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 윤수가 소리쳤어요. 신부님, 살려주세요. 무서워요. 애국가를 불렀는데도 무서워요......"
공지영,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푸른숲, 2005, p. 293」

어이가 없었다. 정말이지, 어이가 없었다.

나는 얼핏, 소설을 읽다가 우는 일이 가능한가... 하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나를 울린 소설은, 최소한 내 기억에는 없다.

소설은 재미있는 것이고, 그 서사의 줄기에 푹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만드는 것이라고,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해 왔었는데, 그야말로 고작, 내가 그다지 괜찮은 소설가로 꼽지도 않았던 고작 공지영의 소설에, 어이 없게도 나는 울고 있었다. 소설의 막바지에 이르러, 별 특이할 것도 없는, "살려주세요, 무서워요."라는 그 구절에서, 나는 소설 읽기를 그치고 울었다. 정확히 말하면, 머릿속으로 소설 내용이 들어오지 않아 어찌된 일인가 하고 봤더니 내가 울고 있더라. 입술을 일그러뜨리고, 소리까지 내어가며. 바로 그 줄을 읽기 직전까지도 나는 울 염도 내지 않았었다. 코끝이 찡해 온다든지, 코 허리가 시큰해 온다든지, 눈이 맵싸해 진다든지 하는, 눈물과 울음의 전조같은 것도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갑자기. 그 한줄에 뜻밖에도 울음이 터졌다. 그냥 울음이 아니라, 슬퍼 죽겠는 통곡이. 끝내는 몇장 남지않은 뒷부분을 읽는 것을 포기하고 책을 내려놓고 한참을 울다가, 그리고 책을 마저 읽었다.

잘... 모르겠다.

여전히 나는 사형제도를 유지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도무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저 사람을 어떤 명목으로든 내가 낸 세금으로 밥을 먹여가며 살려 두어야 한다는 점을, 그가, 나에게는 아무런 해악을 끼치지 않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힘들여 벌어들인 돈의 단 1전의 몇만분의 일이라도 그의 밥술에 포함된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아니, 이건 여전히 과거형이 아니다. 그냥, 참을 수 없다.

아직까지도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들 중의 하나가, 2004년 7월, 이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유영철의 눈빛이다.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코 위까지 마스크를 하고 있는 상태로 카메라 렌즈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찍은 그의 사진, 아직까지도. 나는 그 눈빛이 소름끼치고 무섭다. 진심으로. 그냥, 가끔은 악몽을 꿀정도로. 그다지 해상도가 높지도 않은, 인터넷 기사 속의 작은 사진 한장에도. 나는 그냥 무섭다. 이건 분노나 증오가 아닌 그냥 순수한 공포의 감정이다. 그의 사형은 당연한 것이고, 오히려 너무 가볍지 않느냐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던 나인데.

글쎄. 공지영이 그려낸 사형수 정윤수는 너무 소프트 했지, 사실. 게다가 억울한 사형수 이기도 했고. 지나치게 매력적인데다 은근히 지적이기까지해서 그래 소설의 남자주인공 감이로구나. 했었지만.

그래도 맙소사. 내가 울 줄이야. 소설을 읽다가, 그 소설의 내용 때문에 울게 되는 사태가 올 줄이야. 이렇게 울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가 소설을 읽다가 운 적이, 적어도 내 기억하는 한에서는 없다는 걸.

소설의 여주인공은 끊임없이 상투적인 것이 싫어요, 싫어요, 라고 이야기 했지만. 이 소설은 공지영 식의 상투적인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고, 적당히 통속적인 면도 있고 그리고 몹시, 재미있게 읽힌다. 잠들기 전 잠시 읽으려고 잡았던 책인데, 끝내 나를 울린 것으로도 모자라서 일어나 컴퓨터를 켜게 만들기 까지 했으니. 브라보.

죄를 짓는 다는 것은 뭘까. 내가 죄를 짓지 않고 살았다고 감히 말 할 수 있을까. 아니. 나는 기독교의 원죄에는 동의하지 않고, 모니카 수녀의 말대로 위선적일 뿐인 사람이라고 해도, 선이 뭔지는 알고 그 선을 진심은 아니라도 행하려고 최소한 생각까지는 해 본 적이 있다(늘 그랬다는 거짓말은 차마 못하겠다.)는 점에서, 그래. 나는 죄를 짓지 않고, 적어도 교도소에 들어갈만한 죄를 짓지는 않고 살아온 것 같다. 그 증거로, 나는, 전과가 없는 걸.

하지만. 그건. 정말로 내가 좋은 사람이어서일까? 교도소에 들어가 있고, 죽은 영혼조차 목에 검은 자국이 생긴 그 사람들보다 나의 영혼에는 더 많은 선의 요소가 들어가 있어서 그랬던 걸까? 글쎄. 그냥 나는, 좀 더 안전한 곳에 태어났고, 좀 더 운이 좋은 길을 걸어왔고, 살다보니 죄를 지을만한 짓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일 뿐인지도 모르잖아?

그럼. 나는. 사형수들의 밥수저에 내가 낸 세금의 몇십만분의 일이라도 포함되는 게 싫어요,라고 말을 할 수 있나... 사진 한장의 눈빛을 공포로 기억할 자격이 있을까. 그의 눈빛이 나의 공포로 기억되기까지, 나는 어쩌면 그의 눈빛이 그렇게 변화되도록 만드는데 몇십만분의 일이라도 기여했던 것은 아닐까.

하릴없이. 울었다.
내가. 울다니. 고작. 공지영에
공지영의 랭크를 단번에 몇십 단계위로 끌어올린 책.
적어도 나에게는.
브라보 공지영. 당신이 이겼어. 나는 이제 당신을 그닥 좋아하진 않아요, 라는 말은 못해. 당신의 소설이 그닥 괜찮진 않지, 언어 감각은 있어도, 라는 시건방진 소리 따위도 하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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