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나타>

두 주 토요일을 차이밍량 영화와 보냈다. 두 편에 공통점이 있다. 남녀 관계로 얽힌 대중적 공간에서 보는 고독이다. <청소년 나타>는 두 청년과 한 여자의 관계를 그린다. 마치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 선댄스와 엣타, 그리고 부치의 삼각관계가 주 내레티브다. 그리고 여자를 짝사랑해서 세 사람을 스토킹하는 소강(이강생)의 이야기다.


오프닝에서 두 청년이 비오는 날,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가서 동전을 훔치는 장면이 나온다. 축축하고 눅눅한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영화 전체가 이런 분위기다. 소강은 재수학원을 그만두고 번민을 하는데 엄마와 계부는 소강의 마음의 동요를 독해할 수 없는 타자다. 소강의 심리상태는 오히려 집 바닥에 흥건한 물이나 기어가는 바퀴벌레로 표현된다. 축축한 곳에서 사는 바퀴벌레를 찔러서 잡는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하고 유쾌한 물의 이미지가 아니라 습하고 바퀴벌레가 서식하는 그런 찐득한 이미지.


롤러 스케이트장에서 일하는 스무살인 여자는 무심한 남자친구의 사랑을 확인하려고 한다. 그녀한테 표면적 고민은 남자친구지만 실은 스무살이 지니는 헛헛한 마음을 대변한다. 후배랑, 오다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십대가 질풍노도의 시기로 상징화돼서 아픈 청춘이 된 게 아닌지, 모르겠다고. 내 이십대 일기장을 보면 질풍노도의 시기가 맞다. 까닭없는 불안와 우울이 자주 습격해서 나는 이십대가 빨리 끝나기를 바란다는 말을 종종 써놨다. 아무 것도 정해진 거 없는 가능성의 시기지만 무한한 가능성은 불안과 짝궁이다. <청소년 나타>는 인생을 소진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인생을 소진하는 걸 겁내는 이는 더 이상 청춘이 아니다. 그러고보면 불안은 늘 함께하는데 불안의 질이 다른 거 같다는 생각이.

 

<애정만세>

 

1

십 수년 전, 비디오 시절 이 영화를 처음봤을 때의 서늘함을 잊을 수 없다. 여자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며 한참 우는 장면에 영화를 이렇게 끝낼 수 있구나, 하는 충격과 함께. 사실 어릴 때는 삶의 무게 따위보다는 막연한 불안이 지배적이다. 이제 삶의 무게가 뭐라는 걸 조금 알게 되는 나이가 되고 <애정만세>를 다시 보니 절절하지만 생각보다 경쾌하다.


2

부동산 중개인 여자의 고단한 삶이 꽤 섬세하게 그려진다. 매매할 집을 홍보하고 손님들한테 집을 보여주는 사이에 무단횡단하면 벌금을 무는 도로 표지판을 무시하고 매일 무단횡단한다. 밥도 길 포장마차에서 혼자 먹거나 도식락을 들고 팔 집에 서서 먹는다. 살기 위해서 마지못해 먹는 행위를 하는 삶. 그리고 우연히 만난 남자와 욕정을 풀고. 다음 날 새벽 타이베이 시민의 평온한 일상을 파노라마로 보여준다. 한 공원에서 화단을 꾸미려고 갈아엎은 흙은 배경으로 여자는 무표정하게 걷고 또 걷는다. 카메라는 여자를 계속 따라가다 멀리서 공원에 운동하러 오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더 멀어지며서 공원 밖에 도로를 보여준다. 차들은 신호에 따라 오간다. 무엇하나 흐트러짐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여자는 벤치에 앉아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더니 소리내서 한참을 운다. 아, 이 울음이 어찌 그리 절절한지. 이 절절함을 느끼는 데 기뻐해야 할 지 슬퍼해야할 지. 살아온 세월 탓에 여자가 살아내는 일상의 긴장과 반복, 그리고 반복에서 평온과 우울을 동시에 느끼는 걸 공감할 정도로, 내가 살았다는데, 참...


3

또 하나는 두 남자의 이야기다. 매물로 나온 빈 집에 기거하는 두 사람. 두 사람은 세일즈맨이다. 한 사람은 납골당을 팔고 한 사람은 노점에서 여자 옷을 판다. 도시 하층민으로 소외된 약자인데 빈 집에 둥지를 틀면서 두 사람은 결국 마주치게 된다. 두 사람은 곧 유대감을 느낀다. 도시에 일정한 거주지 없지 투명인간처럼 빈 집에서 살아야하는 처지. 두 사람이 저녁을 함께 먹는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줄담배를 피고 버드와이저를 달고 사는 남자와 자살하려고 손목을 그은 남자가 만나서 음식을 떠주고 콜라캔을 따준다. 같이 밥을 먹는 행동에는 서로 챙겨주는 가장 기본적인 마음이 들어가 있는 거 같다.


두 사람은 그래서 자신이 일하는 곳에 함께 간다. 노점을 하는 남자는 납골당에 가고 납골당을 분양하는 일을 하는 남자는 노점에 앉아있는다. 가까워진다는 건, 자신의 생활 공간 속으로 상대방을 들어오게 하는 게 아닐까.


4

대도시에서 외로운 익명의 두 남자가 우연히 물리적 공간을 같이 사용하면서 자신의 삶 속으로 서로를 이끌면서 희미한 연대를 이룬다. 이 연대의 정점은, 베드신이다. 여자와 노점상 남자가 누워있는 침대 밑에 납골당을 파는 남자가 누워있다. 닫힌 좁은 공간에서도 세 사람은 다른 위치에 있으면서 은밀히 함께 있다. 하지만 감정적 유대는 얇은 유리같아서 부서지기 쉽다. 잠시 연대했지만 정신차려 둘러보니 다시 혼자라는 느낌을 주면서 영화는 끝난다.


5

정신을 안 차리는 게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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