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화요일에 영상자료원에서 상영한 영화인데 평일인데 거의 만석이라 깜짝 놀랐다. <내셔널 갤러리>만이 아니라 앞 영화 <루이 14세의 죽음>도 거의 만석. MBC가 이사 온 후광일까? 평일 영화 애호인구가 이렇게 많다는 게, 그리고 연령층이 비교적 높다는 게, 그리고 중간에 나가는 사람도 거의 없다는 게, 너무 놀라웠다. <내셔널 갤러리>는 상영 시간이 180분인 다큐멘터리인데도 모두 열청하는데 살짝 감동받았다. 영사기사도 아니건만ㅋ

 

2.

런던에 있는 <내셔널 갤러리>가 운영되는 방식이라고나 할까? 회화에 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회화를 둘러싸고 확장되는 사람들의 시선이다. 갤러리에는 운영자도 있고, 큐레이터들, 도슨트, 복원자도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관람자들. 각자의 입장을 조금씩 다 담는다. 운영 관련자들은 그림을 보존하는 방법, 유화의 경우 원본은 어떤 식으로 그려졌는지 유추하고 사적 자료를 추적한다. 유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투명해진단다. 그래서 밑에 그렸다가 위에 덧그림으로 덮인 그림이 시간이 흐르면 나타난다고. 또 물감이 차창 유리가 깨지는 것처럼 깨져서 원래의 빛을 표현하지 못하고 뭉개지는 경우도 있고, 그래서 현대 복원사들이 원본의 빛을 찾기 위해 손을 대기도 하고.

 

이런 말이 있다. 복원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복원 작업이 과연 원본 작가들이 의도한 것인가? 하는. 그림의 최종 소비자(?)는 관람객이다. 그림도 다른 공산품처럼 어쩌면 여러 사람들이 실은 의도대로 봐야하는지도 모르겠다. 여러 사람들의 입장을 담아서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관점에서 미술이 아니라 '미술관'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다.

 

3.

한 미술사가는 그림은 감상자와 관계를 갖는다고 말한다. 아-멘. 그림은 그린 이의 손을 떠나 미술관에 걸리면 보는 이와 각각의 관계를 맺는다고. 또 한 큐레이터는 예술은 모든 학문을 다 포함한다고 말한다. 정말 맞는 말이다. 과학, 수학, 철학, 역사 등등을 직접 작품에 담지는 않지만 그 모든 응용 원리들이 예술 작품에 녹아들어 있다. 그래서 예술이 흥미롭다. 예술작품을 보다 보면 인접한 학문으로 들어가게 되는 지점이 있다.

 

4.

특히 이 영화로 푸생의 특징을 알게 되었다. 푸생은 조각의 특징을 회화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푸생 시절에는 조각이 더 영구적으로 유통된다는 관념이 있어서 회화보다 조각이 약간 더 우월한 입장이었나 보다. 푸생은 그런 당시의 관점에 위배되는 시선을 택해서 회화에 조각 기법으로. 그래서 인물들의 몸이 우람(?)하고 무엇보다 잔근육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사실 지금 보면 디게 비현실적이고 뭐가 아름답나, 싶은 게 사실인데 미술사에서 푸생의 위치를 아무리 강조해도 이해가 잘 안 갔었는데 푸생의 위치는, 바로 이 저항 정신에 있었던 거다.

 

5.

한국도 전시 호시절이다. 하지만 이는 부모들이 아이들한테 문화 계급에 대한 욕망을 투사한데서 출발한다. 그래서 전시도 방학 중에 주로 열리고 비교적 익숙한 테마로 반복해서 열리곤 한다. 그래서 전시장에 가면 북적이는 인파로 몹시 지친다. 어떤 경우에는 오디오 가이들을 듣느라 줄이 안 움직이고 설명이 없는 작품에는 사람이 없는 현상이 발생한다. 누군가의 가이드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작품과 보는 이 사이에 상호작용은 일어날 수 없다. 물론 과도기라고 생각한다. 이런 탐욕적 관람이 양적으로 팽창한 후에는 질적으로도 관람의 질이 성장할 것이다. 그리고 미술관 운영프로그램이 주로 아이들을 위한 것인데 반해 이 영화는 주로 어른들, 아마도 취미 삼아 하는 어른들이 직접 데생을 하고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종종 등장한다. 아이들한테 문화 계급을 물려주려는 욕망으로 미술관이 북적거리는 우리와 한참 다른 지점에 있어서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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