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없는 '권력', 어디에서나 작동하는 '권력'" 

<권력란 무엇인가>의 강사 이수영 선생님의 인터뷰입니다. 본 인터뷰는 도서출판 그린비에서 제공합니다.  

어떤 활동, 어떤 공부를 하고 계시는지 말씀해 주세요.

원래는 국문학 전공이다. 자기 삶의 '구원'이라는 문제와 늘 맞닥뜨리는 것 같다. 나도 그것과 맞닥뜨렸다. 그런 중에 국문학을 평생 한다는 것이 내 삶의 구원과 관계가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고, 그래서 박사논문을 끝으로 문학연구를 접었다. 그런 점에서 철학 공부는 내 삶을 바꾸는, 내 삶의 구원이 된다고 느끼는 철학자들을 공부하고 있다. 그 중에서 니체는 엄청나게 여파가 컸다. 내 삶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바꿀 수 있게 해줬고, 힘도 생기게 했다. 니체는 나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강의를 해봐도 다른 철학자들보다도 감응이 큰 것 같더라.


'권력'이라는 개념을 통해 어떤 이야기가 하고 싶으셨나요

기존의 권력은 실체화되는 것이다. 사물처럼 소유할 수 있는 것. '저 사람이 권력을 갖고 있다.' ― 이게 기본적인 권력에 대한 상상력이고 개념 정의인데, 그렇게 되면 저 권력을 탈취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래서 저 국가를 접수할 수 있다는 것. 이런 거다. 그런데 실제로 국가를 접수해도 왜 삶은 이 모양이냐, 이런 깨달음이 있다. 사회주의는 국가권력을 접수했는데 왜 인민들의 삶은 파쇼적으로 흘렀는가, 그렇다면 권력이 실체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게 아닌가. 작동하고 있는 '동사'적인 것이다. 권력을 표상시킬 수가 없다는 말이다. 기존에 쇼펜하우어나 헤겔, 홉스는 '표상으로서의 권력'을 말했다. 그러니까 떠올릴 수 있고, 누군가와 나를 비교해 내가 더 우월하거나 저 사람이 더 우월하거나 하는 식으로 표상할 수 있는 거라고 권력을 생각하게 된다. 저 사람은 나보다 권력을 많이 갖고 있는 것 같고 이렇게 되면 '저 권력을 탈취해야겠다'는 식으로 흐르게 된다. 혹은 저렇게 권력을 갖고 싸우다 보면 삶의 고통이 끊임이 없다. 그래서 인생무상에 빠지게 된다. 권력에 대한 무상감에 빠져서 권력으로부터 벗어나야 돼, 하는 사고방식에 젖는 거다. 둘 다 권력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거다. 모든 사람들은 고립에 대한 공포, 가난에 대한 공포를 갖고 있는데 내 개인의 공포를 덜어주는 것은 작은 문제가 아니라 굉장히 근본적인 질문이다. 그런데 그걸 작은 문제로 치부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권력이라는 개념을 바꿔서 사유하는 것이 실제로 우리 삶에 굉장히 유용하고 근본적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작동하는 권력'이라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관점을 통해 어떤 대안을 만들 수 있을까요

다른 대안, 어려운 문제다. 푸코가 찾아갔던 길이 그런 길 같다. 작동하는 근대의 권력이 있을 때, 근대 권력이 도대체 어떤 인간을 만들어 내는가, 인간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내는가를 한마디로 말하면 푸코는 '자기포기'라고 한다. 모든 인간들이 자기를 포기하는 방식으로 삶을 살아간다는 거다. 기독교적 자기포기와도 비슷하죠. 극단적으로 자기를 포기해야만 신의 구원을 받는 거니까. 자기포기 형태인데 자기를 포기하지 않는 채, 자기를 계속해서 확충해 가는 방법이 있다는 거다. 권력을 접수해야 하는 문제라면 접수하면 끝이겠지만, 권력이 접수 대상이 아니고 작동하는 대상이라면 권력 없는 곳에서는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세상은 권력과 함께 있는 것이니까. 그러면 권력의 작동방식을 바꾸는 게 우리의 대안이다. 푸코가 그런 길을 걸어왔던 것 같고, 니체도 그렇고 들뢰즈도 그렇다. 그 작동방식을 바꾸려면 근대적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야 하는 것이고, 그래서 근대적 작동의 궁극적인 메커니즘은 자기포기라는 것이다. 인간들이 끊임없이 알아 가고 취조하고 하는 이 모든 과정이 자기를 포기하는 형태다. 국가에 자기를 의탁하는 형태들. 푸코는 자기를 확충해 가는, 그래서 한 번도 되어 본 적이 없는 존재로 가는 과정, 끊임없이 자기를 확충해 가는 과정, 그런 것을 꿈꿨던 것 같다. 그것의 모델을 헬레니즘 시대에서 본 것 같고. 당장 만들어 갈 수 없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런 질문은 늘 그렇다는 거다. 그런데 지금부터 끊임없이 만들어 가야 한다. 그게 미래에는 무엇을 낳을지는 알 수 없는데 끊임없이 만들어 갈 필요는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철학이나 인문학을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 공부하는 게 좋을까요

세상에는 여러 가지 책들이 있을 텐데, 예컨대 니체의 『반시대적 고찰』은 해설서가 필요 없는 책이다. 쉽게 잘 써서 그냥 읽으면 된다. 그런데 어떤 책은 해설서가 없으면 안 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해설서가 없으면 못 읽는다. 정말 잘된 해설서를 모두가 찾지 않나. 그런 측면에서 <개념어 총서> 같은 책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철학공부를 하고 있는데, 정말 모르겠는 책이나 철학이 있다. 그런 경우는 잘된 해설서를 원한다. 그런 점에서 <개념어 총서>가 유익한 거다. 정말 잘 정리돼 있는 것 몇 권 읽고 그 철학자에게 접근하면 훨씬 쉽다. 푸코를 직접 읽으려면 얼마나 어렵나. 들뢰즈를 직접 읽으려고 해도 그렇고. 시중에는 정말 좋은 해설서가 잘 안 나온다. 서양에 있는 것을 대충 해놓은 것들도 많고. 그런데 우리가 우리 방식으로 소화를 해서 정리를 잘 해놓은 게 있으면 그것처럼 좋은 게 없는 것 같다. 철학자가 할 몫이 있는 것 같고. 그것을 해설을 잘 할 사람의 몫이 따로 있는 거고. 


* 이수영 선생님 소개 


1970년 전남 여수에서 출생했고 서울대에서 국문학 박사까지 마쳤다. 출생부터 박사까지 짧은 한 문장인 까닭은 그 시절의 기억이 별로 없고, 유쾌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오래 공부했다. 거기서 운명적인 친구들을 만났으며, 삶의 비전도 함께 찾았다. 그곳에서 나는 비로소 나만의 걸음을 조금씩 뗄 수 있게 되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 <수유너머 길>이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앞으로 어떤 길을 가게 될지 생각할 때마다 떨리면서도 두근거린다. 그래도 더욱 삶에 밀착된 공부를 해야겠다는 느낌만은 확실하다. 푸코의 이론으로 한국근대문학을 분석한 『섹슈얼리티와 광기』(2008), 니체의 철학을 내 입장에서 정리한 『미래를 창조하는 나—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2009)는 일종의 준비운동이었던 셈이다. 준비운동도 마쳤으니 이제 다른 걸음걸이로 길을 나서야 하리라.
 
저자의 글

연구자로서 평생 살아가야 하는 만큼 글쓰기가 중요한 업이겠지만, 글을 쓴다는 핑계로 다른 모든 일을 방기해서는 안 된다. 글쓰기는 늘 현실과 만나는 장소에서, 그리고 그 현실을 돌파할 수 있는 지혜를 잉태하는 장소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섹슈얼리티와 광기』머리말 중에서)


권력에 대한 찬탈이 아니라 권력의 작동방식을 바꾸는 것, 이것이 우리의 과제다. 그리고 이 과제를 위해서라도 권력의 작동양상을 알아야 한다.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서의 권력을 안다는 것, 그것은 권력없는 삶이 아니라 권력의 배치와 작동방식을 바꾸는 삶에 대한 꿈이다. 그럴 때 우리는 너무 이르게 절망하지 않아도 되며 냉소의 비웃음을 간직하지 않아도 된다.
(권력이란 무엇인가』,「맺음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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