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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eat Gatsby (Paperback, 미국판) - 『위대한 개츠비』원서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 Scribner / 2004년 10월
평점 :
헤밍웨이가 동시대 최고의 소설이라고 극찬한 책이라 몇 년 전부터 읽으려고 노력했다. 몇 장 못 넘기고 하품하다 덮곤했다.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책이었으나 첫 몇 페이지에 나가 떨어지고 마는 거 보면, 핑계지만 번역에 문제가 있을 거라고 믿었다. 이 책도 지난 달에 주문했지만 역시나 몇 페이지 읽다 내려놓았다. 연휴에 다시 한 번 도전했다. 이렇게 힘들게 만난 책인데 과연...헤밍웨이가 칭찬한 이유가 있다. 두 사람이 친구인데다 동시대 사람이여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헤밍웨이의 <해는 떠오른다>와 아주 비슷한 문체로 비슷한 느낌이다. 날씨나 기후로 사람의 심리묘사가 이루어지는 것, 젊음에 필수적으로 깃든 질주와 우수, 물질적 풍요 속에서 보이는 권태와 나른. 대체로 이런 느낌으로 청춘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 가지 궁금증은 동부와 서부 간에 존재하는 깊은 심연같은 지역 감정이다. 미국 땅이라봐야 달랑 뉴욕 밖에 가 보질 않아서 동부와 서부의 차이를 상상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동부가 부유한 엘리트들 서식지라면 서부는 투박하고 때로는 척박한 토양에서 서식할 수 있는 사람들이 묘사된다. 이들은 세련되진 않았지만 허식과는 거리가 멀다. 동부인은 가식이 역겨울 때 자유를 찾아 서부로 가고 서부인은 풍요 혹은 성공을 찾아 동부로 와서 허세를 부린다. 그러나 서부인은 동부인이 될 수 없고 동부인인 척하는 모습이 종종 묘사된다. 동부인 역시 서부인이 지닌 소박한 자유를 여행자처럼 잠시 누리는 모습만이 묘사된다.
제이 게츠비는 서부인의 상징이다. 군 입대 전 무일푼이었고 그와는 다른 계급에 속한 데이지란 여자를 사랑했다. 제대 후 게츠비는 밀주업자로 거대한 부를 축적했지만 갑작스런 부와 대대로 상속되는 부와는 질이 달랐다. 게츠비는 웨스트 에그에 노르망디 풍으로 저택을 꾸몄지만 소란스럽고 크기만했다. 주말마다 유명인들이 오는 파티가 열렸으나 허세처럼 보이도록 묘사된다. 데이지의 남편 탐은 "서부에서 폴로용 말을 데려올 정도로"로 묘사되는데 그 부의 크기를 짐작할 수 없다고 언급된다. 탐의 도덕적 양심은 소유한 부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야기를 이끄는 화자는, 스물두 살된 데이지의 육촌 닉이다. 닉은 서부에서 꽤 안정된 집안 출신이고 역시 보다 유망한 미래를 위해 주식을 공부하러 뉴욕에 왔지만 게츠비와 데이지 부부 사이에 얽힌 운명을 보고 혐오를 느낀다. 닉은 관찰자로 자신이 동부인이 될지 서부인이 될지 선택의 기로에 선다. 게츠비의 비참한 운명과 과거를 감추고 싶은 욕망을 보고 서부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데이지와 탐이 버린 양심이 닉 자신의 양심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닫는다.
이 소설은 청춘 소설이지만 청춘이 뭔가. 가진 게 없어도 아쉬울 게 없는 시기가 아닌가. 고로 청년기를 지나야만 놓쳤던 게 뭔지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한다. 청춘은 생각보다는 행동하는 시기이므로 게츠비를 읽기에는 부적절한 시기다. 행동하는 게 두렵고 생각부터 하기 시작할 때 이 책 속에 숨겨진 뜻을 알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청춘과 짝궁인 우수는 여름날 살인적 더위가 사라지는 것처럼 바라지만 사라지면 곧 한없이 그리워하게 될 종류라는 걸, 시간이 흐르면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