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퇴원 후 매일 오전 병원행이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병원 예약 없는 날. 모닝 영화로 줄리엣 비노쉬의 데뷔작이라는 <랑데뷰>. 영화를 보면서 문득 일상의 힘에 대해 생각했다. 그 어떤 사고나 고난이 와도 이겨낼 수 있는 원천은 일상이 아닌가, 싶다. 영화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는 말은, 내가 여러가지 터널에서 빠져나와 일상으로 걸어들어가고 있다는 말이 되겠다. 몸만 불편한 게 아니라 지난 주말 마음도 너덜너덜했는데 영화를 보면서 마음이 차분해진다. 까닭없이 봄볕에 마음이 들떴다가 까닭있어서 마음이 바닥에 누워버렸고 이제 조금씩 마음을 다독이고 있다.
2.
헐리우드나 한국 멜로영화가 판타지로 가득차서 해피엔딩으로 이끌기 위한 요소들로 가득차 있다면 프랑스 멜로영화는 종종 비극에서 출발한다.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 소통의 부재가 주요 테마이다. 사랑하는데도 소통은 분명히 부재할 수 있다. 남녀 간의 사랑은 상호적이 아닐지도 모른다. 상대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사랑하는 일이 종종 발생해서 사랑은 양방향이어야 한다는 당위성에서 벗어나버린다. 사랑은 결국 일방통행일 가능성이 더 큰건 아닐까. 기독교에선 신도 자신한테 충성하길 요구하는 교리를 촘촘하게 적어놨는데.
영화에서 세 명의 주인공은 각기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쾅탱은 분열증 환자처럼 보인다. 가학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피학적이기도 하고. 쾅탱의 친구이면서 처음 니나한테 반한 폴로. 폴로는 성실한 부동산 중개인이고 우리가 흔히 보는 평범한 인물이다. 사랑하면 데이트도 하고 잠도 자고, 같이 살기도 하는. 니나는 배우가 되려고 남부지방에서 파리로 상경했고,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궁핍해도 자신의 의지를 믿는 혈기 왕성한 청년기의 전형이다.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대는 쾅탱을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지지만 인정하길 거부한다.
그녀는 왜 사랑에 빠지길 거부했나. 자신과 많이 닮아서가 아니었을까. 격정적이고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쾅탱한테 본능적으로 끌린다. 폴로의 소심하고 단정함을 존중해서 함께 살고 싶어하지만 사랑하진 않는다. 이렇게만 줄거리만 보면 막장인데 우리 마음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매일 막장 드라마를 쓰고 있지 않나. 어느 순간 누군가를 좋아했다가 증오하고 마음 속으로 죽였다가 살리기도 하고...자신이 감독이어서 배치하고 싶은 곳에 둔다. 물론 상상 속에서만. 영화 속 인물들과 우리의 차이점은 실행력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우리가 생각만 하는 걸 재현해서 보여준다. 이렇게 보면 <랑데뷰> 속 러브 트라이앵글이 보여주는 광기적 발광이 무척 현실적으로 와 닿는다.-.-;
3.
소통을 원할수록 멀어지는 인간사. 두 주 전, 모임에서 사주를 공부한다는 이가 창의적(?)으로 내 사주를 해석해 주었다. "기도 많이 하세요" "네???" 그 이후 "기도"에 대해 나는 생각하기 시작했다. 책이 기도고 영화가 기도나니. 엄한 결론으로. 암튼. 일상이 중요하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