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찬란한 나날
조선희 지음 / 실천문학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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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한참 읽다 문득, 2002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었던 정미경의 《장밋빛 인생》이 떠올랐다. 더 정확히 표현을 하자면, 그 책의 뒤 추천사가 실린 부분에 있던 심사 위원의 심사평이 떠올랐다. 이청준의 평으로 기억을 하고 있었는데 확인해보니 김화영이다. 김화영의 심사평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이 작가의 글 솜씨는 노련하다 못해 눈부시다. 그래서 때로는 이 화려함의 광도를 다소 낮추었으면 싶을 정도다." 

(아니다, 내 기억속의 어딘가에서는 분명, 이청준 선생님이 정미경의 소설에 대해서 지나치게 계산을 해 너무 꽉 짜여 있다는 것이 오히려 단점이라는 말씀을 한 일이 있다고 말한다. 도대체 어느 소설에 대해서 언제 말씀하신거지? 이상 문학상 수상작에 대해서 하신 말씀인가 하고 찾아보니 그것도 아니다. 아 환장해. 이청준 선생님이면 동인상 심사위원이니까 그쪽을 뒤지나... 조선희 리뷰쓰다 말고 웬 정미경 뒤지기냐고. ㅠ.ㅠ 덴당. 일단 다시 조선희로 돌아가자. 자자자자. 

김화영의 정미경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2006년 출간 단편집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에 또 한번 실린다. 정미경의 글에 대한 김화영 선생님의 평가에는 대체로 나 역시도 동의하는 편이지만, 나는 사실 그런 느낌을 정미경의 글에서 보다 조선희의 글에서 더 많이 느낀다. 

조선희, 라는 이름은 일반독자(?)에게는 약간 낯선이름이다. 뜬금없지만, 아주아주 옛날에 이은혜의 만화책 <댄싱러버>에서 주인공 서지우를 두고 연예인들이 "스타들의 스타" 라는 표현을 하는데 그게 조선희에게 가면 딱 맞춤하다는 느낌이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데, 글밥 좀 먹는 다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스타같은 작가. 물론 김훈이나 박완서나 박경리도 작가들의 스타같은 작가이지만, 그들은 일반 독자에게도 충분히 유명한 작가이니까 조선희와는 느낌이 좀 다르고.  

이 책은 소설책으로는 조선희의 두번째 작품이다. 2002년 내가 처음 알게된 조선희는, 소설 그 자체보다 소설을 쓸 것이라는 것으로 더 유명한 사람이었다. 직장에서 한참 문학 관련 신문기사를 스크랩하던 무렵의 한 시기에 조선희의 이름은 거의 모든 신문에서 며칠동안이나 다루어졌었다. 씨네 21의 편집장이었던, 한겨레 신문의 기자였던 그녀가 소설을 쓴다는 것으로, 그녀는 이미 소설 그 자체보다 더 유명한 작가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나온 첫 소설 <열정과 불안>은 오, 꽤나 괜찮았지만, 흠. 

그야말로 "이 작가의 글 솜씨는 노련하다 못해 눈부시다. 그래서 때로는 이 화려함의 광도를 다소 낮추었으면 싶을 정도다." 라고 말하게 된다. 단어하나, 쉼표하나까지도 모든것이 완벽하게 계산되어 딱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있다. 단어와 쉼표가 이럴진대, 인물과 구성과 사건은 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다시, 작가의 약력을 보게 되는 것이다. 신문기자 시절의 김훈이 소설가 김훈을 만들었듯, 조선희에게로 넘어오면 역시나 언론인 조선희가 소설가 조선희를 만들었다 싶다. 문체는 단정하고 빼어나고, 단순하고 평범할 수도 있었던 소재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솜씨도 훌륭했으며, 기 승 전 결에 대한 부분도 잘 짜여져 흘러가는데, 그래서 좀 답답할 정도다. 

우와, 이건 너무 잘 썼잖아, 싶은. 그 압도. 이건 흠잡을 데가 하나도 없잖아. 흠잡을 데가 하나도 없다는 게 흠이라니 이건 너무하다.

어떤 부분 정미경과 닮은데가 있다. 정미경이 좀 더 날카롭고 개인적인 느낌이라는 것이 차이랄까. 작품의 기저에 깔고 있는 냉소나 차가운 관찰자라는 느낌도 닮았다.  

   
 

자신의 현실을 떠나 있는 것은 모두 판타지다. 우주전쟁뿐 아니다. 비참이나 남루도 그렇다. 
 

누구나 자기 동네에 갇혀 살기는 마찬가지다. 울타리 바깥은 그저 책이나 신문이라는 종이 위에 건설된 판타지일 뿐이다.

 
 

<서울의 지붕 밑> p.97, 116

나는 이 말을, 니가 고생을 안해봐서 세상을 몰라,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알아야 니가 복받은 줄 알고 정신을 차리지. 라는 남편의 타박에 대꾸하는 말로 내질러 줬다. 내가 막말로 말이지, 그러는 니는 아느냐고, 그리고 니가 나에 관해 그렇게 잘 아느냐고 안 한게 다행이다. 당신이 아는 내가 나의 전부는 아니라는 말이지. 날 다 알고 있다는 그 오만은 어디서 튀어나오냐, 응?

   
  한국 사회가 좁아서 한두 사람 건너면 아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건 학연과 지연이 엮어내는 범주 안쪽에 살고 있는 사람들 얘기다. 징검돌 몇개로는 건너갈 수 없는 아득한 바다가 K와 정자 씨 사이에 가로 놓여 있었다.  
 

<서울의 지붕 밑> p.114

 

이러한 현실인식, 그것이 조선희다.  

왜 이 작가가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는지,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글 진짜 끝내주게 쓰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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