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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드리 씨의 이상한 여행
마르크 레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8월
평점 :
불교에는 인연설이란 게 있다. 한 사람과 그 사람을 둘러싼 다른 사람, 자연과 우주가 모두 하나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가족이나 친구처럼 가깝고 알아보기 쉬운 인연이 있고, 만난 적 없고 본 적도 없는 사람들. 이 모든 인연들이 모여 한 사람을 살아갈 수 있게 돕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아는 사람도, 앞으로 만날 사람도 모두 지금 나와 당신을 살아가게 해주는 고마운 인연이라는 것이다.
"나는 운명이니, 가야 할 길로 인도해 준다는 작은 신호니 그런 걸 믿지 않았어. 점쟁이의 말이나 미래를 점치는 타로도 믿지 않았고. 난 단순한 우연의 일치, 그 우연의 진실을 믿거든."
모든 냄새를 구별할 수 있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앨리스와 그녀의 이웃에 살며 교차로를 그리는 것을 즐기는 화가 달드리의 이야기로 1950년대의 런던과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앨리스는 친구들과의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내다 점쟁이의 예언으로 평범했던 일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날 이후 매일 밤 낯설지 않은 곳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게 되고 언젠가부터 이웃 달드리(이든)와의 가까워진 앨리스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유산을 상속받게 된 달드리의 도움으로 점쟁이가 예언한 운명을 찾아 이스탄불로 떠나게 된다. 이스탄불에 도착한 그들은 가이드 칸을 만나 운명의 여정이 시작된다. 어느 날 우연히 들어선 골목길에서 악몽을 꿀 때마다 봤던 장소를 발견하게 되고 그동안 기억 속에서 지워졌었던 진실에 조금씩 다가가기 시작한다.
"4월 25일. 이스탄불에서는 아르메니아 출신의 유력 인사들과 지식인, 신문기자, 의사, 교사 그리고 아르메니아 상인들까지 대거 검거되었어요. 그들 대부분은 재판 없이 처형되었고, 생존한 사람들은 아다나와 알레프로 끌려가서 강제 수용되었고요."
소설은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15년 4월 24일 오스만 제국 치하에 있던 아르메니아인 약 150만 명이 강제추방 과정에서 엄청난 수가 목숨을 잃은 아르메니아 학살 사건을 다루고 있었다. 이 학살은 2차 세계대전 중에 일어난 유대인 대량학살 사건인 홀로코스트에 비견될 정도로 엄청난 비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정확한 역사적 실체를 밝히는 작업은 뒤로 미룬 채 정치적 목적에 의해 이 문제가 주로 다뤄졌다는 점이다. 로맨스 소설 안에 감추어진 아픈 역사는 잊혀 가고 있던 비극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회색빛 런던의 평화로운 풍경과 아름다운 이스탄불 모습을 간직한 <달드리 씨의 이상한 여행>은 여러 문화의 원형을 간직한 매력적인 끌림으로 충만한 이스탄불을 배경에서 벌어지는 그들의 신비한 여정과 생각지도 못했던 진행은 이 책을 읽어야 할 커다란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