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조건 없는 사랑을 믿는 청년. 한 때 사랑을 했는지도 잊은 채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고 몇 번 반복하면서 세월과 함께 삶에 찌들어 사랑은 없다고 믿는 중년의 여자. 두 사람이 특별한 방식으로 만난다. 청년은 여자의 맞은 편 방에서 망원경 렌즈를 통해 일년 동안 여자를 만난다. 엿보다 사랑하게 되었는지 사랑해서 엿보게 되었는지 알수 없지만 여자대한 사랑이 점점 커져만 간다. 여자를 보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여자집에 우유배달을 하다 청년의 고백은 폭로처럼 이어졌다. 여자는 청년의 방식에 불쾌와 경멸을 표현한다.
망원경 렌즈를 통해 보이는 여자의 삶은, 우리가 비루하다고 여기는 삶의 전형이다. 여자는 만나고 있던 남자한테 매달리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어느 날은 잘못해서 식탁 위에 우유를 쏟고는 살기 싫다는 표정으로 한참을 엎드려있는다. 어느 날에는, 청년이 보낸 가짜 우편환을 가지고 현금을 찾으려고 우체국에 뛰어오기도 한다. 누가 보냈는지 묻기보다는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가짜라는 사실에 분개하는 여자는 아마도 삶에 많이 지쳤고 세상에 어떤 희망을 품는 어리석은 일 따위는 안 하는 거 같아보인다.
짜증 가득해 보이고 때론 신경질적인 여자가 청년의 고백을 듣고 묻는다. "나랑 키스하고 싶어? 섹스하고 싶어?" 청년이 아니라고 하자 그럼 나한테 뭘 원하냐고 묻는다. 여자의 질문 속에서 여자의 삶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여자의 인간 관계는 대체로 어떤 목적을 위해 이루어져 있고 청년이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는 말을 믿을 줄 모른다. 그래서 여자는 자신이 아는 방식대로 청년을 대한다. 상대적으로 청정 세계에서 살던 청년은 수치심에 손목을 면도칼로 긋는다. 청년이 수치심과 자괴감으로 목숨까지 버리려는 행동에 메마른 영혼을 지닌 여자는 갑자기 잊고 있던 세계로 눈을 돌린다. 세상은 의도와 목적만으로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라 그냥 좋으니까, 순수한 관계도 있었다는 걸, 여자는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덧. 기억 속에는 변태 청년의 이야기쯤으로 남아있는데 오늘 보니까 <애정만세> 폴란드 버전 같음. 나이를 먹는다는 건 어린 시절 느꼈던 감정을 잃어버리고 척박하게 살아가는 거 같음. 동요없는 평정심을 얻는 대신에 젊은 날의 순수와 열정을 잃어버리며 사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무지 슬퍼서 영화가 끝날 때, 눈물까지 흘림.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같은 날, 같은 도시에서 태어난 두 여자의 이야기. 정치적 중의성은 배제하고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지 하는 반감 대신에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시선으로 영화를 보게 된다. 살다보면 논리적으로 설명 안 되는 일이 종종 있다. 설명할 수 없는 기시감 혹은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불안과 자신이 뭘 원하고 찾는지도 모르면서 분주하게 무언가를 찾는...자신을 찾아 나서는 과정은 이렇게 불분명하고 어쩌면 실체가 없다가도 한순간에 퍼즐 조각처럼 일상에서 하나씩 등장하기도 하는 일이 아닌가.
가령 어떤 음악을 들으면서 과거 속으로 들어가서 상념에 잠겼다가 불쑥 현실로 돌아와서 어떤 충족감 혹은 상실감을 느끼는 일이 있다. 오늘 오후 집에서 나갈 때 가을 바람에 나뭇잎의 그림자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걸 보면서 마음이 한없이 날아올랐다. 아트시네마에서 영화 두 편을 보고 나왔더니 찬란한 빛 대신 어둠이 내리고 맨다리에 닿은 바람은 차갑기만하고, 아트시네마 입구는 스산하고 전철역까지는 걸어서 3분 밖에 안 되는 거리인데 걷는 동안 한없이 마음이 쓸쓸해지는게 베로니카가 이리저리 헤메는 기분이 이런건가 싶기도. 불과 반나절 동안 기분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해 있고 두 다른 감정을 경험하고 인식하는 물리적 실체가 바로 '나'라는 한 사람. 물리적으로는 이렇게 하나 일 수 있지만 심리적으로 이중이 아니라 다중을 살고 있으니, 베로니카의 삶을 어찌 이해 못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