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목이 왜 이러나, 했는데 영화를 보면 한 번에 의문이 풀린다. 헝가리어를 몰라 원제목은 모르겠지만 한국말 제목은 영화를 보고나면 확 와닿는다. 세상에 사랑을 이야기하는 영화와 책은 차고도 넘쳐서 식상하다. 사랑이라는 주제는 진부하지만 인간의 욕망의 대상이고 또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깊은 공감을 느낄 수도 있고, 또 때로는 시시한 게 될 수도 있다.

이 영화는 새롭다. 상영시간을 맞추기 위해 노력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  영화 시작은 피테르 브뢰헬의 <눈밭의 사냥꾼들>처럼 시작한다. 사방이 눈으로 쌓인 숲. 잎 하나 없는 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숲에 뿔도 체격도 우람한 숫사슴과 겁 먹은 눈동자를 지닌 마른 암사슴이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다가 잠시 서로 다가와서 서로의 몸에 얼굴을 기댄다. 그리고는 각자 다른 방향으로 흩어진다. 이 꿈을 한 남자와 여자가 꾼다. 비논리적 설정이지만 사랑은 이성적이면  못한다. 그냥 친구로나 지내야지.

영화가 진행되면서 드러나는 여자의 성격은 매력적인 외모지만 결벽증이 있고 무엇보다 무감각한 사람이다. 음악을 듣고도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타인의 시선이나 접촉에 힘없는 초식동물처럼 움츠러드는. 반대로 남자는 너무 많은 경험(여자 경험을 포함해서)을 해서 몸도 마음도 늙어가고 모든 것을 끊기도 결심한다. 술, 담배, 섹스도. 한쪽 팔을 못 쓰는데 미루어 짐작컨대 방탕한 생활의 후유증일 수도 있다. 남자는 삶의 의미를 잃고 수도승처럼 살고 있다. 그런데 사슴 꿈을 꾼다. 여자도 사슴 꿈을 꾼다. 도축장에서 재무이사와 품질검사원의 직위다. 두 사람의 정체성은 남자와 여자란 사실만큼 같은 점이 없다. 같은 꿈을 꾼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하지만 꿈의 속성은 은밀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같은 꿈을 꾼다는 건,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를 공유한다는 말이니 친밀해질 수 밖에 없다. "오늘 밤에 만나요"란 말을 주고 받을 수 있다. 물론 꿈에서. 전혀 접점이 없는 두 사람이 꿈으로 인해 서로 호감을 갖고 하루는 같이 잠을 자고, 연인 관계로 발전하기 전에 그렇듯이 묘한 기류가 감돈다.

남녀가 만나서 연애로 들어가거나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기까지 마음졸임이 이 영화에서도 백미로 묘사된다. 결벽증과 함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여자는 남자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음악듣는 연습을 하고 촉각을 연습한다. 이런 장면들이 빼어나게 미학적이다. 신체부분 크로즈업을 주로 사용하는데 여자 캐릭터에 맞게 창백하면서도 절대 어둡지않고 밝게 표현된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나면 한 편의 성장영화같은 느낌도 든다.

남녀가 꽁냥꽁냥으로 진입하기 전 갈등은 모든 멜로극의 필수요소이다. 두 사람 다 느끼는 만큼 표현할 길 없이 각자의 방식대로 시간을 보낸다. 사실 이 단계도 연애중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의 이성은 서로 안 맞는다는 걸 인정하고 각자의 평온으로 돌아가는데 동의한다. 하지만 집에 돌아온 두 사람은 죽을 것같은 고통을 겪는다. 여자는 정말 죽기위해 욕조에 앉아 머리털나고 처음으로 감정을 가져다준 음악을 틀어놓고 유리로 손목을 긋는다. 피는 욕조를 물들인다. 이때, 전화벨이 울리고 남자는 "당신을 너무 사랑해서 죽을 것같아"하고 말한다. 여자는 갑자기 살려는 의욕으로 넘치고, 그다음은 병원에 갔다가 남자와 잠을 잔다. 여자의 결벽증은 완전히 치유되진 않았지만 절반쯤은 무너졌다. 같이 자고 난 다음날 아침 식탁에서 빵부스러기를 손으로 쓸어모으는 여자의 결벽을 처음으로 목격한다. 하지만 참을 수 있다. 사랑하니까. 나중에는 참을 수 없을지언정. 사랑을 부정하며 고통받느니 사랑을 인정하며 고통받는 게 훨씬 더 낫노라니. 근데 정말 그럴까? 나는 당최 확신이 없다.-.-

영화 줄거리를 이렇게 적고나면 진부한데 그 표현방식은 아주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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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9 19: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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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5 2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