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다는 건 모든 것을 떠나보내고 결국 혼자 남는 게 아닐까. 나이들면 왜 떠나보내나? 집착이 없어지고 잡을 수 없는 걸 잡지 않기 때문이다. 철학교사인 나탈리는 남편, 딸, 엄마, 제자가 있는 과거에는 아마도 행복의 구성요소라고 부를 수 있는 걸을 다 갖추었다. 하지만 어느 날, 남편이 다른 여자와 살겠다고 선언을 하고 공유했던 책까지 가져가버린다. 나탈리를 사랑하는 엄마는 (아마도) 우울증으로 밤낮으로 전화해서 잠이 안 온다, 죽겠다고 말하더 정말 어느 날, 세상을 떠난다. 철학수업의 제자는 이제 아도르노에 관한 책을 냈고, 나탈리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지만 어느 순간 나탈리보다 더 큰 세계를 꿈꾸면서 나탈리를 비겁한 아늑함을 추구하는 지식인이라고 비판한다. 이런 총체적 난국이 어딨나...
이런 일은 그런데 일상일 수 있다. 영화라서 한꺼번에 일련의 사건을 두 시간에 보여줘서 우리가 더 잘 인지할 수 있을 뿐이지. 실은 우리의 과거도 현재와 같지 않고 미래는 현재와 같지 않을 것이다. 태양이 매일 동쪽에서 떠도 지구가 매일 태양 주위를 돌고 있어서 각도가 변하는 걸 인지 못하고 우리는 하지, 동지, 여름, 겨울이라는 두루뭉술하게 시간을 나눌 뿐이다.
나탈리가 산에 사는 제자를 찾아가서 "이제 완전히 자유인이야"라고 말한다. "자유인"이란 말이 이렇게 슬픈 단어가 될 수 있다니. 완전한 자유를 어떻게 받아들일까에 대한 자세에 대해 말한다. 태양이 우리 눈에 안 보여도 늘 그 자리에 있듯이, 나탈리를 지탱하는 요소들의 자기장은 눈에 안 보일 뿐이지 여러 가지 형태로 그녀의 위성으로 남아있다. 딸을 출산한 딸도 여전히 그녀의 딸이다. 크리스마스 가족 모임이라든지 여름휴가에 그녀를 따르는 제자를 찾아간다든지. 관계가 전과 같지 않지만 끈은 그대로 남아있고 그 끈을 어떻게 연결할지는 나탈리의 몫이다. 이러고 보면 나이들면 체념이 많아질 수 밖에 없는데 격하게 공감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것을 탐하지 말지니.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