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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무를 만질 수 있을까
김숨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평점 :
오랜 세월을 묵묵히 산을 지켜온 나무들의 존재는 참으로 위대한다. 인간의 수명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영원과 같은 시간들 속에 존재해 왔던 나무의 삶은 놀랄 만큼 이상적인 인간의 삶과 닮아 있고, 인간이 삶의 영역을 확장하면서 밀려난 나무를 보고 있으면 인간에게서 느끼는 연민이 느껴졌다.
자연에 큰 영향이라도 주는 존재처럼 떠들어 대는 우리들의 오만함 위로 가을은 또 어김없이 곁에 와 있다. 어느덧 내 키보다 훨씬 커버린 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의 흐름, 그건 지날 때는 무척이나 느리고 지나가면 또 얼마나 빨리 가버리는 것인지, 게다가 오는 시간은 한 살 더 먹을수록 왜 그렇게 더 빨라지는지. 나에게 허락된 시간이 이제 얼마 남았든, 괜한 짓에 나를 더 이상 낭비하는 것이 이제서야 아까워지기 시작한다.
뿌리를 사용해 미술작품을 만드는 주인공의 연인과 매우 더딘 연애를 이어가고 있는 '나'는 그의 뿌리에게서 어린 시절 고모할머니와의 기억을 떠올린다. 노년에 홀로된 고모할머니는 '나'의 집에 들어와 같은 방을 쓰게 되고 자신에게 내밀었던 손을 거부했던 기억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그의 뿌리 오브제를 통해 다시 떠올리게 된다.
"갤러리를 나와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데 고모할머니의 손이 불현듯 그리웠다. 내게 남은 나날 동안 그렇게 간절히 내 손을 잡아줄 손이 또 있을까 싶은 게." p107
언젠가 아버지의 직업을 부끄럽게 생각하던 철없는 시절과 오버랩 되는 '나'의 모습에서 깨닫게 되는 건 시간은 감정을 엷게 할 뿐이고, 잊고 싶은 부끄러웠던 순간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뿐 그 흉터는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당신과 나 그 사이 눈물 나지 않을 만큼 그리운 거리, 헤어지지 않을 만큼 손잡을 수 있는 거리, 떠난 뒤에도 후회하고 돌아올 수 있는 거리, 꼭 그만큼의 사이 그 사이로 노을이 진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고모할머니가 손에 꼭 그러잡고 있던 게 뭐였는지 알아? 내 손이었어. 그녀가 양로원에서 돌아가시던 날 밤, 그녀의 손이 내 방에 날아들어 이불을 들추고 더듬어오는 걸 나는 다 느끼고 있었어. 내 손을 찾아 더듬더듬 더듬어오는걸...." p108
지금 내 곁에 함께 가는 이것들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면서 세상과 아름다움을 소통할 수 있을까. 뒤돌아 보면 눈물이 날 만큼 아련한 아픔을 간직한 것들. 눈에 보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보이지 않기도 하며, 손에 잡히지만 잡히지 않기도 한다. 말로써 전해지기도 하고 눈빛으로, 사소한 손짓 하나만으로도 감정과 이어지는 그것을 깨달았을 때 밀려오는 안타까움이 가슴을 가득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