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에 대통령 기록관의 현판을 신영복이 썼다고 바꿔달았다는 기사가 일면에 실렸다. 정말이지 `거꾸로 가는 대한민국`이다. 반대여론을 무시한 채 국정교과서 도입을 강행하는가 하면 막말을 일삼는 사람들이 공영방송의 이사로 버젓이 행세하고 있다. 그런데 또 뭐가 무서워서 `과거 간첩사건 연루자가 썼기때문에 대한민국 정체성이 훼손된다`는 민원을 받아들여 그 멋진 현판을 멋대가리 하나없는 글씨체로 바꿔야 했을까. 뭐가 그렇게 두려워서 글씨체마저 그냥 두질 못하는 걸까.
내일은 한글날이다. 한글날이 되면 한글 폰트도 집중적으로 이슈가 되고 사랑받는다. 그들은 신영복체를 보면서 정말 멋지다고 생각하는게 아니라 간첩이 떠오르는 걸까? 나는 한글도 그처럼 멋있게, 자연스러우면서도 가볍지 않고 기품있고 철학적이게 쓰는 걸 보고 너무 부러워했다. 내 글씨체도 그를 닮고 싶다고,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좌파인가?
어제는 영화 사도를 강남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보러간다는 기사가 나왔길래 ˝그렇지, 영화를 보면 뭔가 느끼는게 있을거야˝하며 기사를 읽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기사는 강남엄마들이 부모말 안듣고 공부 안하면 저렇게 죽게된다는 걸 애들에게 알려주려고 데리고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백만원이 넘지만 불티나게 팔린다는 <스터디룸>을 현대판 뒤주라고 소개해 놓았다. 그 기사를 도대체 어떤 기자가 어떤 생각으로 썼는지는 모르겠다. 잘 검증한 객관적인 기사인지. 하지만 나는 너무 충격을 받았다. 생각이 이렇게도 다를 수가 있구나. 남편에게 ˝대체 왜 이러는 걸까?˝ 했더니 ˝문제를 보는 패러다임 자체가 다른거야˝ 했다. 그렇다면 과연 서로 소통이 가능할까? 소통이 가능하지 않는 시대엔 어떻게 살아야 좋을까?
아! 갑자기 소주가 땡긴다! 신영복 선생님 글씨체가 딱 박혀서 그 막강하던 참이슬을 멀리하고 냉큼 바꾸게 됐던 <처음처럼>이! 술병을 볼때마다 그 멋진 글씨체로 늘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는데, 정작 정신을 차려야 할 사람들은 이젠 <처음처럼>은 불경해서 마시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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