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도둑 가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6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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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렇게 된 거였다. 명절 연휴의 첫 날, 무료하게 TV 채널을 돌리다 배우 염혜란이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소개하는 장면을 보게 된 거다. 김고은과 공유가 나온 드라마 도깨비에서 김고은의 악독한 이모 역할로 익숙했던 염혜란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배우 릴리 프랭키의 연기에 대한 칭찬을 하고 있었다. 릴리 프랭키. . 알아, , 이 사람. 나에게는 일본의 배우이기 전에 에쿠니 가오리의 것과 같은 동명 소설 도쿄타워의 작가로 먼저 익숙했다. 에쿠니 가오리의 책을 주문하려다 실수로 릴리 프랭키의 책을 주문했고, 책을 받고서도 으레 저자 이름을 확인할 생각도 없이 펼쳐 읽다가 엥? 에쿠니 가오리 작풍이 바뀌셨나 했다가 처음 알게 된 작가. 실수였는데 뜻밖에 대박이었던 책으로 기억하고 있다. 에쿠니 가오리의 동명 소설보다 훨씬 재미있게 읽었다. 내가 소설의 저자로 상상한 릴리 프랭키는 뭐랄까, 약간 깍두기스러운 단순하지만 단단하고도 우직한 남자 였는데, 어라, 저 헐랭해 보이는 남자가 릴리 프랭키라고. 그래서 보게 되었다, 이 영화.

 

작년, 아니 재작년. 2019년에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칸 영화제의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고 난리가 났었다. 그 관련 기사에 늘 언급되던 이름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고, 어느 가족이라는 영화였다. 이 영화는 2018년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 수상작품이다. , 그렇군. 일본에서 우리보다 먼저 황금종려상을 받았네? 했다. 그리고 얼마 뒤, 2020년 초,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다. 감독상, 각본상에 국제영화상까지 4관왕을 차지했다. 같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은 아카데미 무관인데 말이다. (외국어 영화상 최종 노미네이트까진 되었다) 이 촌스럽기 짝이없는 국수주의자는 은밀히 웃었다. 그리고 잊었다. 잊고 있었는데 우연히 알라딘에서 보게 된 거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소설 좀도둑 가족. 난 영상보다는 활자를 좋아한다, 이 유튜브 시대에 덜떨어지게도 말이다. 영화로 유명한 이야기임을 알면서도 책으로 먼저 읽었다. 활자화 된 어느 가족은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았다. 굳이 영화로 봐야만 하나 싶었으니까.

 

그러니까 다시. 그렇게 되었던 거였다. 릴리 프랭키 라는 이름이 아니었다면 굳이 보지 않았을 이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라는 매우 서술적인 제목의 이 영화. 큰 기대 없이 무료한 설날 연휴를 보내는 중간에 끼어든 덤덤한 이벤트로 보기로 한 거다.

 

도쿄의 고급 맨션에 거주하는, 성공한 건축가 노노미야 료타에겐 아름다운 아내와 여섯 살 난 아들 케이타가 있다. 료타의 욕심만큼 출중한 능력을 지닌 아들은 아닐지언정, 케이타는 아버지의 기대 수준을 맞추려 최선을 다하는 아들이다.

처음엔 노노미야 료타 역의 배우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한국 배우 정우성과 꽤나 닮아보여서 신기해 하며 봤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더라, 아예 이 두 배우 연관 검색어가 있더라니까. 진짜 닮긴 많이 닮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자꾸만 케이타가 눈에 밟혔다. 어떤 감정은 자신이 그 상황이 되었을 때에 비로소 명확하게 읽히기도 한다. 엄마인 나는 애쓰는 케이타가 몹시 아팠다.

 

6년을 친아들인줄 알고 키웠는데 어느날 갑자기 애가 바뀌었다는 연락을 받는다. 병원에서는 아주 단순하게도 이런 경우 100% 교환을 선택합니다.” 라고 말한다. 교환이라니. 이게 무슨 오배송 된 택배도 아니고 말이다. 처음에 노노미야 료타는 당연하다는 듯 교환을 선택한다. 6년간 키워온 아들 케이타를 버리는데 별 고민이 없어 보인다. 바뀐걸 아는 순간에 네 아들을 돌려줄 테니 내 아들을 돌려다오, 하는 건 아닐지언정 바뀐 아들을 키우는 저쪽 부부와 교류를 하는 일련의 과정이 모두 친아들을 돌려받기 위한, 말하자면 친아들의 충격을 좀 덜기 위한 과정으로 보였을 뿐 6년간 키워온 케이타에 대한 아쉬움이나 안타까움은 별로 없어보인다. 그에게 아들은 자신의 삶의 업적이나 마찬가지이니까. 어쩌면 병원에서 말한 교환이 료타에게는 딱 맞는 표현이었을지 모르겠다.

 

몇 달의 교류를 거쳐 양가는 료타의 의사대로 아이를 교환하기로 하고 각자의 친아들을 각자의 집에서 돌보기 시작한다. 케이타의 부재가 비로소 료타도 알지 못했던 케이타에 대한 애정을 깨우기 시작하는데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낳은 정과 기른 정의 대립에서 감독이자 작가인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매번 키운 정에 손을 들어준다.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가에 대한 질문은 감독 작품의 순서상으로는 뒤쪽이지만 내가 접하기로는 먼저인 좀도둑 가족에서 명확하게 말한다. 시바타 가족은 가짜 할머니, 가짜 부부, 가짜 손녀 가짜 아들로 이루어진 가짜 가족이지만 서로를 돌보고 사랑하는 것에서만은 오히려 가짜가 진짜 가족이라고.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도 결국, 료타는 그렇게 케이타의아버지가 된다.” 로 결말을 짓는다. 아이가 바뀐 것을 알기 전, 케이타에게 아버지 료타는 늘 잠만 자는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조차 사랑하고 관찰하며 사진을 찍어주던 케이타, 료타가 아버지가 되기 전에 이미 케이타는 아들이 되어 있었고 낳았으니 아버지가 되는 것으로 알고 있던 료타를 깨닫게 한다. 이제 케이타의 아버지가 된 료타는 릴리 프랭키가 열연한 사이키 유다이 씨에게 배운대로 아버지 노릇을 잘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행위로서의 아버지 노릇이 아니라 감정적인 아버지 노릇이다.

 

부모 역할이란 교과서가 하나밖에 없는 과목의 공부와도 같다. 누구나 부모 노릇은 자신의 부모에게서 배우게 된다. 자신의 부모가 자신을 키운 방법이 아무리 싫었다고 한들, 다른 부모노릇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한국 속담대로 미워하며 닮는다는 식으로 미워했던 그 부모 노릇을 하게 되는 것이다. 료타 역시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을 양육한대로 케이타를 양육했고, 아들이 바뀐 것을 알지 못했다면 아버지가 될 기회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케이타를 사랑한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고, 사랑한다는 것을 모르면서도 사랑한다고 믿고 살았을 것이다. 일본의 배우 기타노 다케시의 말처럼 가족이란 누가 보지 않으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믿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혈연이니까 가족이라고 믿으며. 사랑하지 않으면서 혈연이니까 가족인 걸까. 혈연이 없더라도 사랑하고 아끼면 가족인 걸까.

 

책으론 그저 그랬는데,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가 이렇게 괜찮다면, 어느 가족도 영화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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