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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포사 - [초특가판]
호세 루이 쿠에르다 외 감독, 페르난도 페르난 고메즈 외 출연 / 위젼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정말 좋은 영화를 한편 보았다. 스페인 내전이 배경인 영화 <마리포사> 마리포사는 우리말로 나비란 뜻이다. 영화의 원제는 `나비의 혀`
책은 잘 안 읽히고 요즘 나온 영화들을 조금씩 보다가 접어버리고, 이럴 땐 고전이 최고지 하며 골랐던 영화.
1936년 스페인의 아름다운 시골마을 가르시아에 정말 심하게 귀여운 소년 `몬초`가 있다.(정말 이 영화는 몬초의 귀여움만 보아도 본전은 한다) 천식을 앓아서 거의 집에만 있던 소년은 내일부터 학교에 가야 하는게 두려워 잠이 안온다. 선생님이 아이들을 때릴까봐 무섭다.
오줌을 지리도록 무서운 학교에서 만난 그레고리오 선생님은 나이 지긋하신 신사다. 걱정과는 달리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해줄 줄 아는 좋은 선생님이다. 몬초는 선생님과의 학교 생활이 즐겁다. 영화는 대부분 몬초의 학교 생활과 소박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로 전개되는데 이 영화가 스페인 내전이 배경이라는 사실은 자주 잊게 된다. 다만 이념의 대립으로 마을 사람들 사이에 조금 불편한 관계가 있을 뿐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추구하는 노선이 조금 달라도 인격적으로 서로 존중하며 살아가고 있다. 몬초의 아버지는 양복점을 하고 있는데, 그는 심정적으론 공화주의자다. 아직도 마을에선 기존의 가톨릭 세력들의 눈치를 봐야 해서 노골적으로 공화주의자라는 티를 내지는 못하지만 서민들의 자유를 대변하는 공화주의자인 그레고리오 선생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양복을 선물하며 진실한 친구가 된다.
자연학습을 나갔을때, 그레고리오 선생님은 나비에게도 혀가 있다는 걸 알려주신다. 완벽한 나선형을 가진 아름다운 `나비의 혀`, 평소에는 보이지 않지만 나비가 꿀을 빨때면 나온다. 꽃의 달콤한 꿀을 빨아먹고 그 꿀의 맛을 느낀 나비는 이 꽃 저 꽃 날아다니며 꽃가루를 퍼뜨린다. 나비의 혀는 스페인어로 `프로보시스`라고 한다.
이 나비의 혀를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현미경을 신청해 놓았지만 나라의 상황은 언제 현미경을 보내줄 지 알수가 없다.
영화의 원제가 `나비의 혀`이므로 이것이 상징하는게 무엇일까 생각하며 영화를 보게 되지만 사실 그런건 몰라도 상관없다. 그저 너무 귀여운 몬초와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여도 충분히 재밌다.
영화 마지막에 이르면 가톨릭과 군부를 중심으로 하는 파시즘 진영이 내란을 일으켜 이 시골 마을에서도 반동분자를 색출하는 일이 벌어진다. 여기서부터는 우리에게도 너무 익숙한 풍경이다. 어느 편인지 확실하게 하지 않으면 폭도로 내몰려 죽을 수도 있다. 몬초네 식구들도 공화주의자였던 흔적을 얼른 지운다. 마을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어제까지도 친한 친구였던 공화주의자들이 끌려가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마음은 아프지만, 살아남기 위해서 그들에게 욕을 하고 돌을 던진다.
˝이 빨갱이!! 배신자!!˝
그 모습을 지켜 보는 어린 몬초의 얼굴! 이념대립이 몰고 온 두려움과 존경하는 선생님에 대한 걱정, 그런 상황에서 욕을 하고 돌멩이를 던지라고 하는 엄마, 그리고 압도적인 마을 분위기.
몬초가 돌을 던지지 않고 ˝ 저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야!!˝ 하고 외치는 장면을 잠깐 상상했던 나는 다음 장면에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공화주의자들을 싣고 출발하는 트럭을 따라가며 돌을 던지는 몬초. 그레고리오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고, 몬초는 돌을 던지며 외친다. 빨갱이! 배신자!가 아니라
˝틸로노리코! 프로보시스!˝
아!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몬초!!
그건 선생님의 가르침을 잊지 않겠다는 외침으로 들린다. 비록 지금 현실의 몬초는 힘이 없지만, 지금은 나비의 혀처럼 `자유`가 숨어버렸지만, 잠깐 맛본 달콤한 자유의 맛을 알기에 몬초는 그 자유를 여기저기 퍼뜨릴 자유주의자로 자랄 것이다. 야외수업에서 지옥에 가는게 두렵다는 몬초에게 선생님이 해 주신 말. ˝지옥은 타인을 증오하고 미워하는 인간의 마음 속에 있다.˝ 는 것을 그날 뼈저리게 느꼈을 몬초가 한발 크게 성장했음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 저 한 장면에서 영화는 내 온 몸으로 들어온다! 기꺼이 내 인생의 영화로 꼽을 만 하다.
(참고로 틸로노리코는 구애할 때 꽃을 준다는 새 이름이라고 한다. 영화에서 몬초가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나오는데 이름이 오로라다 ㅋㅋ 몬초는 선생님의 조언으로 오로라에게 꽃을 선물한다. 그 순간의 행복함! 그 꽃의 의미는 파리 테러 현장에 꽂힌 꽃과도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총칼이 아니라 꽃으로 만드는 세상! 그것이 몬초와 그레고리오 선생님이 만들고 싶은 세상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