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삶을 바라볼 때, 우리는 이미 어떤 시선으로 그 사람의 삶을 판단하고 편견을 갖게 된다. 꼭 계몽주의자가 아니어도 합리성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권하고 조언을 하려고 안달한다. 누군가의 삶을 그대로 바라보는 게 가능하기나 한가? 일상에서도 이런데 영화는 더군다나 더 힘들다. 카메라 자체는 이미 하나의 시선이고 권력이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에 나오는 이들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담아도 이 보다 더 시선이 개입할 거 같은데. 이 영화는 극장편영화인데도 시선의 개입이 없는 것처럼 보는 이에게 다가와 더 놀랍다.

일정한 거주지가 모텔인 이들의 삶. 모텔은 잠시 머무는 공간으로 약속된 공간인데 임시 거주지가 집이 되는 이들의 생활 속으로 영화는 들어간다. 장기투숙자에 아이들이 있다. 이 아이들은 서로 친구가 되고, 방학 내내 시간을 같이 보낸다. 모텔 주변을 뛰어다니면서 소리지르고 웃는다. 재미있는 놀이가 있으면 서로 알려주고, 폐허에 들어가 불장난도 하고,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지나가는 손님에게 구걸을 하기도 한다. 득텍한 아이스크림을 한 입씩 돌려가며 그 달달함을 공유하고 애정하는 게 사라지는 허망함도 경험하고, 때론 그 허망함을 견디는 법도 터특해간다. 장기투숙자 아이들의 엄마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인생으로 아이들을 세심하게 배려할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다. 아이들을 안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신만의 최선의 방식으로 사랑한다.

극 중에서 무니 모녀가 있다. 무니의 엄마가 왜 아이와 모텔 생활을 하게 되었고, 왜 파트타임이라도 한 곳에서 일하지 않는지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는다. 영화는 개연성을 설명하기 보다는 무니 모녀의 일상을 그저 보여준다. 주 단위로 방세를 내야하는데 돈이 없어서 고민하고 모텔 관리인과 언성을 높이며 화를 못 참아 극단적으로 행동한다. 근처 고급 리조트 관광객들에게 접근해서 향수를 파는 일로 근근히 생계를 이어가지만 무니와 함께 할 때면 당당하고 아이의 시선과 노력하지 않아도 같아보여서 무니와 노는 것은 곧 무니 엄마의 놀이처럼 보인다. 몹시 불안정해 보이는 삶이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고, 관객은 무니의 앞날에 대해 슬그머니 고민한다. 무니 모녀는 행복한데 이 행복은 경제적 무능력, 사회적 편견으로 보면 아이에게 옳지 않은 행복일 수도 있겠다, 하는 지점에서 아동국 직원들이 등장한다.

무니 엄마는 SNS를 통해 성매매를 해서 방세를 내는 일이 기관에 알려지고 이웃 장기투숙자들에게도 알려진다. 무니는 어른들의 개입으로 갑자기 친구들을 잃게 되고, 유일한 친구 엄마만 남는다. 다른 사람의 이해와 공감이 없는 상태에서 모녀의 관계는 변함없다. 아이에게 사회가 지향하는 윤리적 태도를 알져주지 못 하는 엄와와 아이를 분리시키려는 시선에 모녀는 흥분상태가 되고 무니는 결국 아동국 직원의 손에서 달아나면서 영화가 끝이 난다. 무니가 엄마와 헤어지는 것을 저항하는 표정에서 과연 기관이 엄마와 아이를 떼어놓는 게 맞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무척 충격을 받았다. 무니의 탈출은 진정한 탈출일까, 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하지만 무니의 탈출을 지지하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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