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사랑'의 개념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 사랑이 아무리 막장이라 해도"

강좌를 들으면 어떤 식으로 후기를 작성하는 것이 좋을까 온종일 고민했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한 줄 요약으로 '썰'을 풀면 좋겠다는 생각을 불현듯 하게 되었다. 앞으로도 강좌가 있는 날에는 그날그날의 내용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거나, 아니면 마음을 울리거나, 그도 아니면 최소한 뒤통수를 후려치는 듯한 감동을 줄 수 있는 한 줄 말로 뒷이야기를 푸는 방법을 이어가려고 한다. 

오늘 강좌도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렵게 느껴지지만, 간단하게 생각하면 위에 적은 딱 한 줄도 모든 상황을 정리할 수 있을 거다. 위의 문장과 관련해서 생각해보자. 우리는 흔히 사랑이라고 하면 즉각 '플라토닉 러브'라고 하는 말도 안 되는 관념적인 사랑의 개념을 상정한다. 이건 뭐 너무도 비현실적이어서 뭐라고 딱히 설명하기도 힘들지만, 굳이 예를 들자면 때묻지 않은 선남선녀가 만나 손만 잡고도 얼굴을 붉히는, 19금적인 요소가 완전히 배제된 청소년 드라마의 지고지순한 사랑 정도가 되시겠다.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현실에서 우리가 하고 있는 사랑은 완벽하지 못하고, 그런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 완벽한 사랑이 따로 있다는 이원적인 사고, 혹은 재현적인 사고 방식이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다 플라토닉 러브를 주창한 플라톤 선생님의 영향이 되시겠다. 이 양반은 이데아라는 완벽한 세계를 있다고 하면서, 우리가 사는 현실은 기껏해야 그 세계를 모방한 하급한 것이라 했으니 더이상 말해 뭐하겠는가?

그렇다면 이런 재현적 사고방식을 뛰어넘는 비재현적인 삶의 방식은 어떤 걸까? 불륜, 패륜, 막장을 연출하며 지지고 볶아도 현실의 진흙탕에서 뒹굴며 살아숨쉬는 인간으로서 사랑을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사랑이라는 개념을 생생하게 현실에서 실천하고 있는 것이고, 또 그 행위에서 사랑의 개념을 스스로 만드는 것. 바로 이게 비재현적인 삶의 방식이라는 거다. 

혹시 사랑이라는 개념으로 재현을 설명하다보니 강좌보다 후기가 더 어려워진 건 아닐까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하네.(--;;) 그래도 오늘 후기는 시간도 많이 늦고, 글도 길어졌으니 여기서 접어야겠다. 다른 분들께서 첫 강좌에 대한 설렘이나 각오, 수업의 분위기 등을 생생하고 박진감 넘치게 기술하실 테니 그때 또 기회가 되면 슬쩍 끼어들어서 내용으로 토론하면 되겠지요. 후기 첫 글(1빠입니다^^)이라는 뿌듯함으로 만족하면서, 이만 물러갑니다. 

* 뱀다리 하나-'재현'의 반대개념으로 '비재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신 것 같은데 수업내용과 연관해서 생각해보면 초재현적이라는 개념은 어떨지 강사 선생님을 비롯해 여러분들께 묻고 싶습니다.([장자]의 <소요유>에 나오는 곤과 붕의 질적 변환을 생각함다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물론 재현이라는 게 들뢰즈나 다른 현대철학자들이 사용한 개념이고, 반대개념으로 비재현을 사용한 것 같은데, 내가 정말 재현적 삶의 방식을 뛰어넘으려 한다면 이런 문제제기를 할 수 있겠죠?

* 뱀다리 둘-이번 강좌뿐 아니라 앞으로 진행될 여러 강좌의 내용을 훑어보니 들뢰즈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지더군요. 들뢰즈에 대해선 아는 게 전혀 없어서 채운 선생님의 책 얼른 읽고,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을 구해서 차근차근 읽어봐야겠네요. 들뢰즈 엄청 어렵다던데 혹시 읽다가 미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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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0729 2010-01-16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자랑스러운 첫빠 후기 잘 보았습니다. 저랑 느끼신게 많이 비슷하시네요. 물론 다르겠지만요ㅎㅎ 후기는 박진감넘치고 재미있게 쓰는게 제일인가요?ㅠ 저도 그럼 후기를 잘못썼군요ㅎㅎㅎ 그래도 강의내용이 박진감 넘치니 다른말이 뭐 필요있겠어요/ 저도 들뢰즈 공부를 '니체와 철학' 으로 시작했다가 피를 봤더랬죠.. ㄷㄷㄷ 정말 '토'나오게 어렵더라구요ㅎㅎㅎ

pattering 2010-01-18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재현이라...오오...그렇네요. 저는 마음에 쏙 와닿네요. ^^

알라딘공부방지기 2010-01-19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연한 이야기지만) 말씀해주신 플라토닉한 러브를 대중매체가 어떻게 확대재생산 하고 있는지, 그렇게 판매되는 플라토닉한 러브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 중에 내면화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겠어요.

아무래도 수유너머에서 공부하시는 선생님이라 말씀하신대로 들뢰즈 분위기가 나는 듯 합니다. 별로 아는 게 없는 알라딘 공부방 지기도 열공! ㅜ_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