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봤을 때 이 영화에 대해 별로 할 말이 없었다. 오늘 다시 보니 하고 싶은 말이 생겼다. 그 사이에 내가 변한 거겠지.

울먹이는 여자의 미디엄숏으로 시작한다. 잠시 후 누군가의 시선으로 엿보고 있는 뒷모습이 잡힌다. 한 가정이 깨지는 순간이다. 남자는 아내와 딸을 떠나서 애인한테 간다. 두 사람은 무명 배우고 서로 사랑한다. 사랑의 본질은 유동적이라 형태가 없으며 깨지기 쉽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열정으로 잠시 행복하다. 남자는 여자에 대한 열정을 절절하게 읊어대면서도 틈만 나면 다른 여자의 손을 잡거나 키스를 한다. 우리가 바람둥이라고 부르는 사람이다. 본인만 인정 안 할뿐. 황당한 일은 그 다음이다. 바람둥이 남자가 순정을 바치는 여자는 비루한 집에 눈물을 흘리며 가난한 집이 싫다고 하더니 집을 선물로 준 남자한테 가버린다. 남자는 여자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화를 내지만 여자한테 사랑은 변하는 것이다. 남자한테 사랑이 변하고 지켜내기 힘든 것이었듯이.  결국 남자는 자업자득인셈인데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 영화가 감정을 섬세하게 짚어냈다는 생각은 안 든다. 흑백의 경쾌함 때문에 인물들의 감정을 흥미롭게 바라보게 되긴 하지만 감정선의 맥락이 없다. 딸의 친구 모녀랑 영화보러 가서 딸의 친구 엄마 손을 슬그머니 잡는 남자는 발정난 수컷 정도로 밖에 생각이 안 든다. 전후 맥락없이 남자는 주변에 사랑을 뿌리는 유전자를 지닌건가... 그러다 자신이 사랑을 잃을 수도 있다는 가정은 안 해본 남자의 황망한 표정이라니. 아무튼 사람의 감정은 단순하게 보이지만 단순하지 않고 행동의 이면에는 복잡한 감정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본인이 아닌 이상 타인의 느끼는 감정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자신의 감정을 자신이 모를 때도 많고 지나간 후, 타인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아, 그랬었지 하기도 하고. 감정 변화는 살아있다는 증거지만 요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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