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런닝 시간에도 시계를 들여다 볼 수 없는 잔느의 평범하지만 긴장 가득한 일상. 싱글맘으로 아들을 혼자 키우며 하루의 대부분을 집이란 갇힌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잔느. 칸트의 딸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정확한 시간에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잔느. 아침에 일어나서 잠옷 위에 가운을 입고 아들의 구두를 닦고 아침을 준비하고 아들을 깨운다. 아들을 학교에 보낸 후 잔느는 아들의 침대와 자신의 침대를 정리하고 감자, 다진 고기 등 식료품을 사러 나선다. 장을 보고 집에 오기 전에 같은 카페에 들러 커리 한 잔을 같은 자리에서 멍하니 마시고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준비한다. 그리고 아들이 돌아오기 전에 매춘 손님을 받는다. 매춘을 제외하면 특별한 거 없는 일상인데 잔느의 일상은 긴장으로 가득차 있다.


잔느가 방을 왔다갔다 하면서 불을 켰다 끄는 행동, 식사 준비를 하면서 여닫는 찬장의 문닫는 소리, 찬장에서 물건을 넣었다 꺼내는 사소한 동작에서 신경질적인 긴장감이 오롯이 전해진다. 단정하게 옷을 차려입고 하루 종일 말 없이 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동작들이지만 의미를 둘 수 없는 동작들의 단순한 반복에서 보는 내내 신경이 곤두선다. 사는 건 이런 거라고 에둘러말하기라도 하는 듯이, 하찮은 일의 반복을 보다 잔느가 침실 창을 열거나 주방 베란다 문을 열어 잠시 맑은 공기를 쐬면 같이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된다. 일상을 누가 즐겁다고 했나요, 일상은 버텨내는 거랍니다, 하고 말하는 잔느.


그녀가 하루 중 말하는 시간은 장을 보거나 아들의 구두 수선을 맡기고 아들의 코트 단추를 찾아 헤멜때이다. 그녀의 비루한 삶이 아들이라는 축으로 돌아간다. 이는 삶을 이어가는 형식적 구실일 수 있고 잔느는 다른 식으로 살아가는 데 대한 두려움과 체념을 동시에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3일 동안의 잔느의 별 거 없는 일상을 집요하게 카메라가 따라가는데 3일 째 잔느의 일상에 균열을 탁월하게 잡아낸다. 늘 같은 시간 동안 삶았던 감자는 탔고, 늘 마시던 커피와 우유는 개수대에 쏟아버릴 정도로 맛이 이상하다. 평소에 안 넣던 설탕까지 동원해보지만 커피맛을 다르게 느끼는 잔느의 소진된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맞아, 저럴 때가 있지, 하면서.


싱글맘 혹은 혼자 사는 삶의 적막과 고통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하는 영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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