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의 현실이 너무 버라이어티해서 <마스터>의 내용은 전혀 영화같지도 않고 현실에서 비일비재한일을 지켜보고 있는 느낌. 사회의 제도는 무력하다는 걸 번번이 목격하고 있다. 탄핵을 해도 권한대행자가 그에 준하는 악덕한 사람이고 대행자가 없어져도 악의 고리는 뫼비우스 띠처럼 연결되어 있을 거라 사실 그닥 희망이 없어 보인다. 새누리는 선거를 위한 이미지를 분당 후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다시 합당을 할 거란 전망도 나오고. 거물급이라고 거론되는 사람들은 다 정치권에서 물러나야할 사람들인데 혼란을 틈타 또 등장하는 거 보면, 사람들은 또 잊고 새누리에 표를 던지는 이런 악순환이 거듭되는 게 아닐까, 하는 공포감마저 든다.

 

2.

제도는 무력해서 특히 약자를 보호해 줄 수 없다. 제도에 취약한 평범한 사람을 지켜주는 건 어쩌면 개인이라는 생각 쪽으로 요즘은 생각이 기운다. 공공의 선과 공공의 악은 한 몸인지도 모른다. <마스터>에 세 명의 천재가 등장한다. 공공의 선을 추구하는 경찰, 공공의 악을 추구하는 사기꾼, 그리고 금융사기프로그램을 어디다 써야할지 갈팡질팡하는 평범한 프로그래머. 평범한 사람은 절대 악과 선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서 종종 선과 악을 오가면서 혼동스러워한다. 자신의 경험치에 근거해서 선과 악을 나누는 기준이 있다. 영화 속 대부분의 인물들이 그렇다.

 

경찰청장, 천재의 두뇌를 가진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대표적 인물이다. 경찰청장은 선이라고 믿는 것을 추구하다가도 문득 자신이 속한 제도 내에서 선은 더 이상 선이 아니라는 걸을 인식할 때마다 올바른 길인지 의심을 한다. 나라를 뒤흔들 수도 있는 일은 선이 아니라는 가치판단에 시달린다. 프로그래머 역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꾼을 돕다가 무일푼이 되고 사채없자한테 협박을 당하는 바닥을 친 후에 (어쩌면) 개인적 복수를 위해 경찰을 돕는다. 피해자를 구원하는 대의명분은 그의 관심 밖이다.

 

다른 두 천재는 절대 선과 악을 추구한다. 둘은 쌍둥이같다. 자신의 목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절대 선이나 악에 대한 부동의 믿음은 강한 추진력을 만든다. 경찰은 사기꾼 하나를 잡는 게 아니라 부패의 네트워크를 잡으려는 거시적 목표가 있다. 사기꾼은 이미 많은 부를 축적했다. 하지만 부라는 게 뭔가. 부는 가져본 사람만이 실체화할 수 있는 것이다. 100억이 추상적으로 다가오는 일반인한테 1조는 화성에서 생물이 발견됐다는 뉴스 같은 추상성이 있다. 하지만 사기꾼한테 구체적 숫자로 다가오고 어떤 목표 지점을 발견한다. 날아가는 과녁을 맞추면 쾌감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천재 둘, 경찰과 사기꾼은 자신의 믿음과 목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데 절대 선 역시 절대 악마큼 피해자를 생산한다.

 

그럼 여기서 의문이 든다. 절대 선을 포기해야하나? 다수는 다행히 절대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 극소수만이 '절대'에 대한 기준이 있고 이들은 보통 사람들을 능가하는 머리가 수행력이 있다. 선은 당장은 피해자가 있어도 결과는 다른 지점에 가 있을 수 있다. 가령, 영화 마지막에 사기꾼은 결국 잡힌다. 하지만 제도의 메커니즘상 사기꾼의 돈을 국고에 환수해서 1년간 보관하고 피해자에게 주는 절차 동안 피해자는 고통을 받는다면서 단독으로 피해자의 계좌에 입급해서 영화를 판타지로 만든다. 마지막 장면 빼고는 영화는 극사실주의라고 말할 수 있겠다. 어찌됏건 소수의 절대 선을 추구하는 개인이 없다면 제도는 악의 뫼비우스띠다. 제도가 아무것도 보장하지 못하는 나라는 후진국아닌가ㅜㅜ

 

3.

사실 미디어는 현상의 나열에 불과하고 앎의 권리를 충족시키기는 한다. 그래서 어떤 극적인 순간을 위해 사람들이 움직이게 하지만 청문회를 보면(사실 홧병날 거 같아 나는 청문회를 거의 안 본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게 과연 있기나 한가, 하는 깊은 한숨이 흘러나온다.

 

4.

이 영화에 이병헌 싸가지가 나온다. 이병헌은 역시 절대 직업주의 정신을 가진 비범한 인물이다. 그는 사적 영역에서는 도덕적 문란함으로 욕을 먹지만 공적 영역으로 넘어오면 장인이다. 영화 속에서 필리핀 영어를 구사하는데 그 완벽함이라니. 어딘가 헛점이 있겠지하고 귀를 쫑긋세우고 들었지만 이 인간은 아마 필리핀인한테 대사를 녹음해서 그걸 그대로 흉내내는 연습을 했구나, 하는 짐작을 하게 만든다.

 

5.

파스칼이 말했다. "피레네 이쪽에서는 선이 피레네 저쪽에서는 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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