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토요일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시간을 네 시간 쯤 보내고 정신이 몹시 혼미해진 상태로 서울아트시네마로. 서울아트시네마가 있는 건물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겨울왕국으로 들어선 것같은 착각을. 무더위와 심한 냉방으로 정신은 더더욱 혼미해지고. 친구들 영화제 중 시간에 맞는 <안개>를. 아무런 정보 없이 슬래쉬 영화인 <안개>를 보고 감독을 찾아봤더니 <할로윈>을 만든 감독.

 

내 집중력이 외출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안개>는 참 재미없는 영화다. 이야기는 무려 세 가지 층위로 진행된다. 백여년 전에 쓰인 성당 신부의 일기장이 발견되면서 해변가 마을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와 교차편집된다. 마을의 설립에 흑역사가 있고 그 흑역사의 구체성이 일기장에 기록되었다. 100주년에 맞춰 죽었던 이가 한을 품고 나타난다. 주변을 자욱하게 하는 짙은 안개를 몰고오면서 온도를 서늘하게 낮추고 한 손에는 갈고리를 든 어두운 그림자는 희생자를 차례차례 죽인다.

 

히치하이킹으로 한 여자와 남자가 만나고 이 남자와 여자는 전혀 이 마을과 관련이 없을 거 같으면서도 끝까지 불쑥 나타나 어린 생명을 구하는 역할을 한다. 호러 장르를 안 즐기는 내가 보기에는 참 맥락없이 인물 배치하고 행동하게 하는 구성이다.

 

영화는 또 다른 희생자로 마을 등대에서 라디오 방송을 하는 여자의 아이다. 아이는 바닷가에서 놀다가 DANE이란 이름이 새겨져 있는 나무판자를 가져온 죄 밖에 없다. 영화 처음부터 엄청 많은 장면에서 라디오 방송이 배경으로 흘러나온다. 인물들이 운전하면서 방송을 듣고 관객도 함께 듣기도 하지만 장면이 전환되면서 라디오 방송은 영화 속 인물이 듣는 게 아니라 마치 내레이션처럼 관객을 향해 말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경쾌하게 혼자 말하는 디제이의 목소리는 이상하게 영화 전반 내내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마치 이 마을이 생기게 된 게 누군가의 부를 뺏어 개인의 욕심으로 생긴 것처럼 디제이의 목소리도 약간 탐욕스럽게 들린다고 할까.

 

아무튼 호러 장르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이야기 해체적 영화를 보기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인물들이 접점이 없이 서로 다른 단편 속에 있다가 장편영화에서 갑자기 만나는 느낌이다. 이 영화는 개봉 된 후, 소설로 만들어지기도 했단다. 그렇게 보면 감독이 연출을 많이 잘 못하신 거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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