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승 인간 - 좋아하는 마음에서 더 좋아하는 마음으로
한정현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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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그저 그런 지루한 삶을 살았다고 불평해대도 모든 순간이 예측한 대로 흘러가는 이는 없을 것이다. 기대와 어긋난 순간의 마주침은 당황스럽기도 하고 못내 불편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소나기가 항상 미운 것은 아닌 것처럼, 그 당혹스러운 마주침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의 출발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삶은 낯선 환경으로의 끊임없는 환승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낯선 환경에 발을 딛고 선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익숙한 모든 풍경을 등져야 하는 일이고, 낯선 시선을 한몸에 받아야 하는 일이다. 겨우 그 위에 발을 딛고 선다 해도,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처음 보는 건물과 거리, 사람과 시선, 모든 것이 한 사람 외부인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낯선 환경에 발을 딛는 일을 꿈꿀 때 설렘을 감추지 못한다. 우리는 왜 낯선 곳에 가는 일에 가슴이 뛰는 것일까. 그건 어쩌면 우리가 매일 겪는 하루는 같아 보이지만 실은 다른 것이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일상이라는 이름에 가려졌지만, 사실 모든 사람들은 매일 아침 눈을 뜨며 낯선 플랫폼을 밟고 있다. 그러니까 사람은 모두 다 매일 새로운 시간을 살아가는 여행자인 것. 낯선 환경으로의 환승은 운명이고 본능이다.

"환승하는 삶.

환승할 수밖에 없는 삶.

좋아하는 것에서 좋아하는 것으로 환승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좋아해야만 하는 것을 만들고 좋아하게 만들어야 살아지는 삶도 있다. 마음과 사랑이라는 것을 손쉽게 쓰지만 사실 요즘은 그런 것마저 만들어내야만 견딜 수 있는 삶도 많다고 느낀다. 그런 삶의 환승의 수가 빈번하게 높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런 무수한 환승을 경험하면서도 순간 나 자신의 바깥에 놓인 삶에는 또 한 번 무감했던 것 같다." - 프롤로그

그동안 효율적인 삶을 교육받아왔고, 때론 강요당했고, 그렇게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가능한 더 빠르게, 가능한 더 많이, 질이 안 되면 양이라도, 살아남기 위해 경쟁을 배웠다. 그래서일까, 효율적인 삶과 속도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방향을 쉽게 잃었다. 목적지를 잃어버린, 그래서 속이 비어버린 사람. 깊이가 없는 껍데기를 부여잡고 올 수밖에 없었다.

한정현 작가의 <환승 인간>에서는 오롯이 자신으로 설 수 있도록 노력해왔던 수많은 환승들을 통해 삶에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사랑에 대한 단상도, 생각지도 못한 유학으로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느낀 삶에 대해서도, 그녀가 좋아하는 문학, 영화를 통해 작가 한정현으로의 이정표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진정 원하는 삶을 위하여 무수한 환승과 함께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이 나의 모든 진심이자 진실이다"라는 선언이었다. 그건 내 삶의 자세이기도 하다. 자꾸만 자주 휘발되는 가치에 관한 것, 내가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지나가는 시간에 의해 가치 없음이 되어가는 것. 그리고 그것을 소설 속에서 지켜보고자 했던 나. 여전히 내 아에서 가치로 남겨져 있지만 타인들에 의해 무가치해지는 무언가에 대해 써보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쓴 "이제 가자, 아키코"라는 문장은 내 인생의 다른 부분으로 넘어가려는 마음이었다." - 이제 가자 아키코 중에서

수많은 인생의 환승은 결코 사치가 아니다. 경험적 근거를 바탕으로 단언한다.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는 커다란 의미가 있다. 각각 살아온 인생에 따라, 각자 다른 눈으로 목격한 세상에 따라, 그리고 각자 온몸으로 느꼈던 경험에 따라 각기 다른 의미로 발현된다. 비슷한 인생을 살았다고 해도 내 삶의 형편에 따라, 또 누구와 함께했으며,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살아왔는가에 따라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삶의 희로애락, 온전히 나만이 느낄 수 있고, 나만이 이해할 수 있는 그 의미를 어떻게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생을 찬탄하고 긍정하고 싶은 마음 같은 건 없다. 하루를 버티고 하루를 살아낼 뿐이다. 해야 할 일을 꾸준히 해 나가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한다.

때로는 내가 나로 산다는 것이 조금 미안하고, 많이 불편하지만 수심을 알 수 없는 검은 밤바다가 있고, 태양을 품은 뜨거운 아침의 금빛 바다가 있듯 각자의 삶이 수시로 변화는 일들로 살아볼 만한 것이 아닐까? 남들은 발견할 수 없는 커다란 돌비석 하나를 가슴에 묻고 생의 끝까지 그것을 지표 삼아 걷는 일. 그 끝이 희망이 되는 일로 여기며 살아가는 동안에는 희망이 야박하더라도 우리는 힘을 내어 끊임없이 환승하며 돌비석으로 나아가는 일. 만약 벼랑 끝으로 이어진다 하더라도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하며 웃을 수 있는 삶으로.

모든 것이 변화고 새로운 모든 것이 시작되는 그 환승의 갈림길에서 각자의 꿈이라던가 작은 희망 같은 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마음 한구석에 세워 놓고 살아갈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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