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책 읽는 시간 - 무엇으로도 위로받지 못할 때
니나 상코비치 지음, 김병화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결국 내게 올 운명이었다.

도서관에서 항상 내 눈에 띄곤 했는데 (아마 제목이 끌려서겠지) 이상하게도 꺼내서 펼쳐보지도 않았었다. 그저 서가에 꽂힌 것만 보고, 좋네~ 하고 말았던 거다.

알라딘에서 리뷰들을 읽고 나서야 '왜 이 책을 읽어 볼 생각을 못했지?' 했다. 이건 완전 내 얘긴데. 그제서야 나는 지구 반대편의 친구를 만나러 가는 설레임으로 이 책을 펼쳤다.

 

사랑하는 언니의 죽음으로 슬픔에 빠져 몇년동안 방황을 한 저자는 어느날, 400쪽이 넘는 <드라큘라>를 하루만에 읽고 처음으로 편안하게 잠들었다. 이것을 계기로 하루에 한권씩 책을 읽고 블로그에 서평을 올리는 '마법같은 독서의 한 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하루에 한권이라니! 일도 있고 아이도 넷이나 키우는 그녀가. 게다가 꼬박꼬박 서평까지.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계획이 조만간 흐지부지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독서가 주는 편안함과 책 한권을 들고 내 보랏빛 의자에 앉는 즐거움을 고대하고 있었고, 그것을 일이라 규정했다. 일이라 부름으로써 그것을 신성하게 만들었다. (50쪽)

 계획을 세운 다음에는 장단점을 논의하지 않았다. 내 선택에 대해 따지느니 그럴 시간이 있으면 그 선택을 실행하는 데 쓰는 편이 낫다.(51쪽)

 

 주부가 독서에 많은 시간을 낸다는 것은 이런 결단이 없으면 사실 불가능하다. 하루종일 집에 있으면 굉장히 시간이 많을 것 같지만 특별히 일한 티가 나지도 않는 자잘한 일들 때문에 늘 정신이 없다. 독서도 일이라 생각하고 무조건 시간을 내지 않으면 한페이지도 못읽고 지나는 날들이 많다.

 

내가 독서를 내가 할 일로 규정하고 몰입해서 책을 읽기 시작한 건 3년전이다. 그전에도 늘 책을 읽는다고는 했지만 독서를 우선순위로 두지 않으면 한달에 한 권 읽기도 힘들었다.

항상 책을 좋아해왔다고 생각했지만 몰입독서를 하고서야 내가 너무 책을 안읽었구나를 뼈저리게 느꼈다. 고등학교때까지는 입시준비하느라, 대학가서는 놀러다니느라, 직장다니면서는 힘들어서, 신혼때는 살림의 재미에 빠져서, 아이를 낳고부터는 아이들을 키우느라 나는 점점  책 한권 온전히 읽기 어려운 사람이 되어버렸다.

 

내게 딸과 아들이 생기고 나는 전업주부가 되었다. 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한 순간도 내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세상 모든 경험을 같이 하리라. 우리는 셋이 하나처럼 똘똘 뭉쳐서 같이 놀고 같이 공부하고 같이 책을 읽었다. 그렇게 평생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었다. 딸아이는 무던하게 지나가서 사실 잘 몰랐다. 그저 가끔 혼자 우는 날이 있었는데 엄마가 아는 것을 원하지 않는 정도였다. 아들은 좀 심하게 사춘기가 왔다. 이제 생각해보니 아들의 성향은 딸이나 나랑 맞지 않아서 그동안 좀 힘들었었나보다. 걔는 활발하고 가만히 있는 것을 못 참는 아이였는데 놀때는 좋지만 책을 읽어야 할때는 나름 힘들어도 참았던 것이다. 착한 아이라 내색을 안 했을 뿐. 그러다 나라를 지킨다는 중2가 되니 학교가 끝나도 늦게까지 안들어오고, 당연히 늘어가는 내 잔소리에는 노골적으로 귀를 막았다.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너는 그러면 안되는거 아니냐. 나는 그래서 섭섭했지만 그 말은 아이에게는 더 힘들었을 것이다.

 

야단을 치기도 하고 달래보기도 하다가 나는 결국 문제를 나에게서 찾아보기로 하고 어느 순간 책을 펼쳤다. 하루 종일 모든 일을 접고 책만 읽었다.  늘 괴로웠던 마음이 이상하게 편해지고 내가 편안해지자 식구들이 모두 좋아했다. 그날부터 내 독서도 '일'이 되었다.

 

몰입독서 첫 해에는 하루에 몇시간씩을 무조건 독서에 할애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나면 대충 집안을 치우고 거실 한쪽에 마련해 놓은 내 독서공간(독서실 책상을 하나 들여놓았다)에 앉아 책을 읽는다. 엄마들의 커피 타임이나 운동을 가던 시간이 점점 독서 시간으로 바뀌었다. 안 읽던 책을 읽으려니 몰입이 어려워서  책에 밑줄을 긋거나 베껴쓰기를 하면서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책도 아이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온전히 나만을 위한 책을 골랐다. 그때쯤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인문학 서적들이 도움이 됐고, 독서 팟캐스트들을 들으며 책과 친해질 수 있었다. 그 해 백권 가량의 책을 읽었다.

 

아이들에게 관심을 끊은 것은 아니지만 무얼하든 잔소리는 하지 않았다. 독서의 힘이다. 조언을 구할 때에는 성심껏 도와주지만 내가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일은 없어졌다. 딸은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고 스스로 알아서 잘 했는데 아들은 그걸 역이용했다. 잔소리가 없으니 기분좋게 늦게까지 놀다 들어왔고, 책도 점점 놓아버리고 컴퓨터 게임에 빠졌다. 솔직히 섭섭한 마음이 없진 않았지만 착한 아이니까 언젠간 돌아오겠지, 자기 할 일을 찾겠지, 만약 안그렇더라도 지금 행복했으니까 괜찮다 생각했다. 책을 읽다보니 위로가 되었고 '이게 다 너를 위한 잔소리'가 너를 위한게 아니고 나를 위한 거였다는 걸 깨달았다.

 

몰입독서 둘째해에는 첫 해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해 첫날 계획을 세웠다. 내가 읽은 책에 대해 꼬박꼬박 노트에 리뷰쓰기! 뭔가 자취를 남기고 싶어서였다. 둘째해에도 백삼십권 정도의 책을 읽었고 독서노트가 다섯권이 생겼다. 가끔씩 아들과 의견이 안맞기도 했지만 이제 내공이 생겨서 나도 아들을 이해하고 아들도 조금은 편안해졌다. 사춘기친구들이 자기엄마를 '미친년'이라고 부를 때 아들은 '우리 엄마는 그러지 않아'라고 나를 변호해준다는 것도 친구 엄마를 통해 들었다. 그거면 됐다고 생각했다.

 

올해는 몰입독서 삼년차다. 그사이 살이 많이 쪄서 올해는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대신 딸이 고3이 되었고 아들도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마음을 다잡고 공부를 하겠다고 누나랑 같이 독서실에 있다가 늦게 오니까 저녁시간에 많은 시간이 생겼다. 북플을 알면서부터 알라딘 서재에 리뷰를 올리기 시작한게 올해의 변화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 계획이 하나 생겼는데, 내 책장에 있는 책읽기를 목표로 해야 겠다는 것이다. 읽겠다고 사놓고 못읽은 책들이랑 남편의 책들, 시간이 많이 걸려 엄두를 못내던 고전들을 작정하고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알라딘 굿즈가 유혹을 해도, 신간이 유혹을 해도 일년만 참아보자, 서재 다이어트를 해보자 하는 계획이 생겼다. 계획이 섰으니 또 밀어붙일것이다.

 

내게 독서의 한 해는 요양원에서 보낸 한 해였다. 그것은 내 삶을 채우고 있던 건강하지 못한 분노와 슬픔의 공기에서 격리되어 지낸 1년이었다. 그것은 책의 언덕에서 불어오는 치유력을 가진 미풍 속으로의 도피였다.(279쪽)

책으로 채워진 1년간의 집행유예 기간 동안 나는 회복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 회복단계를 넘어서 다시 생활로 들어가는 방법도 배웠다.(279쪽)

 

책을 읽으며 '이 사람 참 나랑 비슷하네' 하는 생각을 하는 건 참 좋다. 나랑 같은 사람이 있다니 외롭지 않고 그때의 마음을 멋진 문장으로 잘 표현해 준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

 

나는 평생동안 책을 읽어왔다. 또 읽어야 할 필요가 가장 컸을 때 책은 내가 부탁한 모든 것과 그 이상을 주었다.(280쪽)

 

내가 책에 감사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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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3 10: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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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3 11: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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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3 10: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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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3 11: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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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3 11: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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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3 11: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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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5-10-23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나 상코비치 책 만큼이나 오로라님의 이 리뷰도 마음에 와닿네요. 책에 몰입하게 되는 계기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순탄한 시기보다는 좀 힘든 시기일때가 많은가봐요.
일년에 백 삼십권 읽는다는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저도 연말에 늘 느끼는데요.

살리미 2015-10-23 12:31   좋아요 0 | URL
그땐 누군가를 만나면 더 상처가 되는 일들이 많아서 혼자 책을 읽는게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냥 읽는게 아니라 니나 상코비치처럼 몰입하는것, 그게 필요하단걸 저도 느꼈거든요. 억지로라도 하루 최소 네시간은 책을 읽자 다짐했고, 실천 못한 날은 막 조급해지기도 하면서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점에서 위로를 받았어요^^ 이젠 몇 권 읽는다는 목표보다는 깊이있게, 잘 음미하며 천천히 읽으려고요.

물고기자리 2015-10-23 14: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 책장에 읽지 않은 책은 다섯 권 미만으로 두는 것을 늘 지켜가고 있어요ㅎ 한 번에 한 권씩만 읽는 성향이라 그 정도의 여분이면 안심할 수 있더라고요^^ 읽은 책들이 계속 쌓이면 소장하고 싶지 않은 책들을 골라 일 년에 한 번씩 정리를 했었는데 리뷰를 쓴 책들엔 애착이 생겨버려서 계속 간직하게 될 것 같아요ㅎ

제 주변의 현실 사람들은 읽는 걸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드물어서 책 이야길 하거나 듣고 싶어도 충분히 할 수 없어 늘 아쉬웠는데 어느 날 발견한 북플을 통해 읽는 사람들을 발견하곤 도서관 하나를 통째로 얻은 기분이었어요. 책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들이 책을 읽는 것만큼 풍요롭고 좋은 것 같아요. 게다가 읽기에 대한 갈증이나 애정을 공감할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살리미 2015-10-23 17:36   좋아요 1 | URL
맞아요. 저도 물고기자리님과 같은 마음이랍니다. 첨에 북플을 깔았을땐 그저 읽은 책 체크나 하려는 마음이었는데 여기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정말 보물을 건진 느낌이 들었어요. 혼자 책 읽기가 좀 지칠때가 있거든요. 그럴때 얘기 할 사람이 있다는게 너무 행복하죠. 제가 원래 SNS 잘 안하는데 북플은 매일 들어오게 되는 이유가 좋은 사람들 때문이에요^^
저도 앞으론 꼭 책장에 있는 책 다 읽기 지켜나가려고요! 이렇게 발표해 버렸으니 어떻게든 되겠죠?^^

cyrus 2015-10-23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로라님은 하고 싶은 일을 끝까지 하시는 실천력 좋은 분이시군요. 부럽습니다. 저는 계획만 세우고는 1년 넘지 못하고 포기한 적이 많았거든요. 예전에 여유로운 시간이 많았다는 이유만으로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게 후회됩니다. 오로라님의 글을 읽으면 제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반성할 수 있었습니다.

살리미 2015-10-23 17:31   좋아요 0 | URL
저도 실천력이 좋은 건 아니에요^^ 고수님들이 많은데 너무 부끄럽네요^^ 다만 그땐 제딴엔 절박해서 여기에 에너지를 쏟아보자 하는게 있었고요~ 그렇게 일년이 지나니 제 자신이 많이 달라져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