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시간표 - 정보라 연작소설집
정보라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그냥 없는 척, 모르는 척해야 해요. 그래야 우리가 계속 일하고 살 수 있어요."

우리 곁을 맴도는 괴담의 매력은 무엇일까? 무엇이 그토록 호기심과 오감을 자극하며 빠져들게 하는 걸까? 아마 그것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자연스럽지만 누구나 겪을 만한 일은 아니기에 더욱 특별하고 오싹한 거라 생각한다. 다음이 궁금해지는 묘한 분위기로 우리를 낯설고 기이한 곳으로 데려간다.

지난해 <저주 토끼>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부커상 후보로 거론되면서 큰 화제를 모았던 정보라 작가의 <한밤의 시간표>는 제대로 된 귀신 이야기를 쓰겠다던 그녀의 예고대로 그녀만의 독특한 귀신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번 작품은 연작소설의 형태를 띤 이야기로 귀신들인 물건을 보관한 연구소에서 직원들이 겪은 각종 기묘한 이야기와 그 귀물에 얽힌 사연을 풀어놓았다.

그녀의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우리 일상에서 있음 직한 도시괴담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더욱 섬뜩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아무리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올라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 계단, 소설에서 가장 큰 소재로 자리 잡은 귀신들인 물건이라는 매력적인 소재는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귀신 들린 물건들을 모아놓은 연구소에서 한밤의 시간표에 따라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복도를 돌며 반복적으로 잠긴 문들을 확인하는 이 일은 찬이 이른바 '정상적'이라는 사람들과 지나치게 접촉하지 않으면서도 경제활동을 하고, 아주 최소한이나마 사회활동을 하고 일과를 정해 움직이고, 생활의 규칙과 질서를 조금씩 다시 정립해나가는 첫걸음이었다." p23

정체불명의 물건을 관리하는 연구소에서 귀신들린 물건들에 얽힌 일곱 편의 이야기는 귀신들이 깨어나는 밤의 연구소에서 이루어진다. 주로 주인공이 선배에게 연구소에 전해져 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이 주된 구성이다. 첫 단편인<여기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에서부터 보여준 계단과 터널이라는 공간이 주는 공포감과 <저주 양>에서 느꼈던 권선징악 뒤의 애틋함, <고양이는 왜>에서 등장하는 한 인간의 집착까지 단편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다가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느껴져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정보라 작가의 이야기들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작품들 속에 사연들은 이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도, 떳떳하지 못한 만남과 힘없는 여성의 학대와 성폭력 등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불의하고 폭력적인 세상에 맞서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그녀 다운 전개였다.

저자가 만들어낸 이야기들은 독자들에게 연구소라는 기묘한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연구소의 잠겨진 방을 하나씩 돌아다니며 들을 수 있는 서늘한 이야기 이면에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정보라 작가의 <한밤의 시간표>는 우리를 더욱 다채로운 호러의 세계로 안내하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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