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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홍라희 컬렉션 - 강력하고도 내밀한 취향
손영옥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7월
평점 :
이건희 컬렉션은 사실 '이건희 컬렉션'이 아니다
수집은 개인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이지만, 어떤 한 개인을 들여다보는데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삼성가의 행보는 오래전부터 관심의 대상이었다. 이병철 회장에서 시작된 삼성가의 수집은 이건희 회장을 통해 이미 2대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고 그의 부인 홍라희 여사 역시 전문성을 갖춘 수집가로 삼성가의 며느리가 될 때부터 수집가의 훈련을 받아왔다. 굳이 박물관과 미술관을 말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이미 국내 전무후무한 미술 수집을 완성하였고,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미술계 최고의 이슈로 자리 잡은 세기의 기증을 실행하였다.
지금껏 전례가 없었던 이 기증은 경제적 가치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규모이다. 이병철 회장 때부터 모아온 고미술품과 국내 근대 미술품 및 세계적인 서양화는 2만 3천여 점에 달하고 고미술품과 근현대 미술품을 합친 경제적 가치는 3조 원으로 추산된다. 이것은 우리나라 전체 미술관이 100년 동안 사야 할 미술품을 한 번에 구한 것과 같은 양이다.
이건희 컬렉션이라 불리는 지금의 미술 수집은 넓게 표현한다면 이건희, 홍라희 컬렉션이라 칭해야 옳은 표현일 것이다. 이 책은 이건희 컬렉션이라고 불려왔던 구축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아내 홍라희의 뒷이야기, 수십 년간의 수집 과정에서 그들 부부가 믿고 의지했던 화상의 이야기와 컬렉션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들과 그것을 창조한 화가들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가려진 이름 '홍라희'
이건희 컬렉션이 불리는 이 엄청난 수집품들을 모으는 과정에서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은 누구일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결재권자가 이건희 회장이었다고 해도 아내 홍라희 여사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홍라희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 미술학과를 나왔고, 1995년부터 호암미술관 관장을, 그리고 2004년 리움미술관을 개관하고 오랜 시간을 관장 자리에 머물렀다. 선대부터 내려온 고미술 중심의 삼성가에서 홍라희 여사의 전문성은 삼성가의 컬렉션을 다양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건희 컬렉션의 대부분의 수집 활동을 부부가 함께 해왔다.
"저희 부부가 최초로 산 미술품은 서예가 소전 손재형 씨의 소장품들이었는데,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나 <금강전도> 같은 명품들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행운이었지요. 회화나 도자기의 맛이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요. 그때부터 전문가들에게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이 회장은 1970년대 내내 거의 매일 저녁 미술품을 보고 사들이곤 했습니다."
전체 컬렉션에서 3분의 2 이상이 1970년에서 1980년까지 이건희 회장과 홍라희 여사가 사들 수집품이다. 그녀는 한국의 미술뿐만 아니라 서양의 현대미술에도 관심을 두고 있었고 마크 로스코, 애드 라인하르트, 프랭크 스텔라 등 지금의 컬렉션을 갖추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가장 가까운 조력자 '이호재와 박명자'
책에서는 미술계를 뒤흔든 삼성가와 수십 년간 함께한 두 화상을 소개한다. 바로 가나아트의 이호재 회장과 현대화랑의 박명자 회장이다. 1970년에 인사동에서 현대미술을 취급하며 본격적인 상업 화랑을 경영하고 있었던 박명자 회장과 1983년에 만 29세의 나이로 최연소 사장이 되며 가나화랑을 차린 이호재 회장. 박명자 회장이 당대 최고의 작가의 작품을 위주로 삼성가에 신작을 공급했다면, 이호재 회장은 생존 작가나 작고 작가의 구작과 명품 고미술을 공급해 주었다고 한다.
유명한 일화로 1979년 겨울 25살의 이호재 회장은 삼성 본관을 찾아가 막무가내로 이건희 부회장을 만나게 해달라고 했고 수차례나 문전 박대를 당했지만 그 끈기에 감동한 것인지 이건희 부회장은 그를 들여보내라고 한다. 이것이 이호재 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첫 만남이었다. 그 후 20년 동안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만나며 그들의 관계는 계속됐다.
그들이 사랑한 작품들
고미술의 관심에서 출발한 이건희 회장의 수집은 근현대미술 작가로 관심이 넓어진 건 아내 홍라희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이중섭, 박수근, 권옥연 등의 구상계열 작품 외 유영국, 김환기, 김흥수 등의 추상 계열의 그림은 아내 홍라희의 조언이 컸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들의 컬렉션의 특징이라면 단순 가격이 비싼 그림들이 아닌 학술적으로 큰 가치를 지닌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국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대가들의 작품이 대부분이다. 특히 일제 강점기와 전쟁의 피해로 척박한 근대미술에 삼성가의 컬렉션으로 들어온 작품은 1400점의 근대미술은 당시 미술계를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남을 것이다.
저자가 일본 국립서양미술관에서 느낀 부러움은 나 또한 유학 당시 느꼈다. 마츠가타 고우지로가 수집한 미술품이 국립서양미술관의 근간이 되었는데 마네, 세잔, 모네, 고갱, 고흐에 이르기까지 유럽이 아닌 일본에서 소장하고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아 한참이나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마츠카타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가와사키 조선소로 막대한 부를 쌓았다. 그는 그림을 사기 위해 런던에 사무실을 만들고 자주 파리로 가서 그림을 골랐다고 한다. <수련> 역시 모네가 살아 있을 당시 마츠카타가 직접 가서 산 그림으로 그의 열정을 생각한다면 어쩌면 일본이 소장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까.
도쿄 국립서양미술관의 컬렉션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삼성가의 기증으로 우리나라도 모네의 수련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구매조차 쉽지 않았을 고갱, 샤갈, 미로 달리, 피사로, 르누아르에 이르기까지 서양 근대미술의 소장이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기증은 숭고한 일이다. 자신의 안목과 시간, 막대한 노력을 들여 애써 수집한 소장품을 사회를 위해 내놓는 일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영원히 기억되고, 존경받아 마땅하다.
세기의 기증으로 국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건희. 홍라희 부부의 컬렉션으로 국내 미술계는 다시 활력을 찾고 있다. 그들의 기증의 가장 큰 의미 중 하나는 빠져있던 컬렉션의 완성도를 높였다는 것이다. 엄청난 가격 때문에 엄두도 내지 못했던 김환기 작가의 작품들과 박수근, 이중섭 작가의 대작들을 기증받음으로써 엄청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손영옥 미술평론가의 <이건히. 홍라희. 컬렉션>으로 그들의 컬렉션이 형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생겨난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와 그들이 사랑한 그림과 작가들의 이야기는 나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시간이었다. 삼성가의 컬렉션을 이해할 가장 흥미로운 도서로 남을 거라고 단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