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봐야겠다고 결심한 건 호퍼 그림을 연상시키는 포스터 때문이다. 빛이 쏟아지는 방 안에서 창밖을 내다보는. 영화 내용을 잘 담고 있다. 밖에는 빛이 넘치는데 나가서 광합성을 안 하고 왜 안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나...바로 영화 내용이다. 에밀리 디킨스의 전기영화로 에밀리 디킨스는 열정을 표현한다. 열정passion의 어원은 라틴어passio, 즉 고뇌 혹은 고통에서 나온다. 그러니까 열정과 고통은 한 몸.  

오프닝에서 수녀가 운영하는 신학학교에 여학생들이 있다. 아마도 조회(?) 시간에 죄를 회개하고 싶은 사람은 옆으로 비켜서라고 말한다. 홍해가 갈라지듯이 학생들이 쫘악 옆으로 서는데, 무리에서 끼지 못한 단 한 사람, 에밀리 디킨슨이 남는다. 그리고 말한다. 죄를 지었다고 느껴지지 않는데 어떻게 반성하냐고 대답한다. 에밀리 디킨슨을 움직이는 건 사회적 제도가 아니라 자신의 직관이다. 하지만 직관은 양날의 검이다. 그 누구의 말도 따를 수 없고 자신의 신념과 믿음만을 따르는데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 마음 속에 느끼는대로 그대로 말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점점 더 고립된다. 화창한 날에도 산책 가자는 방문객들의 제안에도 그녀는 2층에 있는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고 계단 아래 서 있는 사람들한테 외친다. 그녀가 소통하는 유일한 공간은 창 옆에 있는 작은 책상이다. 작은 종이에 시를 적고 그 시를 수첩처럼 실과 바늘로 한 땀 한 땀 꿰맬때만 평온하다. 시를 쓰는 것만이 그녀의 우주이고, 신이다. 자신만의 신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자신의 신을 세상이 받아들이기를 간절히 원한다.

여자로서 사는데 대한 힘겨운 현실의 에피소드 또 하나는, 식탁에서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접시가 더럽다고 말한다. 그랬더니 접시를 받아서 깨버린다. 그리고는 하는 말, 이제 안 더럽죠.. 이런 극단적 행동은 그녀가 속한 여러 가지 억압에 대한 숨막힐 듯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몸이 아파서 격렬하게 발작을 하면서도 빵을 태우면 안 된다는 일념을 그녀조차 거부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결국 직관이 그녀를 이끌어서 시로 위안을 받지만 그 직관에 갇히고 직관은 점점 더 끝이 뾰족한 화살이 되어 그녀 자신을 겨눈다.

에밀리 디킨즈의 일생을 고통스럽게 보여주는 것 말고도 디킨즈의 부모의 죽음을 몹시 처참하게 보여준다. 몹시 감정이입이 되서 보고나서 집에 오니 우울해서 <짠내 투어>를 보고 낄낄거리면서 맥주를 무려 세 캔이나 마시고 잤더니 결과는 아침에 두통과 함께.  

덧-<섹스 앤 더 시티>의 미란다, 신시아 닉슨이 에밀리 디킨스를 연기하는데 신시아 닉슨의 표정 연기는 훌륭한데 특유의 흘리는 듯한 말투는 단호한 인물 연기에는 정말 안 어울려서 몹시 거슬렸다. 단호해서 말을 꼭꼭씹어서 외칠 때조차도 말을 흘리는 치명적 단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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