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92년 처음 개봉 당시, 이 영화를 이해하기에 나는 너무 어렸다. 깊은 의미를 받아들이기보다는 분석글로 받아들이고 알고있는 편이다. 오늘 스크린으로 몇 십 년 만에 다시 보니 명작일세. 중저음 목소리로 낮게 말하는 잔느 모로의 내레이션. 독특한 분위기의 제인 마치와 피칠갑하는 홍콩 느와르에 어울릴 법한 외모의 양가휘가 내뿜는 눈빛과 표정. 사이공 촐란과 사이공 근교(?) 빈롱 전경. 모든 것이 새롭다.

 

2.

15세 반이 된 프랑스 소녀와 서른 두살의 중국인 남자의 불꽃같은 사랑이 줄거리지만 그 안에 많은 것이 담겨져 있다. 학교에서 외톨이인 소녀. 잘못된 투자로 가난해진 가정환경. 오빠는 아편 중독자고 동생은 어느 면에서 폭력적이고 수학 교사인 엄마는 커가는 사춘기 딸을 대할 줄을 모른다. 학교와 집의 폭력적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한 돌파구는 성적 쾌락. 십대 소녀의 성에 대한 호기심은 지극히 자연스럽지만 소녀를 쾌락으로 내모는 건 소녀가 속한 곳에서 부적응자였던 탓이 크다.

 

백인 소녀가 동양인 남자를 만나는 걸 가족들은 수치스러워하면서도 남자의 돈에는 관대했다. 남자와 소녀의 가족이 고급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장면은 소녀가 어떤 폭력에 처해 있는지 잘 표현된다. 백인의 우월감에 동양인을 무시하지만 진수성찬 앞에서 엄마, 남동생, 오빠는 가장 좋은 옷을 차려입고 나와서 코를 접시에 박고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댄다. 남자가 단지 소녀의 나이든 친구라는 뻔한 거짓말을 믿는 척하면서 식탐을 버릴 수 없는 이중성을 소녀는 버텨낸다.

 

소녀는 미래를 계획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남자와 식당에 나오면 소녀는 앞에 나온 음식을 열심히 먹고 남자는 원하지 않는 예정된 결혼에 대해 말한다. 소녀한테 남자의 결혼은 비현실적이었다. 남자는 소녀에 대한 감정이 점점 깊어지지만 아버지의 재산을 버릴 용기가 없다. 그는 "아버지의 재산을 빼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자신을 정의한다. 결국 소녀를 사랑하게 되지만 아버지의 재산을 선택하는 남자. 소녀는 사랑을 알아차리기에는 너무 어렸고 남자는 가진 걸 버리기고 사랑을 선택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었다. 남자가 결혼한 후 소녀는 프랑스로 와서 누군가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깨닫는다. 자신이 남자를 사랑했는지 확신이 없지만 사랑을 잃었노라고. 그걸 깨닫는 순간 소녀는 울음을 터트린다. 사랑하는 이와의 결별은 눈물로 승화하는 의식을 필요로 한다.

 

3.

이십년도 넘은 영화가 재개봉되는 힘을 지닌 건 아무래도 장 자크 아노의 연출 덕분이다. 줄거리만 보면 자극적이고 막장 드라마인데 여전히 회자되는 이유는 표현법에 있다. 배에서 만날 때, 소녀는 남자 모자를 쓰고 한쪽 다리를 난간에 기대어 있다. 신발을 클로즈업하는데 옷과 안 맞게 화려한 비즈가 있는 구두에 흙이 묻어있다. 소녀의 머리는 독립적이고 화려함을 꿈꾸면서도 진창을 피하지 않는 캐릭터다. 비포장 길에 스콜이 내리는 열대. 사방의 길은 흙이고 베드씬에서는 몸에 물인지 땀인지 반짝여서 습한 기운이 화면에서도 전해질 정도다. 프레임 안에 배치된 모든 미장센이 어수선하고 정돈과는 거리가 멀어서 소녀의 정신세계와 맞닿아 있다. 단정한 건 딱 하나, 남자가 옷맵시다. 남자의 빗어넘긴 머리와 단정한 옷은, 그가 자신의 영역을 나올 수 없다는 걸 암시한다. 혼란 속에서 시작된 성적 탐닉은 결국 사랑으로 기억된다. 먼 훗날까지 두 사람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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