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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률 감독이 영화에서 계속 다루는 주제는 소외된 주변인의 삶이다. <춘몽>은 지금까지와는 톤이 많이 다르다. 서늘한 톤에서 버티는 삶을 보여주고 고민하게 한 전작들에 비해 <춘몽>은 유머 코드를 많이 사용한다. 그런데 이 유머 코드라는 게 좀 석연치않다.
먼저 꿈을 다루는 방식을 보자. 아직 개발이 안 수색동에 동네 건달 삼총사가 있다. 일명 건물주로 통하는 종빈, 화려한 셔츠에 기지바지를 배까지 올려입는 익준, 임금을 강탈당해 1인 시위하는 탈북 이주자 정범. 그리고 그들의 여신 '고향주막'의 예리. 네 사람은 동네친구기도 하고 가족같은 연대감을 보여주기도 한다. 정범이 못 받은 임금을 받아주려 애쓰고, 예리의 휠체어 탄 채 의식이 없는 아버지를 돌봐주기도 하고. 틈나면 넷은 모여서 술도 마시고 시시한 잡담을 한다. 친구들이 흔히 그러는 것처럼. 세 건달 삼총사한테 예리는 비현실적인 꿈, 여신의 위치다. 어느날 종빈은 예리한테 묻는다. 어떤 남자가 좋아? 예리의 대답은 정신과 몸이 건강한 사람이면 좋겠다였다. 그러자 삼총사는 모두 고개를 숙인다. 사실 대사는 하나도 유머러스하지 않지만 이 지점에서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린다. 이 웃음의 실체가 나는 마뜩찮다. 물론 나도 웃었다.
나를 포함한 관객은 왜 웃나? 세 사람은 예리를 흠모한다. 하지만 예리는 세 사람과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다. 예리는, 삶은 달걀 껍질 까는 장면을 1분이나 보여주는 좀 어려운 영화를 보고 시를 외우고 책을 읽는다. 세 사람은 예리가 평범하다고 여기는 특성을 이미 갖지 못했다는 걸 영화 속 인물만이 아니라 관객도 동의하기에 웃음이 나온다.
종빈은 수색동 건너편 한국영상자료원이 있고 MBC가 있는 상암동을 "저쪽 동네" 혹은 "그쪽"이라고 표현한다. 옥상 위에서 보면 수색동과는 다른 때깔을 갖고 있고 뭔가 자본의 움직임을 내보인다. 그런 동네에서 영화를 공짜로 보여준다고 해서 삼총사는 예리를 따라간다. 여신 예리는 삼총사가 모르는 무언가를 많이 알고 있고 모르는 세상으로 안내하는 길잡이 같은 역할을 한다. 삼총사한테 예리는 '춘몽'이다.
예리는 삼총사한테 의리를 지키지만 내적 공허함은 그녀의 몫. 의식없는 아버지, 세상 물정 모르고 순진한 삼총사, 그녀를 좋아하는 한 동네 소녀, 그 누구도 예리의 꿈이 될 수 없다. 그녀의 핸드폰 배경화면은 정신도 육체도 건강할 거 처럼 보이는 오토바이탄 남자의 사진이다. 길을 가다가 자신의 이상형인거 처럼 보여서 찍었다는, 아무 의미없는 사진이지만 또한 많은 의미를 함축하는 사진. 그러니까 예리는 자신이 속한 공간이나 세계를 밖의 것들에서 꿈을 꾼다. 영화, 책을 포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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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률 감독의 영화들이 내러티브가 친절한 편은 아니고, 이 영화 역시 말이 안 되는 부분도 많다. 신민아가 정범의 변심한 여자친구로 갑툭튀하고 오토바이남인 유인석이 고향주막에 갑자기 나타나고. 생뚱맞은데 꿈이라는 카테고리에 다 포함할 수 있다는 편리한 제목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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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익준 감독, 윤종빈 감독의 연기는 갑 중에 갑. 두 사람의 캐릭터가 이기호 작가 소설에 나오는 변두리 거주자들과 닯아있다. 영화를 보면 계속 이기호 소설들이 떠오른다. 코믹한데다 엉뚱함까지. 그들의 엉뚱함은 순진함에서 나오는데 순진하는 게 웃음 코드로 작용해서 웃는게 썩 유쾌하진 않다. 나는 우월한 입장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불편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