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사랑'의 개념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 사랑이 아무리 막장이라 해도"

강좌를 들으면 어떤 식으로 후기를 작성하는 것이 좋을까 온종일 고민했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한 줄 요약으로 '썰'을 풀면 좋겠다는 생각을 불현듯 하게 되었다. 앞으로도 강좌가 있는 날에는 그날그날의 내용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거나, 아니면 마음을 울리거나, 그도 아니면 최소한 뒤통수를 후려치는 듯한 감동을 줄 수 있는 한 줄 말로 뒷이야기를 푸는 방법을 이어가려고 한다. 

오늘 강좌도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렵게 느껴지지만, 간단하게 생각하면 위에 적은 딱 한 줄도 모든 상황을 정리할 수 있을 거다. 위의 문장과 관련해서 생각해보자. 우리는 흔히 사랑이라고 하면 즉각 '플라토닉 러브'라고 하는 말도 안 되는 관념적인 사랑의 개념을 상정한다. 이건 뭐 너무도 비현실적이어서 뭐라고 딱히 설명하기도 힘들지만, 굳이 예를 들자면 때묻지 않은 선남선녀가 만나 손만 잡고도 얼굴을 붉히는, 19금적인 요소가 완전히 배제된 청소년 드라마의 지고지순한 사랑 정도가 되시겠다.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현실에서 우리가 하고 있는 사랑은 완벽하지 못하고, 그런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 완벽한 사랑이 따로 있다는 이원적인 사고, 혹은 재현적인 사고 방식이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다 플라토닉 러브를 주창한 플라톤 선생님의 영향이 되시겠다. 이 양반은 이데아라는 완벽한 세계를 있다고 하면서, 우리가 사는 현실은 기껏해야 그 세계를 모방한 하급한 것이라 했으니 더이상 말해 뭐하겠는가?

그렇다면 이런 재현적 사고방식을 뛰어넘는 비재현적인 삶의 방식은 어떤 걸까? 불륜, 패륜, 막장을 연출하며 지지고 볶아도 현실의 진흙탕에서 뒹굴며 살아숨쉬는 인간으로서 사랑을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사랑이라는 개념을 생생하게 현실에서 실천하고 있는 것이고, 또 그 행위에서 사랑의 개념을 스스로 만드는 것. 바로 이게 비재현적인 삶의 방식이라는 거다. 

혹시 사랑이라는 개념으로 재현을 설명하다보니 강좌보다 후기가 더 어려워진 건 아닐까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하네.(--;;) 그래도 오늘 후기는 시간도 많이 늦고, 글도 길어졌으니 여기서 접어야겠다. 다른 분들께서 첫 강좌에 대한 설렘이나 각오, 수업의 분위기 등을 생생하고 박진감 넘치게 기술하실 테니 그때 또 기회가 되면 슬쩍 끼어들어서 내용으로 토론하면 되겠지요. 후기 첫 글(1빠입니다^^)이라는 뿌듯함으로 만족하면서, 이만 물러갑니다. 

* 뱀다리 하나-'재현'의 반대개념으로 '비재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신 것 같은데 수업내용과 연관해서 생각해보면 초재현적이라는 개념은 어떨지 강사 선생님을 비롯해 여러분들께 묻고 싶습니다.([장자]의 <소요유>에 나오는 곤과 붕의 질적 변환을 생각함다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물론 재현이라는 게 들뢰즈나 다른 현대철학자들이 사용한 개념이고, 반대개념으로 비재현을 사용한 것 같은데, 내가 정말 재현적 삶의 방식을 뛰어넘으려 한다면 이런 문제제기를 할 수 있겠죠?

* 뱀다리 둘-이번 강좌뿐 아니라 앞으로 진행될 여러 강좌의 내용을 훑어보니 들뢰즈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지더군요. 들뢰즈에 대해선 아는 게 전혀 없어서 채운 선생님의 책 얼른 읽고,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을 구해서 차근차근 읽어봐야겠네요. 들뢰즈 엄청 어렵다던데 혹시 읽다가 미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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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0729 2010-01-16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자랑스러운 첫빠 후기 잘 보았습니다. 저랑 느끼신게 많이 비슷하시네요. 물론 다르겠지만요ㅎㅎ 후기는 박진감넘치고 재미있게 쓰는게 제일인가요?ㅠ 저도 그럼 후기를 잘못썼군요ㅎㅎㅎ 그래도 강의내용이 박진감 넘치니 다른말이 뭐 필요있겠어요/ 저도 들뢰즈 공부를 '니체와 철학' 으로 시작했다가 피를 봤더랬죠.. ㄷㄷㄷ 정말 '토'나오게 어렵더라구요ㅎㅎㅎ

pattering 2010-01-18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재현이라...오오...그렇네요. 저는 마음에 쏙 와닿네요. ^^

알라딘공부방지기 2010-01-19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연한 이야기지만) 말씀해주신 플라토닉한 러브를 대중매체가 어떻게 확대재생산 하고 있는지, 그렇게 판매되는 플라토닉한 러브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 중에 내면화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겠어요.

아무래도 수유너머에서 공부하시는 선생님이라 말씀하신대로 들뢰즈 분위기가 나는 듯 합니다. 별로 아는 게 없는 알라딘 공부방 지기도 열공! ㅜ_ㅜ
 

안녕하세요?
알라딘 공부방 지기입니다.

어느덧 2009년이 가고 2010년이 왔네요.
처음 스터디를 기획할 때만 해도 2010년은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첫 수업이 코앞이에요.

생각보다 참 많은 분들이 지원을 해주셔서 선정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고심하던 공부방 지기는 이렇게 야근을.... (먼 산)

지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겠어요.
앞으로 더 좋은 강연 준비하겠습니다.
지금 당장은 함께하지 못하시더라도, 또 다음이 있으니 너무 상심 마시길.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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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말이 뭐 더 필요할까요.
1월 15일 7시 30분, 첫 강의 때 뵙겠습니다.
(10분 정도는 일찍 오시는 센스!!!)

상상마당 4층의 상상마당 아카데미에 오셔서 성함을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약도보기 >> 클릭)

변동 사항이나 기타 사항이 생기면 다시 공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모쪼록 2010년에는 좋은 공부하시고,
복된 새해 맞으시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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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영 2010-01-13 0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급한일이 있어 이른 새벽 컴퓨터를 켰는데 이렇게 좋은 소식이 있다니.. 감사합니다. 정말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비로그인 2010-01-13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흑흑.....뽑아 주실 줄 알았는데.......ㅠㅠ 다음에는 꼭 뽑아주세요...기대가 너무 컸는데.....아쉬워요

2010-01-13 17: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13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뉴리 2010-01-13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새해부터 기쁜 일이 생기네요~^^ 금요일날 뵙겠습니다.

2010-01-14 07: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분다 2010-01-14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떨리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합니다. ^^ 감사합니다. ^^

자꾸이럴래 2010-01-14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높은 경쟁률을 뚫고(?) 뽑혔네요. 너무 감사해요!

blue0729 2010-01-14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꺆!!>ㅁ< 추합되었네요~! 내일 수업때 뵙겠습니다^^

북길드 2010-01-14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인문학 스터디 1기로 선정돼서 너무 기쁘네요. 1기니 책임감을 갖고 더 열심히 활동해야겠지요?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윤재홍 2010-01-15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일 밤... Abracadabra Abracadabra Abracadabra 주문을 외쳤어요...

그리고 선정되었다는 메일 받고 나서는 마음속에는 유난히 큰 즐거움이 파문을 그리며 퍼져나갔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linimm 2010-01-15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들을게요.

불나방 2010-01-15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행운이 제게 찾아오다니요!!! 감사합니다- 감개무량합니다. 이따 수업 때 뵐게요.

코알라 2010-01-16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이번엔 비록 함께하지 못했지만 다음엔 꼭 참여하고싶어요~
그동안 인문학 책 많이 보변서 공부하겠습니다. ^^

선인장 2010-01-17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 끝까지 빠짐 없이 공부할게요!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의 강사 고병권 선생님 소개입니다. 본 자료는 도서출판 그린비에서 제공합니다.

*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는 아직 책으로는 만나보실 수 없습니다. 2010년 내 출간 예정
 



1971 년 전남 담양에서 태어났다. 광주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했다. 같은 대학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니체’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화폐’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추장+ 이다.

그 동안 <니체, 천 개의 눈 천 개의 길>(2001),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2003), <화폐 마법의 사중주>(2005),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2007) 등을 썼다. 동료들과 함께 지은 책으로는 <코뮨주의 선언>(2007)이 있고, 맑스의 박사학위 논문인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를 우리말로 옮겼다.


+ 추장이란?

고병권은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고추장'으로 불린다. "고(高)씨이고, 연구실 직책이 '추장'(酋長)"이기 때문이다. 고추장은 '대표'(代表, representive)라는 말을 싫어한다. 누가 누군가를 대표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대표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더 자세한 내용은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머리말 참조) 그리고 '고추장'이라는 명칭이 자신을 부르는 사람들을 한번이라도 더 웃게 만들기 때문에 고병권은 그 이름을 좋아한다. 인디언과 같이 모두와 함께하지만 그들의 의견을 대신하지 않는 존재. 그것이 바로 '추장'이다. 따라서 추장은 결코 '대표'하는 자가 아니라, '함께'라는 활동을 표현하는 자이다.



저자의 글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추장으로 동료들 사이에서 '고추장'으로 불린다. 지난 십여 년 동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세미나와 강의를 하고, 밥을 먹고 아이를 키우는 일까지, 말 그대로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살아왔다. 연구자 대중으로서 평생 공부하며 살 수 있다는 것, 그것을 가능케 해준 세상의 모든 동료들에게 감사하고 있다. 특히 지난 3년 동안 '길 위에서' 내게 귀중한 물음을 던져 준 분들, 삶에 대한 철학과 정치, 앎의 가치를 저 깊은 곳에서 되묻게 해준 분들께 감사하고 있다. 이제 그 물음들을 차분하게 되새김질해 보려고 한다. 행동이 사유한 만큼이나 사유가 행동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동안 홀수 해마다 혼자 이름의 책을 내놓았는데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게 됐다. 그 동안 『니체, 천 개의 눈 천 개의 길』(2001),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2003), 『화폐 마법의 사중주』(2005),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2007) 등을 썼다. 동료들과 함께 지은 책으로는 『코뮨주의 선언』(2007)이 있고, 맑스의 박사학위 논문인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를 우리말로 옮겼다.

(고병권,『추방과 탈주』, 책날개 중에서)


화학과를 졸업하고 사회학과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 석사논문을 니체에 관해 썼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아니 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내 논문의 주제를 묻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웬 화폐?" 놀랄 만한 변신을 본 것처럼 신기해하는 사람부터 공부의 깊이 없음을 걱정하는 사람까지 모두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나는 여기저기 풀을 뜯으러 다니는 초식동물이 아니다. 내가 화학에서 사회학으로, 사회학에서 철학으로, 철학에서 경제학으로 떠도는 것처럼 보인 것은 연구자의 주제나 소속을 특정하게 나누고 있는 학문분과 체제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나'로부터 떠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아니 나는 항상 '나'인 채로만 나를 떠날 수 있었다. 내가 맞닥뜨린 문제들, 내가 던지고서만 풀수 있던 그 문제들이 어디에 속하는지는 처음부터 관심사가 아니었다. 굳이 답한다면 그것들은 내게 속하고, 내가 존재하는 세계에 속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제도의 선분들을 따라 자기 욕망의 일관성을 끊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아니 왜?"

나는 여전히 욕망의 사회화학을 하고 있으며, 비철학자로서 니체·스피노자·맑스의 철학에 관심이 있고, 경제학보다 먼저 신학의 대상인 화폐를 이해하고 싶다. 무엇보다도 나는 꼭 필요한 재료를 위해 먼 곳으로의 여행을 마다 않는 요리사이고 싶다. 그 요리의 이름이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으로서는 혁명이나 코뮨주의를 개념적으로 사유하는 일에 몰두하려 한다. 그리고 최근의 운동 속에서 그것들의 작동을 살펴보려 한다.

(고병권,『화폐, 마법의 사중주』, 책날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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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 고병권이 쓴 '민주주의'
    from 그린비출판사 2011-05-25 14:50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무엇인가’를 묻는 책들이 태풍처럼 출판계를 흔들어놓고 있다.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바람이 채 가라앉기 전에, 뒤를 이어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 바람이 불고 있다. 이제 여기에 다시 고병권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바람을 추가해야 한다. 그러나 고병권이 몰고 올 바람은 일시적으로 불고 지나갈 바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해서 되돌아올 바람이다. 그것은 한국의 정치·사상 지형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파열을 내는 이...
 
 
 

"어디에도 없는 '권력', 어디에서나 작동하는 '권력'" 

<권력란 무엇인가>의 강사 이수영 선생님의 인터뷰입니다. 본 인터뷰는 도서출판 그린비에서 제공합니다.  

어떤 활동, 어떤 공부를 하고 계시는지 말씀해 주세요.

원래는 국문학 전공이다. 자기 삶의 '구원'이라는 문제와 늘 맞닥뜨리는 것 같다. 나도 그것과 맞닥뜨렸다. 그런 중에 국문학을 평생 한다는 것이 내 삶의 구원과 관계가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고, 그래서 박사논문을 끝으로 문학연구를 접었다. 그런 점에서 철학 공부는 내 삶을 바꾸는, 내 삶의 구원이 된다고 느끼는 철학자들을 공부하고 있다. 그 중에서 니체는 엄청나게 여파가 컸다. 내 삶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바꿀 수 있게 해줬고, 힘도 생기게 했다. 니체는 나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강의를 해봐도 다른 철학자들보다도 감응이 큰 것 같더라.


'권력'이라는 개념을 통해 어떤 이야기가 하고 싶으셨나요

기존의 권력은 실체화되는 것이다. 사물처럼 소유할 수 있는 것. '저 사람이 권력을 갖고 있다.' ― 이게 기본적인 권력에 대한 상상력이고 개념 정의인데, 그렇게 되면 저 권력을 탈취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래서 저 국가를 접수할 수 있다는 것. 이런 거다. 그런데 실제로 국가를 접수해도 왜 삶은 이 모양이냐, 이런 깨달음이 있다. 사회주의는 국가권력을 접수했는데 왜 인민들의 삶은 파쇼적으로 흘렀는가, 그렇다면 권력이 실체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게 아닌가. 작동하고 있는 '동사'적인 것이다. 권력을 표상시킬 수가 없다는 말이다. 기존에 쇼펜하우어나 헤겔, 홉스는 '표상으로서의 권력'을 말했다. 그러니까 떠올릴 수 있고, 누군가와 나를 비교해 내가 더 우월하거나 저 사람이 더 우월하거나 하는 식으로 표상할 수 있는 거라고 권력을 생각하게 된다. 저 사람은 나보다 권력을 많이 갖고 있는 것 같고 이렇게 되면 '저 권력을 탈취해야겠다'는 식으로 흐르게 된다. 혹은 저렇게 권력을 갖고 싸우다 보면 삶의 고통이 끊임이 없다. 그래서 인생무상에 빠지게 된다. 권력에 대한 무상감에 빠져서 권력으로부터 벗어나야 돼, 하는 사고방식에 젖는 거다. 둘 다 권력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거다. 모든 사람들은 고립에 대한 공포, 가난에 대한 공포를 갖고 있는데 내 개인의 공포를 덜어주는 것은 작은 문제가 아니라 굉장히 근본적인 질문이다. 그런데 그걸 작은 문제로 치부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권력이라는 개념을 바꿔서 사유하는 것이 실제로 우리 삶에 굉장히 유용하고 근본적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작동하는 권력'이라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관점을 통해 어떤 대안을 만들 수 있을까요

다른 대안, 어려운 문제다. 푸코가 찾아갔던 길이 그런 길 같다. 작동하는 근대의 권력이 있을 때, 근대 권력이 도대체 어떤 인간을 만들어 내는가, 인간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내는가를 한마디로 말하면 푸코는 '자기포기'라고 한다. 모든 인간들이 자기를 포기하는 방식으로 삶을 살아간다는 거다. 기독교적 자기포기와도 비슷하죠. 극단적으로 자기를 포기해야만 신의 구원을 받는 거니까. 자기포기 형태인데 자기를 포기하지 않는 채, 자기를 계속해서 확충해 가는 방법이 있다는 거다. 권력을 접수해야 하는 문제라면 접수하면 끝이겠지만, 권력이 접수 대상이 아니고 작동하는 대상이라면 권력 없는 곳에서는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세상은 권력과 함께 있는 것이니까. 그러면 권력의 작동방식을 바꾸는 게 우리의 대안이다. 푸코가 그런 길을 걸어왔던 것 같고, 니체도 그렇고 들뢰즈도 그렇다. 그 작동방식을 바꾸려면 근대적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야 하는 것이고, 그래서 근대적 작동의 궁극적인 메커니즘은 자기포기라는 것이다. 인간들이 끊임없이 알아 가고 취조하고 하는 이 모든 과정이 자기를 포기하는 형태다. 국가에 자기를 의탁하는 형태들. 푸코는 자기를 확충해 가는, 그래서 한 번도 되어 본 적이 없는 존재로 가는 과정, 끊임없이 자기를 확충해 가는 과정, 그런 것을 꿈꿨던 것 같다. 그것의 모델을 헬레니즘 시대에서 본 것 같고. 당장 만들어 갈 수 없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런 질문은 늘 그렇다는 거다. 그런데 지금부터 끊임없이 만들어 가야 한다. 그게 미래에는 무엇을 낳을지는 알 수 없는데 끊임없이 만들어 갈 필요는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철학이나 인문학을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 공부하는 게 좋을까요

세상에는 여러 가지 책들이 있을 텐데, 예컨대 니체의 『반시대적 고찰』은 해설서가 필요 없는 책이다. 쉽게 잘 써서 그냥 읽으면 된다. 그런데 어떤 책은 해설서가 없으면 안 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해설서가 없으면 못 읽는다. 정말 잘된 해설서를 모두가 찾지 않나. 그런 측면에서 <개념어 총서> 같은 책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철학공부를 하고 있는데, 정말 모르겠는 책이나 철학이 있다. 그런 경우는 잘된 해설서를 원한다. 그런 점에서 <개념어 총서>가 유익한 거다. 정말 잘 정리돼 있는 것 몇 권 읽고 그 철학자에게 접근하면 훨씬 쉽다. 푸코를 직접 읽으려면 얼마나 어렵나. 들뢰즈를 직접 읽으려고 해도 그렇고. 시중에는 정말 좋은 해설서가 잘 안 나온다. 서양에 있는 것을 대충 해놓은 것들도 많고. 그런데 우리가 우리 방식으로 소화를 해서 정리를 잘 해놓은 게 있으면 그것처럼 좋은 게 없는 것 같다. 철학자가 할 몫이 있는 것 같고. 그것을 해설을 잘 할 사람의 몫이 따로 있는 거고. 


* 이수영 선생님 소개 


1970년 전남 여수에서 출생했고 서울대에서 국문학 박사까지 마쳤다. 출생부터 박사까지 짧은 한 문장인 까닭은 그 시절의 기억이 별로 없고, 유쾌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오래 공부했다. 거기서 운명적인 친구들을 만났으며, 삶의 비전도 함께 찾았다. 그곳에서 나는 비로소 나만의 걸음을 조금씩 뗄 수 있게 되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 <수유너머 길>이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앞으로 어떤 길을 가게 될지 생각할 때마다 떨리면서도 두근거린다. 그래도 더욱 삶에 밀착된 공부를 해야겠다는 느낌만은 확실하다. 푸코의 이론으로 한국근대문학을 분석한 『섹슈얼리티와 광기』(2008), 니체의 철학을 내 입장에서 정리한 『미래를 창조하는 나—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2009)는 일종의 준비운동이었던 셈이다. 준비운동도 마쳤으니 이제 다른 걸음걸이로 길을 나서야 하리라.
 
저자의 글

연구자로서 평생 살아가야 하는 만큼 글쓰기가 중요한 업이겠지만, 글을 쓴다는 핑계로 다른 모든 일을 방기해서는 안 된다. 글쓰기는 늘 현실과 만나는 장소에서, 그리고 그 현실을 돌파할 수 있는 지혜를 잉태하는 장소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섹슈얼리티와 광기』머리말 중에서)


권력에 대한 찬탈이 아니라 권력의 작동방식을 바꾸는 것, 이것이 우리의 과제다. 그리고 이 과제를 위해서라도 권력의 작동양상을 알아야 한다.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서의 권력을 안다는 것, 그것은 권력없는 삶이 아니라 권력의 배치와 작동방식을 바꾸는 삶에 대한 꿈이다. 그럴 때 우리는 너무 이르게 절망하지 않아도 되며 냉소의 비웃음을 간직하지 않아도 된다.
(권력이란 무엇인가』,「맺음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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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空은 없다. ~이 공空할 뿐… 

<공空이란 무엇인가>의 강사 김영진 선생님의 인터뷰입니다. 본 인터뷰는 도서출판 그린비에서 제공합니다. 




<공空이란 무엇인가> 저자 김영진

1970년 경남 삼천포에서 태어났다.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중국 근대사상가인 장타이옌(章太炎)의 불교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HK연구교수로 근무하고 있고, 『불교평론』 편집 위원이며 〈연구공간 수유+너머〉 회원이다. 당나라 때 나온 경전 목록인 『대당내전록』(大唐內典錄)을 함께 번역했고, 『중국 근대사상과 불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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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의 한 장면
『서유기』의 등장 인물들의 이름엔 다 뜻이 있다. 가령 오공은 ‘공空을 깨닫다’는 말이다. 그럼 '공'은 또 무엇인가? 세상에 '공'은 없다. 단지 '~이 공 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어떤 공부를 해오셨는지 말씀해 주세요.

1970 년 경남 삼천포에서 태어났다. 내 고향은 꽤 유명한 곳이다. 호수 같은 바다가 좋다. 1990년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 입학하면서 불교 공부를 시작했고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이곳에서 공부했다. 중국의 4,5세기 불교에 대해 석사 논문을 썼다. 이 시기 중국 불교인들은 공(空)이나 반야(般若) 같은 개념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박사과정 입학하면서 중국근대불교로 연구 방향을 잡았다. 고대불교에 비해 근대불교가 훨씬 박진감 있고, 더구나 현실과 만나기 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근대사상가인 장타이옌(章太炎)의 불교사상에 관한 박사논문을 썼다. 그에게는 전통학술이 있었고, 혁명이 있었다. 더구나 그 중심에 불교가 있었다.
여태껏 주로 중국 근대불교에 대해 공부하다가 작년부터 한국 근대불교에 대해서 다루기 시작했다. 어디 가서 말할 수준은 아니지만 조금씩 전진해 볼 작정이다.


불교에 다양한 개념들이 있을 텐데 그중에서 특별히 ‘공’ 개념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일반들에게 가장 익숙한 불교 개념은 아마 연기(緣起), 인연(因緣), 인과응보(因果應報), 윤회(輪廻), 무상(無常), 열반(涅槃),(空) 등일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난해한 개념은 단연 공이다. 다른 개념들은 대충 넘겨짚겠지만 공은 도저히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이런 개념 때문에 불교가 철학적이고 꽤 멋있어 보이지만 턱없이 난해하여 다가서지 못한다. 책을 좀 읽은 사람은 공 개념에 대해 자신의 영역이나 입장에서 간접적으로 이해한다. 예를 들어 유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주희의 말을 빌려 공을 쉽게 절대적 허무 정도로 취급한다. 또 어떤 사람은 도(道)나 기(氣), 아니면 과학의 무엇으로 취급한다. 조금은 안타깝다. 이 책은 일반인들에게 공 개념을 좀더 친근하게 소개하고, 공에 대한 오해를 교정하고자 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공부하게 만드는 불교의 매력이 있다면요?

불 교는 엄청난 지역을 다녔고, 많은 사람과 문화를 만나면서 새로운 사유와 문화를 창조했다. 그것을 위해서 누군가 하념 없이 길을 걸었을 것이다. 어쩌면 불교는 길 위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불교의 이런 점이 좋다. 그렇다고 불교환자는 아니다.  
앞으 로도 계속 불교 공부를 하겠지만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아마도 절반은 여전한 호기심 때문이고, 절반은 어느 정도 관성 때문일 것이다. 요즘 책임감 같은 것도 조금 생겼다. 다소 상투적이지만 불교 연구자로서 불교학 발전을 위해서 뭔가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학부 다닐 때 ‘우리나라 불교학은 왜 이 모양이냐’ 투덜거렸는데 근데 이제는 그럴 수 없다. 이제 학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해야 한다. 아무튼 나이 좀 들어 공부가 흐지부지되는 사람은 아니고 싶다. 불교 공부 열심히 하고 책도 쓰고 번역도 계속 해볼 작정이다. 아는 형이 어지간하면 여든 까지 산다고 말하더라. 그때까지 뭐하겠나. 천천히 그렇지만 놓지 않고 공부해야 한다.  


불교는 종교적인 느낌보다는 철학이라는 느낌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나도 불교 공부를 하기 전에 불교는 철학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철학과 간다는 마음으로 불교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막상 시작하니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지금은 철학이라기보다는 종교라는 생각이 더 강하다. 물론 불교는 충분히 철학적이다. 다른 종교에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고통 극복’이라는 기치로 불교가 출발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철학이라고 섣불리 말하지 못하겠다. 나머지 불교의 이론 전개는 이 점을 둘러싸고 진행된 것 같다. 이 책에서 다루는 불교 개념인 공(空)의 경우도 얼른 보면 난해하기 짝이 없는 철학 개념이다. 그런데 그 개념을 조금만 들여다봐도 불교의 최초 깃발을 볼 수 있다.  

‘공’ 이외에 소개하고 싶은 다른 개념이 있나요?

공 이외에 소개하고 싶은 개념은 ‘열반’이다. 이 개념은 불교의 궁극적 목표라고 이야기된다. ‘고통의 완벽한 소멸.’ 어떤 경지인지 나도 궁금하다. 이 개념을 통해서 우리는 불교가 결국 무엇을 지향하고, 어떤 방법을 동원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불교가 제기하는 삶이나 가치를 좀더 밀착해서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하지만 나더러 하라면 난 못한다. 초기 경전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안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향후 계획과 어떤 연구를 하고 싶으신지 말씀해 주세요.

첫 째, 중국 근대사상사나 근대학술사 관련한 연구를 좀더 구체적으로 하고 싶다. 앞으로 한 10년은 이 분야에 대해 열심히 해야 하지 않을까. 학위논문 쓴 이후 묻어 두었던 장타이옌 공부도 다시 해볼까 한다. 둘째, 중국근대불교에 관련한 개인 연구 성과를 작게나마 정리하고 싶다. 『근대중국의 고승』이나 『중국근대불교연구』 같은 책을 집필해 볼 요량이다. 셋째, 『승조평전』을 쓰고 싶다. 석사과정 때부터 간직한 나의 꿈이다. 누군가 말하지 않았나. “꿈은 이루어진다.” 시간을 가지고 준비해서 꿈을 이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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