가 첫사랑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하나같이 슬픈 연서였으니까. 그리고 그 행간에 잔잔히 흐르던 격정과 애달픔을 느낀 사람이라면 누구든, 선자 이모가 첫사랑의 이름을 듣는다면 동요할 수밖에 없으리라 확신했을 것이다. 숨기려 해도 감춰지지 않는 게 사랑일 테니까." p100

독일에서의 평화로운 생활도 잠시, 한국에 외환위기가 닥쳐, 어쩔 수 없이 해미 가족은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한국에 돌아온 해미는 선자 이모의 첫사랑을 찾으려고 애쓰지만 쉽지 않았다. 뇌종약의 악화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던 선자 이모의 모습을 지켜보던 한수에게 미안한 마음에 첫사랑을 찾았다는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서는 거짓말을 했다는 죄책감에 독일 친구들과의 연락을 끊고 첫사랑을 찾기를 가슴에 묻게 된다.

"나도 어른들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예전엔 왕벚나무, 편백나무 같은 것들이 길거리에 많았대. 그런데 70, 80년대에 제주도를 관광지로 개발하는 사업이 시작되면서 아름다운 남국의 경관을 연출하기 위해 야자수들을 정책적으로 수입해 심었다더라. 그래서 진짜인지 모르겠지만 여기 야자수들은 열매를 맺지 못한대."

그런 야자수들이 살아남아 이젠 제주의 일부가 되었으니, 정말 아름다운 일이지?"



"저는 기본적으로 비관적이고 회의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늘 생각해왔어요. 말씀드린 것처럼 언어를 통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생각에 대해서도 전반적으로 의구심을 갖고 있는 편이고요. 소설 쓰기는 그런 저에게 마지막 보루, 희망 같은 것이에요. 세계는 엉망이고 소통은 대체로 불가능하나, 누군가와 맞닿을 수 있다는 희망이 불씨가 아주 미약하게나마 있을 수도 있다고 믿고 싶기 때문에 저는 소설을 쓰고 있어요. 언젠가 그 희망의 불씨마저 사라지면 자연스럽게 절필을 하게 되겠지요? 아무튼 그러다 보니, 소설을 쓸 때는 제 안에 아주 희미하게만 존재하는 낙관성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은 아니라도 언젠가는, 결국에는, 마음들이 맞닿을 수도 있다는 식으로요." [백수린 작가 인터뷰 중에서]

모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틈에서 살아가며 느끼는 감정들은 어쩌면 사치라고 느껴질 만큼 그녀들이 낯선 독일 땅에서 겪었던 외로움이란 말로 형용할 수 있을까? 머나먼 타국에서 경제 디아스포라로 살아간 파독 간호사들과 당시 아들을 성공을 중시했었던 시대상과 과거 한국의 정서로서는 용서받지 못할 일로 가슴 아파했던 사람의 슬픔들. 그런 가슴 아픈 슬픔과 마주하더라도 그 슬픔 안에서조차 희망을 마주할 수 있다는 안도감에 젖게 되는 것이야말로 백수린 작가의 소설을 읽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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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
염상섭 지음 / 지만지한국문학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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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는 작가의 원대한 계획 아래 씌어진 염상섭 작가의 대표작이자 한국 근대문학에서 가장 돋보이는 소설이다. 3부작을 계획하고 씌어진 이 소설은 <무화과>와 <백구>라는 작품과 연결되어 있는데, 세 소설은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의 세대로 이어진다. 이 작품은 단지 식민지 시대의 삶의 세목들을 평면적으로 나열한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사회 전체를 움직이는 힘에 대한 인식에까지 나아간 것으로 그런 점에서 <삼대>는 한국 근대 문학의 기념비적인 업적 가운데 하나다.





최근 지만지에서 출간한 완전한 의미의 <삼대>를 접하게 되었다. 전승주 교수는 초판본인 신문 연재본을 기본으로 한 책 3종과 개작된 단행본을 기본으로 한 책 3종을 비교해 총 5000여 곳의 서로 다른 점을 찾아내며 이전의 책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오류들은 모두 바로잡은 완전 복원 원고가 전승주 교수의 정본이다. 그동안 이 작품을 읽어 온 독자들은 완전하지 않은 텍스트를 정본으로 알고 있었다. 100년 전의 경성과 그곳에 살았던 덕기와 병화와 경애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김희경 박사의 방대한 곁 텍스트와 김종욱 교수의 해설을 더하고, 연재 시 게재되었던 당대 최고의 화가 안석주 화백의 삽화를 함께 수록한 가장 완전한 의미의 삼대가 탄생했다.




염상섭이 <삼대>를 연재하기 시작한 것은 1931년. 그의 나이 서른다섯 살 때이다. 염상섭은 이 소설을 통해 1930년을 전후로 한 서울의 한 중산층 집안의 몰락 과정을 중심으로 당대 식민지 사회의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당대 사회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섬세한 묘사가 두드러지는 이 소설은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만 살펴보더라도, 주인공인 조덕기 일가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김병화로 대표되는 이념적인 인물들, 그리고 매당집과 수원집으로 대표되는 부정적인 인물들까지 당대 인물의 전형들이 두루 포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인물들이 씨줄을 이루고 있다면 조의관, 조상훈, 조덕기의 삼대에 걸친 가부장제적인 가족사가 날줄을 이루면서 한 폭의 이야기를 짜나 가고 있다.




읽는 내내 느껴지는 돈이 최고라는 가치관은 100전에도,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변하지 않은 씁쓸한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임을 느끼게 해주었다.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들을 움직이는 동력이 바로 조의관의 돈이라는 점에 더욱 그러했다. 조덕기는 할아버지에게 불만을 품고는 있지만 그렇게 불만을 표출하지 못하도록 막은 것은 할아버지의 돈이었다. 조덕기는 조의관이 죽은 뒤 물려받은 열쇠 꾸러미로 가문과 재산 분배를 둘러싼 음모에 휩싸인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독살의 협의로 검거된다. 협의를 벗고 풀려나온 덕기는 여러 문제를 원만히 처리하고 필순이 가족들을 돌볼 생각을 한다. 가진 자가 못 가진 자에 대해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조덕기와 조상훈뿐만 아니라 그 주변 인물들인 수원집이나 최참봉, 지주사와 같은 인물들이 보여주는 '돈'에 대한 욕망과 생각이 이 작품 전체를 이끌고 있다.




염상섭은 <삼대>는 물론이거니와 그의 문학 전체에 걸쳐 염상섭은 이 같은 돈의 사상을 문제 삼았다. 돈이 최고의 가치로 군림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 본질을 꿰뚤어보고 이를 진지하게 다루었다는 점에서 염상섭 문학은 근대적이다. 어쩌면 염상섭의 소설을 시작된 후배 작가의 소설들 예를 들어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선작 작가의 <영자의 전성시대>, 윤흥길 작가의 <아홉켤레 구두로 남은 사내> 등은 낭만이 사라진 자본주의 사회의 심장부로 부각된 서울의 이면들이 회색빛으로 묘사된 소설들이다.

연재 기간 약 9개월, 연재 회차 215회의 이 소설을 지만지출판사에서는 1366쪽이라는 방대한 분량으로 만들었다. 다소 비싼 가격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수정된 오류들과 많은 한자어, 사투리, 지금은 쓰지 않는 단어들과 설명이 필요한 인명, 지명, 사물 등의 전문가가 감수한 상세한 주석, 풍부한 이미지 자료는 1930년대의 생생한 경성 공간을 묘사한 가장 완벽한 책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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