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그대 - You Will Meet a Tall Dark Str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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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어플 중 애용하는 것 중 하나가 오늘의 별점Daily Horoscope이다. 매일 자정이 넘으면 업데이트된다. 오늘 별자리 점괘는 이렇다. There is now a situation in your world that could be comapred, in a way, to that magical horse. Something keeps changing. Just when you think you know what it is, it begins to look different.  

한 마디로 말하면, 모든 게 내 마음에 달렸다는 말이다. 이런 추상적인 말이 어딨나. 게다가 이 어플을 사용하는 사람 중 나와 같은 별자리를 가진 사람을 정확히는 몰라도 꽤나 많을 것이다. 아무런 동요가 없을 때 누구나 할 수 있는 두리뭉실한 말은 수수께끼다. 하지만 마음이 흔들리는 날이라면 이런 추상적인 말에서 내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단서를 찾아낸다. 주술 혹은 마법이란 결국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자기 방어기제일 뿐이다.  

이 영화 속 주인공들은 현실 속 인물들처럼 각기 나름의 문제를 지녔다. 현실처럼 운도 따라주질 않는다. 안 좋은 일이 한꺼번에 오기도 한다. 사람은 솟아날 구멍을 찾는다. 늙어가는 걸 두려워하는 한 노부부가 이혼 한 후 딸보다도 어린 여자와 결혼하고, 남편을 잃은 충격을 엉터리 점쟁이를 찾아가 미래를 의지하고, 중년의 부부는 사랑은 희미해지고 증오만이 남아 서로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믿는다. 또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는 자신이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는지 불안해하다 결국 운명적 사랑을 최선의 선택이라고 확신한다. 각자 처한 혹은 선택한 상황에 대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사람은 비난할 대상이나 불길한 현 상황을 꺼내 줄 것 같은 대상이 있어야한다. 우디 앨런은 그 대상이 한마디로 '환상'이라고 말한다. 행복 레시피에 환상이란 참기름처럼 어디에나 조금씩 들어가야할 양념이란 말씀이시다. 즐겁게 끄덕일 수 있는 영화다. 환상이란 자기 방어기제가 각기 형태만 조금씩 다를 뿐. 내 참기름은 오늘의 별점이고.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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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eat Gatsby (Paperback, 미국판) - 『위대한 개츠비』원서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 Scribner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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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가 동시대 최고의 소설이라고 극찬한 책이라 몇 년 전부터 읽으려고 노력했다. 몇 장 못 넘기고 하품하다 덮곤했다.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책이었으나 첫 몇 페이지에 나가 떨어지고 마는 거 보면, 핑계지만 번역에 문제가 있을 거라고 믿었다. 이 책도 지난 달에 주문했지만 역시나 몇 페이지 읽다 내려놓았다. 연휴에 다시 한 번 도전했다. 이렇게 힘들게 만난 책인데 과연...헤밍웨이가 칭찬한 이유가 있다. 두 사람이 친구인데다 동시대 사람이여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헤밍웨이의 <해는 떠오른다>와 아주 비슷한 문체로 비슷한 느낌이다. 날씨나 기후로 사람의 심리묘사가 이루어지는 것, 젊음에 필수적으로 깃든 질주와 우수, 물질적 풍요 속에서 보이는 권태와 나른. 대체로 이런 느낌으로 청춘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 가지 궁금증은 동부와 서부 간에 존재하는 깊은 심연같은 지역 감정이다. 미국 땅이라봐야 달랑 뉴욕 밖에 가 보질 않아서 동부와 서부의 차이를 상상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동부가 부유한 엘리트들 서식지라면 서부는 투박하고 때로는 척박한 토양에서 서식할 수 있는 사람들이 묘사된다. 이들은 세련되진 않았지만 허식과는 거리가 멀다. 동부인은 가식이 역겨울 때 자유를 찾아 서부로 가고 서부인은 풍요 혹은 성공을 찾아 동부로 와서 허세를 부린다. 그러나 서부인은 동부인이 될 수 없고 동부인인 척하는 모습이 종종 묘사된다. 동부인 역시 서부인이 지닌 소박한 자유를 여행자처럼 잠시 누리는 모습만이 묘사된다.

제이 게츠비는 서부인의 상징이다. 군 입대 전 무일푼이었고 그와는 다른 계급에 속한 데이지란 여자를 사랑했다. 제대 후 게츠비는 밀주업자로 거대한 부를 축적했지만 갑작스런 부와 대대로 상속되는 부와는 질이 달랐다. 게츠비는 웨스트 에그에 노르망디 풍으로 저택을 꾸몄지만 소란스럽고 크기만했다. 주말마다 유명인들이 오는 파티가 열렸으나 허세처럼 보이도록 묘사된다. 데이지의 남편 탐은 "서부에서 폴로용 말을 데려올 정도로"로 묘사되는데 그 부의 크기를 짐작할 수 없다고 언급된다. 탐의 도덕적 양심은 소유한 부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야기를 이끄는 화자는, 스물두 살된 데이지의 육촌 닉이다. 닉은 서부에서 꽤 안정된 집안 출신이고 역시 보다 유망한 미래를 위해 주식을 공부하러 뉴욕에 왔지만 게츠비와 데이지 부부 사이에 얽힌 운명을 보고 혐오를 느낀다. 닉은 관찰자로 자신이 동부인이 될지 서부인이 될지 선택의 기로에 선다. 게츠비의 비참한 운명과 과거를 감추고 싶은 욕망을 보고 서부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데이지와 탐이 버린 양심이 닉 자신의 양심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닫는다.  

이 소설은 청춘 소설이지만 청춘이 뭔가. 가진 게 없어도 아쉬울 게 없는 시기가 아닌가. 고로 청년기를 지나야만 놓쳤던 게 뭔지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한다. 청춘은 생각보다는 행동하는 시기이므로 게츠비를 읽기에는 부적절한 시기다. 행동하는 게 두렵고 생각부터 하기 시작할 때 이 책 속에 숨겨진 뜻을 알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청춘과 짝궁인 우수는 여름날 살인적 더위가 사라지는 것처럼 바라지만 사라지면 곧 한없이 그리워하게 될 종류라는 걸, 시간이 흐르면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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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yonsun 2013-12-24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소설보다 흥미로운 리뷰네요. 잘 보고 갑니다.

넙치 2013-12-27 19:37   좋아요 0 | URL
저도 다시 읽어보니 흥미롭네요.ㅋ
 
맛살라 인디아 - 현직 외교관의 생생한 인도 보고서
김승호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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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인가 알라딘 서평단에서 받은 책인데 당시에 몇 페이지 읽다 책장을 덮었다. 어제 밤에 이 책 저 책 뒤적이다가 다시 책을 펼쳤다. 처음에는 따분한 산업적 측면을 서술해서 숫자와 통계를 마구 남발한다. 인도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한테 유용하겠군, 했는데 조금 더 읽으니 전문가가 읽기에는 정보의 깊이가 좀 얕다. 대신 여러 측면에서 접근 해서 누구라도 필요한 부분을 조금은 담고 있다. 인도를 여행하려는 사람한테 마저도 건질 팁이 있는 묘한 책이다. 인도에서 사고나 도난이 일어난 사례 에피소드도 있다.

내가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무굴 제국이 출현한 간략한 역사 개괄과 인도에 혼재하는 여러 종교와 짧막한 정치, 사회 배경이다. 이슬람 미술을 읽고 이슬람 제국사에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그동안 기독교 정치, 사회사에 갇혀 있었던 기분이라고나 할까.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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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술 위에 - Read My Li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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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자끄 오디아르 영화다. 사건이 일어날듯..하면서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연출법에 매번 매혹당한다. 형식적으로는 세 편 모두 범죄 스릴러지만 실은 심리 묘사가 탁월하다.  

1. 이 영화 역시 형식적으로는 범죄 스릴러다. 감옥에서 갓 나온 폴은 전에 진 빚 때문에 다시 한탕할 거 같은 분위기가 조성된다. 사무직 알바생으로 취직했지만 곧 밤에는 나이트 클럽 바텐더로 일한다. 한탕을 언제할지는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가 아니다. 그가 한탕하기 위해 거치는 과정들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잡아끈다. 바에서 칵테일을 만들려고 뒤 돌면 카메라는 폴의 등을 흔들리게 잡는다. 그냥 비추는 게 아니라 카메라 밖에서 매복 중인 암살자의 시선이 그가 뒤돌기만 기다리는 느낌을 전달한다. 매복 중인 암살자 따위는 없는데도 매번 폴이 등을 돌릴 때마다 긴장감이 돈다. 폴이 다시 정면으로 돌아 어지러운 클럽 안을 바라볼 때, 신체 비례와 전혀 맞지 않게 큰 눈동자가 흔들리며 클럽 안을 쭉 훓는다. 그러면 클럽 안에 누군가 있는 게 아닌가,하고 나도 같이 폴의 시선을 쫓아가는 식이다.  

2. 청각장애인인 칼라는, 말하자면 폴의 직속 상사쯤 된다. 칼라는 사람이 말하는 입술을 보고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는 독순술을 익혔다. 칼라한테는 생존과 소통을 위한 언어 수단이지만  폴한테는 범죄에 유용한 기술이 될 수도 있다. 독순술은 성격도 다르고 목표도 다른 두 사람을 한 곳으로 모아주는 소실점이다. 칼라는 순응적 성격으로 자신만의 규율과 틀에 고착된 삶을 살아가는데 익숙하지만 이면에는 억압된 심리를 들여다 볼 줄 안다. (변태성욕자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사무실에 나갈 때 입는 옷과는 전혀 다른, 어쩌면 한 번도 입어보지 않았고 입지 않을 드레스나 분홍 샌들을 신고 거울을 본다. 이따금씩 자신의 나체를 보기도하며 폴의 옷에서 나는 체취를 은밀히 즐기기도 한다. 폴은 모른다.  

3. 막 살아 온 폴과 틀 안에서 살아 온 칼라가 만나서 하는 일은, 추운 밤에 건물 옥상에 올라가 클럽 사장이 돈을 어디다 숨겼나 염탐하는 거다. 집 안을 들여다보면서 칼라는 그녀의 무기, 독순술을 성실히 수행하다가도 짜증이 난다. 어째서 범죄자같은 혹은 범죄자를 돕고 있는지. 이유를 알고 있지만 칼라는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다. 자신과 너무 다른 폴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 그녀가 자신의 숨겨진 욕망, 사회적으로 표출하면 안 된다고 교육받은 그런 욕망과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둘 사이에 놓여있는  장애가 사랑의 장애물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사랑보다는 인간의 이중적 본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관성의 법칙에 따라 자신의 영역으로 돌아가려는 자아가 있고 관성을 벗어나 위로 솟구치려는 잠재적 자아가 있다. 두 자아가 충돌할 때 어떤 물리적 현상이 일어나는지 고찰하고 있는데 이런 일이 대체로 답이 없다.  

4. 한 가지 못마땅한 점은, 칼라를 보는 시선이 철저한 남성의 시선이라는 것. 어떤 의문이나 감정 때문이 아니라 그냥 한 여자를 관찰하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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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 - The Beat That My Heart Skipp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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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은 부동산 브로커다. 말이 브로커지 하는 일은 깡패 짓이다. 갖은 수단을 동원해서 입주자를 쫓아내고 수익을 남겨 부동산을 다시 파는 일을 한다. 밤에 출동도 해야하고 필요하면 주먹도 써야한다. 낮에는 사무실에 앉아 회의도 하는 척 해야한다. 카메라는 핸드헬드로 거친 바람에 흔들리는 톰의 마음을 담는다.  

거센 바람 속에 톰이 넘어지는 걸 간신히 지탱해주는 두 가지가 있다. 아버지와 피아노다. 나이 든 아버지는 이미 톰의 보호자가 아니라 톰의 자식같다. 늘 돌봐야하고 뭘 해달라고 조른다. 톰은 아버지의 뒤치닥거리가 지겹지만 보호자 역할을 충실히 한다. 성공하지 못한 피아니스트였던어머니는 일찍 죽었다. 톰은 어머니 영향으로 피아노를 쳤었지만 그만둔지 십 년이나 됐다. 갑자기 그는 오디션을 보려고 하고 다시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한다.  

톰은 사회적으로 고상하지 못한 일을 밥벌이로 삼고 있을 뿐 아니라 주변 사람과 소통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피아노는 밥벌이와 양립할 수 없는 속성을 지닌 것처럼 보인다. 동료들은 일하는데 타이밍을 놓치는 톰에게, 그 예술 때문에 그러면 그만두라,고 충고한다. 심지어 피아노 레슨 선생도 불어를 모르는 중국인이다. 바흐의 토카타 E단조를 영화 내내 연습하는데 두 사람은 건반을 통해서만 소통할 수 있다. 두 사람이 같은 곡에 대해 갖는 템포와 감정은 완전히 다르다. 톰의 흔들리는 심리는 빠른 템포로 건반을 두드리면서 드러난다. 외적 환경의 거친 풍랑은 박자를 해석하는 내적 초조함으로 반영된다.  

초조와 긴장을 버리는 순간에 바흐의 곡을 제대로 칠 수 있을 것이고 가능할 것 같은 순간이 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막상 오디션에서는 수도 없이 연습했던 곡을 마치 처음 치는 것처럼 꾸물대다 망치고 만다. 아버지는 살해된다. 톰은 자신을 지탱했던 뿌리 둘 다 잃어버린다. 뿌리가 뽑혀도 얼마간은 버틸 수 있다. 아무리 극한 일을 겪어도 사람은 살 수는 있지만 결국 말라 죽는 일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시간은 흐르고, 톰은 트라우마는 잊은 것 같아보이지만 운명은 톰의 편이 아니다. 뿌리 뽑힌 나무는 살아있던 가지마저 잃는다.  

<예언자>로 자끄 오디아르 감독을 처음 알았는데 <예언자>보다도 훨씬 더 섬세하다. 화려한 장치나 스페터클 없이 닫힌 공간을 사용할 때 인물의 표정이나 몸짓은 긴장감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전적으로 톰이란 인물을 재현하는 배우에게 의존하는데 배우 혹은 사람은 감정을 전달하는 최고의 수단이다. 톰이 느꼈을 서늘함이나 좌절을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연출법과 연기는 이 영화의 백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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